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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인물

'백범일지' 속 살아있는 인천의 지사

by 형과니 2023. 3. 24.

'백범일지' 속 살아있는 인천의 지사

仁川愛/인천의 인물

 

2007-02-27 15:40:57

 

'백범일지' 속 살아있는 인천의 지사

 

역사에 가려진 독립투사들

 

 

일평생을 민족의 독립운동에 바친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는 어느덧 국민적 필독서가 되었다. 그런데 '백범일지'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치하포에서 국모의 복수를 외치면서 왜군 장교를 참살하여 인천 감리서 감옥에 갇혀 있을 당시의 이야기가 매우 소상하게 담겨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구명하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인천의 사람들과 인천의 민족지사들의 면면을 만나게 된다. 백범이 옥에 갇혀 있을 때 모친 곽낙원 여사가 인천항의 객주였던 박영문(朴永文)의 집에 머무르면서 백범의 옥바라지를 하였다는 기록이 나오거니와, 또 다른 객주인 안호연(安浩然)을 비롯한 인천의 민초들이 백범의 구명을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들이 '백범일지'에는 담겨 있다.

 

그러한 인물들 중에서 두드러진 두 인물이 있으니, 강화의 평민 김주경(金周卿, 卿得)과 검여 유희강의 집안(시천동의 진주유씨)의 일족이라고 생각되는 유완무(柳完茂 혹은 仁茂)라는 인물이 바로 그이다. 인천항 감리서에 갇혀 있는 백범을 돕기 위해 가장 먼저 강화 출신의 김주경(金周卿, 字 卿得) 이 헌신적으로 나섰다.

 

당시 강화의 인물로, '양반에는 이건창(李健昌)이요, 상놈에는 김경득'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김주경은 김구의 부친과 모친을 번갈아 가며 모시고 서울로 올라가 법부대신인 한규설을 만나, 김구의 충의(忠義)를 표창하여 석방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이 요청이 받아들이지 않자 김주경은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풀어서 7~8 차례나 법부에 소장을 올렸다.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김주경은 김구에게 탈옥을 권유하는 단율의 시 한 수를 보낸다. "조롱을 박차고 나가야 진실로 좋은 새이며 / 그물을 떨치고 나가야 예사스런 물고기"이니 "그대여, 자식 기다리는 어머니를 생각하소서."

 

그런데 이 시기 백범을 도와준 인천의 여러 인물들 중에서 단연 중요한 인물은 바로 유완무이다. 유완무는 백범 구명을 위해 김주경이 시도한 법률적인 사면이나 뇌물을 바치는 일 등이 모두 어려운 것을 알고 동지들을 규합하고 용감한 청년 13명을 뽑아서 모험대를 조직하여 인천항 주요 지점마다 밤중에 석유통을 지고 들어가 7, 8곳에 불을 지르고 감옥을 깨서 김창수를 구출해내는 계획을 짰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사 사흘 전에 김창수가 다른 죄수들과 파옥도주를 하자, 유완무는 김창수(김구의 아명)의 종적을 내내 찾았고 마침내 만나 동지의 연을 맺는다. 유완무는 백범의 이름을 김구(金龜)라 고쳐주고 호를 연하(蓮下), 자를 연상(蓮上)이라 고쳐주었다 한다.

 

유완무를 중심으로 한 이춘백, 이천경, 성태영, 이시발, 박태병, 주윤호 등의 비밀결사체는 민족을 구하기 위해 인재를 탐문하고 이를 길러 크게 쓰려는 이들의 주도면밀한 계획은 '백범일지'에 비교적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백범도 이들을 "평생 친구"라 표현하고 있거니와, 그러나 이들과 백범과의 인연은 돌연한 백범의 부친상으로 인하여 어그러지고 말았다. 그 후 유완무는 북간도로 건너가 경운(耕雲)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기도 하고 백초(白樵)라는 별호도 사용하면서 민족운동을 전개하였으나 누군가에게 피살되었고, 아들 한경만이 아직 북간도에 살고 있다는 것이 '백범일지'에 기록된 유완무의 마지막 행적이다.

 

개항장 인천은 일본인들이 세운 식민지 근대도시로서 왜색이 짙다고 알려져 있지만, 왜색이 강할수록 우리가 미처 찾아보지 못한 민족운동의 맥박 또한 살아 움직였을 터이다. 독립협회 인천지회인 인천박문협회의 실체도 아직 규명이 되지 못하였거니와, 국가기구인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이들 묻혀있는 민족의 지사들을 면밀히 조사하여 그 실체를 규명해주면 좋겠다. 그러나 이는 결국 인천의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진 역사적 과제일 터이다. 모쪼록 '백범일지'를 비롯한 역사의 기록과 풍문 속에 흔적 없이 묻혀 있는 인천의 민족지사들을 하루 빨리 살려내야 할 것이다. 정용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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