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최초의 서양식 병원 성누가 병원
仁川愛/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
인천 최초의 서양식 병원 성누가 병원
현대인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의료이다.
기록에 나타난 인천 최초의 서양식 병원은 1890년 10월10일 성공회에서 개원한 성 누가 병원이다.
성공회 부속병원이라 할 수 있는 성 누가 병원은 현재 중구 내동 3번지에 위치한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에 위치했는데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 성당이 위치하고 있는 응봉산 남쪽 봉우리를 예전에는 약대인산 혹은 약대이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 누가 병원의 의사 랜디스 박사를 칭송해 부르던 데서 비롯됐다.
당시 제물포 주민들은 성 누가 병원을 약대인 병원이라고 불렀는데 랜디스 박사가 어떤 어려운 병도 신통하게 잘 고쳐 주민들 스스로가 존경의 대상으로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랜디스 박사는 1888년 의학박사로 미국 랭카스터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선교지원운동에 영향을 받아 성공회 부속기관인 제성요양소에서 근무하게 됐고 이후 성공회 코프 주교와의 만남으로 1890년 9월29일 인천에 터를 잡게 됐다.
그는 당시 성공회 성당 밑에 집을 구해 약국과 진찰실로 사용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의술을 펼쳤는데 랜디스 박사 통계에 따르면 1892년에는 3천594명의 환자를 진료했고 1894년에는 4천464명의 신규 외래 환자와 방문치료를 했다고 한다.
개항 당시 의료시설이 절대 부족했던 제물포 주민은 물론 인근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었던 것이다.
성 누가 병원이라는 이름에 대한 에피소드도 전해지고 있는데 1891년 10월16일 성 누가를 기념하는 침례일에 새 병원에 입주한다 해서 `성 누가 병원'이라 이름 지은 것을 두고 랜디스 박사는 “성 누가 병원이라는 이름은 한국인에게 별 의미가 없다”며 `선행으로 즐거운 병원'이라고 번역한 `낙선시의원'이라고 간판을 달았다고 한다.
랜디스 박사는 과로에 장티푸스까지 겹쳐 1898년 4월16일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데 장례식에 각국에서 조문의 예로 반기를 게양했을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그의 시신은 연수구 청학동 외국인 묘지에 안장돼 있다. <자료제공 : 인천시역사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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