강화의 힘든 현실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7-02-15 09:25:01
최정철 (주)신화컨설팅 대표
송나라 국신사(國信使) 일행이 고려 인종 원년(1123) 6월에 개성에 도착했다. 송 휘종의 조서를 고려 국왕에게 전하는 것이 첫번째 임무였고, 나머지는 1년전에 훙거(薨去)한 예종 영전에 제전(祭奠)하고 조위(弔慰)의 뜻을 보이는 것이었다.
막중한 임무를 띤 사절단은 정사와 부사, 그리고 뱃사람까지 총 1천여명이 넘는 대규모였으며, 신주(神舟, 중국 유인우주선의 명칭)로 불리는 관선 2척과 객주로 불린 민간 소유 선박 6척 등 8척에 나누어 타고, 5월 26일 절강성 심가문을 출발해 황해를 건너 6월 12일 개성에 도착했다.
국신사 일행 중 서긍(徐兢, 1091-1153)이 기록한 고려도경에 나타난 여정을 살펴보면, 5월26일 절강성 심가문을 출항해 황해를 건너 6월 2일 소흑산도(협계산, 夾界山), 6월 4일 비금도, 6월 5일 임자도, 6월 6일 고군산도(群山島 ; 전주목사 방문), 6월 8일 안면도(馬島 ; 청주목사 방문), 6월 9일 대부도(자연도, 紫燕島 ; 광주목사 방문), 6월 10일 영종도, 6월 11일 석모도, 6월 12일 개성 예성항에 입항한 것으로 나와있다.
바로 이 항로가 1,000년전 황해의 중심항이며 세계적인 항만인 개성 예성항과 중국 송나라, 교지국(베트남), 섬라곡국(타이)이 교역하기 위해 이용하던 항로였다.
이 항로는 조선시대에도 조공을 위해 인천-강화-마포로 이어지는 형태로 활용되었으며, 구한말에는 더욱 활성화되었다. 즉, 영종도 맞은 편에 위치한 제물포에 근대항만이 개항해 중국 상하이와 일본 요꼬하마 등과 정기항로를 개설함으로써 인천항은 황해의 중심항으로 다시 부상하였다. 천년이 흐른 지금 영종도에 건설된 인천국제공항은 황해를 넘어 전세계의 중심항의 역할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인천경제자유구역을 지정함으로써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의 이점을 활용해 인천지역의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개성은 800만평의 산업단지(인천 전체 산업단지 면적은 450여만평) 개발을 추진하면서 황해의 중심지가 되고자 꿈틀거리고 있다.
그러나, 인천과 개성의 중간에 위치한 강화도는 아직 인천과 개성의 연결지역으로서의 역할을 회복하지 못하고 남북간 접경지역으로서 은둔(隱遁)을 강요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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