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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

최초의 신식 소주 제조회사 조일양조주식회사

by 형과니 2023. 3. 23.

최초의 신식 소주 제조회사 조일양조주식회사

仁川愛/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

2007-02-26 04:34:17

 

최초의 신식 소주 제조회사 조일양조주식회사

 

한국 사람들에게 유난히 사랑받는 술 가운데 하나가 소주이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 소주를 우리나라 최초로 대량생산하기 시작한 곳도 인천이다.

 

191910월 우리나라 최초로 기계식 소주양조회사가 설립되는데 일본인이 경영했던 조일양조주식회사가 그곳이다.

 

이 회사의 `금강표'라는 소주는 국내는 물론, 만주와 사할린에도 수출될 정도로 각광을 받았으며 당시의 청주 금강학과 양조계의 대표적인 생산품이었다.

 

금강표 소주는 대만 당밀과 약간의 밀, 수수를 혼합한 것을 원료로 제조해 가격이 저렴한 편이었으며 한 해 동안 22400여 석이 생산될 정도였다고 한다.

 

용기는 항아리를 사용했는데 1두와 15되의 두 종류가 생산됐다.

 

대량거래는 6두 들이 맥주통을 이용했으며 시세는 15되가 9원 정도였다.

 

또 그때까지 병술 약주를 대량 생산하고 있던 조선이 최승우가 세운 대동양조조합이 1928년 인천시 동구 송림동 지금의 동부경찰서 인근에 근대식 소주제조공장을 신축하고 `대동'이라는 소주를 출시한다.

 

이 대동소주는 1930년대 말 전시 체제에 접어들어 술이 배급제로 바뀔 때까지 인기를 끌었으며 전쟁말기에 공장이 문을 닫게 된다.

 

인천의 양조산업은 이보다 앞서 발전하기 시작하는데 인천에서 최초로 청주를 양조했던 기록은 18929월 일본인 오카야마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1908년 무렵에는 인천항에 청주 양조장이 7개 업체로 늘어날 정도로 번창했으며 1920년대 초반에는 한국인 양조장이 14개소, 일본인 양조장이 7개소에 이른다.

 

`인천 한세기'에는 당시의 인천 양조장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대동양조조합, 영화양조조합, 인천양조조합 등 법인체에서부터 대일양조장, 김휘관양조장, 영춘양조장, 신창양조장, 소성양조장, 대화양조장, 계림양조장 등 소규모 개인 업체에 이르기까지 14개소가 있었다고 전한다.

 

당시 양조업계의 주목받는 인물로는 대동양조조합의 최승우였는데 그는 일본식 압착 여과 장치를 도입해 정종처럼 맑은 약주를 개발, 병술로 제조·판매해 큰 인기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