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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탕 월미도 조탕

by 형과니 2023. 3. 23.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탕 월미도 조탕

仁川愛/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탕 월미도 조탕

 

 

웰빙 붐으로 인해 반신욕, 아로마욕 등이 발전하며 목욕문화가 변화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해수탕인데 바닷물을 데워 목욕을 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탕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인천 월미도에 마련됐었다.

 

조탕(潮湯)이라는 것으로 조탕은 사전적 의미로 바닷물을 데운 목욕물, 또는 그 물을 쓰는 목욕탕으로 쉽게 말해 염분이 있는 온천 정도이다.

 

월미도가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알려지게 된 데에는 바닷물을 데워 목욕물로 사용한 우리나라 최초, 유일의 조탕의 역할이 크다.

 

일본은 1918년 인천 내항에 독을 건설하면서 한강으로부터 흘러드는 급한 물살을 막고 월미도까지 나룻배에 의존해야만 했던 교통을 개선하기 위해 북성지구(현 대한제분 앞)로부터 약 1km에 달하는 2차선 둑길을 건설한다.

 

월미도가 알려지게 된 데는 둑길을 놓았던 철도국이 소형 해수풀과 오늘날의 해수탕의 원조 격인 해수를 데워 사용하는 공동 목욕탕식의 조탕을 만들어 이곳을 임해유원지로 개발하면서 부터다.

 

철도국이 해수풀과 조탕을 설치한 것은 경인선 승객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 가운데 하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찌됐든 당시만 해도 서구식 외관을 자랑하던 조탕 건물은 현대적 감각으로 세워져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기록에 따르면 그 위용도 볼만했으나 밤이면 매혹적인 불빛을 선사하는 야경 또한 놓칠 수 없는 광경이었다고 한다.

 

월미도 조탕에는 숙박과 휴게시설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으며 휴게소와 함께 서구식 무대장치가 마련된 연무장이 설치돼 있었는데 당시에는 연극과 춤 등을 공연·관람할 수 있었으며 전통무용 공연도 많이 열렸다.

 

당시로서는 첨단의 시설을 자랑하는 휴양시설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알려진 휴양지로서 원산의 송도원, 부산의 해운대를 제치고 월미도는 단연 전국 최고의 명소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자료제공 : 인천시역사자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