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은 자동차의 본향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9 19:43:51
부평은 자동차의 본향
고종 어차에서 매그너스까지~부평은 우리나라 자동차의 본향(本鄕)~
인천은 우리나라 자동차의 본향(本鄕)이자 시발지이다.
고종의 어차를 비롯한 모든 자동차들이 인천항을 통해 들어왔을 뿐 아니라
일제가 세운 공장에서 국내 최초(1937년)로 군용자동차를 생산했고
해방 후에는 현대식 자동차 조립공장이 처음으로 가동된 곳도 인천이다.
자동차로 인천에 처음 발을 들어논 사람은 버른 홈즈이다.
1901년 봄, 당시 미국 시카고 대학의 사진학 교수이자 여행가였던 버론 홈즈는
일본을 여행하던 중 조선의 수도인 서울(경성)에 가면 볼 거리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
증기선을 타고 인천항을 통해 차를 끌고 들어왔다.
이틀 후 홈즈 교수는 큰 사진기를 싣고 돈의문(서대문)을 통과하다
마주 오던 소달구지를 들이받았다. 이것이 최초의 자동차 대물교통 사고이다.
정식으로 이 땅에 처음 자동차가 들어 온 것은
고종의 어차(御車)로 쓰기 위해 캐딜락 4기통 짜리 1대를 인천항을 통해 수입한 1903년이었다.
이 차는 다음 해인 1904년에 일어난 러일전쟁 때 없어졌다고 한다.
이후 자동차가 점점 늘자 그것에 관한 새로운 법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완용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 차를 몰다가 7세난 소녀를 치어 다리를 다치게 하는
최초의 인명사고를 내자 15년에 '자동차 취체규칙'이라는 교통법규가 생겼다.
또한 돈 많은 한량들이 기생과 함께 시내를 종횡무진하면서 풍기문란케 하는 게
사회문제가 되자 1919년에는 '기생 자동차 금승령'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30년대 중반까지 자동차는 대부분 미국에서 들여왔다.
당시 포드T의 값은 3천500원으로 쌀 170여 가마 값과 맞먹었다.
35년 중일전쟁으로 휘발유 배급이 중단되면서 대부분의 차들이 목탄차로 개조됐다.
1961년은 우리나라 자동차 발전에 전기가 마련된 해이다.
'자동차공업육성책'이 만들어지면서 국내 자동차 산업에 불씨가 켜진 것이다.
이듬해에 연 2,200 대의 승용차 조립 능력을 갖춘 새나라자동차(주)가 인천 부평지역에 세워졌다.
비록 일본의 닛산과 기술제휴를 맺고 부품을 전량 수입해 소형차를 단순 조립 생산하는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국내 처음으로 근대적 개념의 생산라인을 적용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외환사정의 악화로 1년만에 조업이 중단된다.
우리나라 자동차의 시조(始祖)라고 할 수 있는
시발자동차를 생산한 신진공업사가 1965년에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하고
사명을 신진자동차(주)로 바꾼다.
신진자동차는 일본 도요타자동차에서 들여 온 부품을 조립, '코로나' '크라운' '퍼블리카' 등의
자동차를 생산하며 승용차 대중화의 첫발을 내디딘다.
신진자동차는 72년 도요타가 철수하자 미국 GM 자동차사와 손을 잡고
GM 코리아로 사명을 바꾸고 '시보레' '레코드'를 출시한다.
이후 76년 경영난에 봉착한 신진은 대우그룹에 지분을 넘김으로써 자동차업계에서 사라지고
회사이름은 '새롭게 한뜻으로'라는 의미의 새한자동차로 바뀐다.
83년에 새한자동차의 이름은 대우자동차로 바뀜으로써 자동차사(史)에 '대우'의 이름이 등재된다.
