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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

최초의 신식화폐 제조창 = 인천전환국

by 형과니 2023. 3. 23.

최초의 신식화폐 제조창 = 인천전환국

仁川愛/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

 

 

최초의 신식화폐 제조창 = 인천전환국

 

 

개항 이후 화폐의 사용이 늘면서 조선 정부는 화폐제도 정비 차원에서 18837월 처음으로 상설 조폐기관인 경성전환국을 설치하고 1888년부터 신식화폐인 동전을 주조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신식화폐의 제조는 1892년 경성전환국이 해체되며 인천시 중구 전동 옛 인천여자고등학교 자리에 설치된 인천전환국이 그 처음이다.

 

인천전환국의 설치는 당시 일본의 세력권내에 있었던 인천으로 전환국을 이전 설치함으로써 일본이 우리나라의 화폐권을 장악하려 한 의도가 숨어있었던 것으로 풀이됐다.

 

이유야 어떻든 인천전환국은 189211월 청사를 완공하고 시운전을 거쳐 그 해 124일부터 주화 제조를 시작한다.

 

1891년 제정된 신시화폐조례에 따라 본위 화폐인 닷냥 은화를 포함해 한냥 은화, 두돈오푼 백동화, 오푼 적동화, 한푼 황동화 등 모두 5종을 주조했다.

 

이 가운데 닷냥 은화는 1893년 이후 앞면 표기가 1환으로 바뀌어 발행됐다.

 

제조된 주화는 경성전환국에서 제조했던 주화와는 달리 앞면 중앙상부에 태극장 대신 이화장을, 좌측에 자두나무(오얏나무)가지 대신 국화인 무궁화 가지가 도안됐다.

 

당시 청국의 원세개가 인천전환국이 1892년 제조한 주화에 `대조선'이라 표시한 데 대해 `'자의 삭제를 요구해 일부 주화가 유통되지 못한 채 사장되기도 했다고 전한다.

 

실제 인천전환국은 189212월부터 19008월까지 모두 4316천 환의 신식화폐를 주조했으며 이 가운데 닷냥 은화는 겨우 19천여 환에 불과했고 백동화는 70%가 넘는 3199천여 환에 달했다.

 

이로 인해 시중의 물가가 폭등하고 상거래가 마비되는 등의 백동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18988월 조선정부는 늘어나는 화폐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건축 및 기계 증설 등 확장공사를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확장공사가 한창 진행되는 도중 전환국을 용산으로 이전하라는 고종황제의 명이 내려지고 공사가 중단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화폐를 발행했던 인천전환국의 시대는 설립 9년 만에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