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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인물

제운 이세주

by 형과니 2023. 3. 23.

제운 이세주

仁川愛/인천의 인물

 

2007-02-25 00:44:04

 

효행의 본보기 제운 이세주

 

생 애

 

1626년 학익동에서 태어남

-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낸 효자라 불리움

- 평생을 교육에 힘써 수 많은 제자를 길러냄

- 동지중추부사를 제수받음

1710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남

 

이세주는 지금부터 260여 년전, 이조참판으로 증직된 이진재의 맏아들로, 인천 제운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터 용모가 단정하고 성격이 온화하여 주위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았다.

 

그가 여섯 살 되던 해 어느날 외삼촌의 존장되는 분이 이세주의 아버지 참판공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자 그는 "비록 존장이라 하나 그 자식 앞에서 그 아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예가 아니다.

 

예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어찌 예로서 대하리오?" 하며 다시는 존장을 뵈오려 하지 않았다. 이 말을 전해 들은 그 존장은 크게 잘못하였음을 깨닫고 어린 이세주를 찾아가 사과하고, 그 다음부터는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이를 지켜본 이웃 사람들은 이세주의 밝은 예와 그 명석함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이세주의 어머님이 그만 학질에 걸려 신음했다. 그녀는 모든 약을 구해 취해도 병세는 악화되었다. 그런데 한 의원이 100일 동안 매일 5~6마리씩 참새를 먹으면 낫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세주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짐없이 참새를 잡아 정성껏 드렸다. 100일이 지나자 어머님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그 후 이세주는 지극 정성으로 어머니를 봉양했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음식을 마련하여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무척 애를 썼는가 하면 추운 겨울에는 어머니가 주무시는 방에 손수 불을 지펴 따뜻하게 하였고, 무더운 여름날에는 어머니 곁에서 부채질을 하여 시원하게 해 드렸다. 그가 이웃에 나들이 할 때에는 반드시 문안을 드렸으며 어머니의 몸이 불편하실 때마다 약을 달여 드리고 극진히 병간호를 했다.

 

숙종 9(1683) 어머니는 84세의 고령으로 병세가 중태에 이르자 이세주 역시 나이 들어 노쇠한 몸이 되었건만 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정성껏 병간호를 해 드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끝내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이세주는 통곡했다. "내가 불효하여 어머니께서 일찍 세상을 뜨셨구나. 이 죄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는 예를 갖추고 고이 장사 지낸 뒤 아우와 함께 어머니 산소 옆에 초막을 짓고 3년간 무덤을 지키며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중을 들었다. 이렇게 지극한 이세주의 효성을 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칭송했다.

 

천성이 착하고 효심이 깊은 이세주는 학문에도 남달리 뛰어났다. 그러나 벼슬길에 오르는 것 보다 한 평생을 학문연구와 후생들의 교육에 온 힘을 쏟았다.

 

그의 문하에는 사방에서 학생들이 모여들어 책을 읽는 소리가 마을에 넘쳤다. 그의 문하에서 배운 수많은 제자 중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세 사람이요, 성균관에 들어간 사람이 십여 명이며, 각 주현의 향시에 합격한 사람은 수없이 많았다.

 

나라에서는 이세주의 교육적 공헌에 은전을 베풀어 가선대부를 내리고 첨지중추부사를 제수하였으며, 그 후 다시 동지중추부사를 제수했다.

 

숙종 36(1710)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온 마을 사람들은 선생의 높은 덕을 기렸며, 문하생들도 친부모를 잃은 것과 같이 울부짖으며 선생의 죽음을 애통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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