음악출처 벅스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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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한 부평공장
l People in incheon l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그 미소 그 손놀림 참 오랫만이네
‘하나된 마음 새로운 모습 힘찬 새 출발’ ‘새로운 마음 새로운 출발 우리 다시 시작합시다’
공장 곳곳에 붙은 플래카드와 격문들이 부평공장 근로자들의 ‘생존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02년 10월 17일, GM-대우가 정식으로 출범했지만 부평공장은 아직 GM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 있지 못하다.
군산공장, 창원공장 등은 GM의 한 식구가 되었지만 부평공장은 생산성, 판매량 향상 등이
뒤따라야 인수한다는 ‘조건’이 붙는 서러움을 맛보았다.
부평공장 근로자들은 이를 계기로 마음을 다시 한번 추스르며 반드시 세계 최고 품질의
자동차를 만들어 내 무너진 자존심을 다시 찾겠다는 각오로 땀을 흘리고 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이 내린 날 오후 부평구 청천동에 자리 잡은 대우차 부평공장
조립1부에 들어서자 쌀쌀한 바깥 날씨와 달리 공장 내부는 작업열기로 후끈거렸다.
면적 42,700㎡의 조립1부는 3개의 커다란 컨베이어벨트를 중심으로 4개의 서브라인이 설치돼 있는 공장이다.
이곳은 대우차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현장이다.
지난 1986년 4월에 공장을 세워서 10월부터 르망을 시작으로 에스페로, 씨에로, 라노스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승용차를 생산해낸 곳이다.
현재는 500여 명의 근로자들이 ‘대우차 회생의 기반’이 될 야심작 칼로스를 생산하고 있다.
‘위∼잉’ ‘드르륵 드르륵’. 반복적이고 강한 기계음이 넓은 공장 안에 울려 퍼졌다.
걸음걸이 정도의 속도로 끊임없이 돌고 있는 컨베이어벨트에 몸을 싣고 전동드릴을 이용해
부속품을 하나 하나 맞춰나가는 근로자들의 통일된 모습이 마치 매스게임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예쁘장
한 칼로스 한 대를 만들기 위해 조립하는 부품수는 모두 5천650개이며 공정은 256개이다.
칼로스 한 대를 조립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시간 30분. 조립 1부 공장에서는 시간당 57대의 칼로스를 만들어 낸다.
‘우리의 생존을 위하여 최고의 제조품질 달성하자’. 부도, 법정관리 등으로 이어지면서
인원이 절반 이상 줄어드는 등 심한 홍역을 치른 근로자들은 한동안 ‘헝그리 정신’으로
재무장하고 자립의지를 불태웠다.
최근 들어 그들의 얼굴에 서서히 웃음기가 돌기 시작하고 있다.
근로자들은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작업준비를 한다.
8시 정각에 업무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리면 컨베이어벨트가 힘차게 돌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달려있지 않은 빈 껍데기 차체가 컨베이어 벨트 하나를 거칠 때마다 시트, 운전대,
헤드램프, 도어, 타이어 등 장기(臟器)를 하나씩 이식 받으며 자동차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마지막 공정을 마친 자동차는 마치 생명의 기운을 얻어 어머니 뱃속을 빠져나가듯 공장 밖으로 힘차게 달려나간다.
10대 중에 서너 대 꼴로 완성차의 앞면 유리창에는 뉴질랜드, 룩셈부르크, 키프러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메이드 인 인천’의 라벨을 붙인 칼로스가 전 세계 도로를 달리고 있다.
‘아름다운’이란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칼로스(Kalos)는 그 이름에 걸맞게
지금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의 아름다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9천대 수출이 잡혀 있습니다. 근 3년 만에 토요일 특근을 시작해야 합니다.
게다가 미국에 월 5천 여대 씩 수출길이 다시 열리기 때문에 7월이 되면 2교대로 일을 해야 합니다.
” 박영진 품관1부 완성검사 3직장은 오랜만에 밤새 불이 켜져 있을 작업장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오후 5시, 작업 종료 벨이 울리자 모든 기계가 올 스톱했다.
