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신학잡지 '신학월보' 탄생
仁川愛/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
한국 최초의 신학잡지 '신학월보' 탄생
1900년대 우리나라는 신학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를 대변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 잡지인 `신학월보'의 출간이다.
1900년 12월 감리교회에서 발행한 신학월보는 한글로 표기된 최초의 교회 잡지이자 신학잡지이다.
편집은 제물포에서 목회를 하던 미국 감리회의 존스(한국이름 조원시) 목사가 맡았는데 그가 인천에 있었으므로 자연스레 신학월보사도 인천에 두었다.
기록에 따르면 신학월보는 선교지 전반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어떤 욕구, 즉 기초신학에 대한 욕구 때문에 발행됐다고 한다.
탐구적인 전도인들이 늘어나며 그들을 훈련시키고 신학이나 교회사, 성경주석, 혹은 목회학과 같은 신학 주제들을 실지로 운용하고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필요성에 의해 마련됐다는 것.
실례로 신학월보 제1권 제1호에는 “신학월보는 우리 그리스도 신학을 논하고 성경 도리와 교회사와 대한 교회의 나아갈 방향과 교인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덕행을 하는 각 일을 기재할 것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신학월보의 발행은 무엇보다 `한국인 전도인 양성'에 있었던 것이다.
실제 1903년 7월자 신학월보를 보면 `우리나라에 드문 일'이란 제목의 기사에 `강화읍내에 사는 어느 여인이 한글을 열심히 배워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하여 낱낱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신분에 따른 귀천이 없다는 점을 깨달아서, 자기가 부리던 종복들을 불러 놓고 마태복음 18장 15~20절을 읽은 후에 그들을 권면하고 종문서를 불사르며 자유인이 되게 하였다'는 내용이 실렸다.
당시의 교회소식과 초기 선교사들의 신학논문 등이 실렸으며 격월간으로 발간됐다.
초기에는 600여 부를 찍었다고 전하며 1901년 감리회 신학생인 최병헌의 논문이 실리기도 했다.
1900년 직전부터 전도인 양성을 목적으로 해 설치된 단기 신학 교육과정이었던 신학회의 교재로도 사용됐다.
신학월보는 한국 기독교와 일반 역사 및 문화에까지 중요한 영향을 준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초기 신앙의 토대를 다지는 데에도 한 역할을 했다고 인정되고 있다. 〈자료제공 : 인천시 역사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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