“이제 퇴근하나 보죠.” “웬걸요, 5시 30분까지 저녁 식사하고 다시 7시 30분까지 잔업을 해야합니다”
근로자들은 총총걸음으로 식당을 향해 갔다. 그들이 비운 작업장 한쪽으로 맑게 개인 저녁 봄 햇살이 스며들었다.
글 유동현
사진/카툰 김성환
[2003년 0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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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l People in incheon l GM 대우자동차 사랑 범시민운동 전개
-----------GM 대우 사랑이 인천사랑입니다
다국적 기업 GM이 인수해 새 출발
인천에 사랑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우리 인천광역시와 인천지역자동차산업살리기범시민협의회에서는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GM 대우자동차를 인천의 대표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대우차 사랑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그동안 인천경제는 대우자동차 부도로 인해 깊은 침체의 늪 속에 빠져있었다.
인천은 70년대 정부의 수출 지향적인 경제 정책에 따라 공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형성되어
다른 시도에 비해 제조업의 비중이 크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대우자동차가 인천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제조업 대비 생산액기준 9.6%, 고용기준 10.2%를 차지할 정도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지난 2000년 11월 8일 최종부도 처리로 인해 1,300여 개 협력업체중
15개 회사의 연쇄부도로 이어지며 지역경제는 침체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우자동차는 노·사간의 뼈아픈 구조조정을 통해 재기의 길을 찾았다.
시민들도 그 뜻에 동참해 민·관이 일심동체가 되어
‘대우자동차를 살리기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과 ‘대우차 사주기 캠페인’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다섯 차례에 걸쳐 정부에 서한문을 보내고 대우자동차 지원협의를 위한
범시민협의회 간담회 및 정부와 채권단 방문 등을 여덟 차례나 하는 등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힘입어 협력업체의 연쇄 도산과 실업대란 사태를 예방하기도 했다.
그 끝에 다소 아쉬운 감은 있지만 다국적 기업인 GM이 인수해 지난해 10월 새 출발을 했다.
특정업체 지원 아닌 인천사랑의 또 다른 표현
‘대우자동차 사랑운동’은 특정업체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 인천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천에서 생산하는 자동차를 많이 구입해야
지역의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는 것은 물론 인천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고
이와 더불어 고용안정과 시민경제 생활이 안정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져야 한다.
지난 2월 12일 GM의 최고경영자인 릭 웨고너(G.Richard Wagoner, jr) 사장이 부평공장을 방문해
“GM 대우자동차를 아시아 시장의 핵심기지로 삼는 것은 물론 전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로 중점 육성한다”는 목표를 천명했다.
특히 “GM과의 협력강화를 통한 기술혁신에 역점을 두고 품질 개선을 위해 R&D와 시설 등
투자비용에 5천억 원을 투입할 것이며 신제품 개발 등 여러 프로젝트 개발에 이미 착수했고
앞으로도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인천시민들의 대우차사랑 운동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GM 대우자동차에서는 청소년 음악제를 비롯해 어린이날 행사, 각종 복지사업 등
인천시민들의 문화와 복지 수준을 한결 살찌울 수 있는 다양한 문화사업을 추진해
시민들의 애정에 보답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시와 인천지역자동차산업살리기범시민협의회에서는
GM 대우자동차 사랑운동 시민공감대 형성을 위해 3월에 GM 대우자동차 홍보관에서
대우자동차 사랑 범시민 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GM 대우자동차 정상화를 위한 전략과 인천지역을 위한 사업을 소개하고
마케팅 전략 등을 밝힐 계획이다.
특히 올해부터 우리시는 시민을 초청해 시정현장을 견학하는 행사에
대우자동차 생산공장을 방문해 생산 과정 등을 보여줄 것이다.
대우차가 살아야 인천경제가 살아난다.
글 조동암 (시 경제정책과 경제소비자정책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