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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계양산성

by 형과니 2023. 3. 31.

계양산성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6 04:52:48


▲ 계양산성 ▲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10-1  지정번호 : 시지정 기념물 제10호

계양 산성은 삼국시대때 축조된 석성으로 일명 고산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부평의 진산인 계양산(394.9m) 동쪽 능선에 축조되어 있다.

성의 축조 형식은 지형 분류상의 산정식에 속하며, 방법상으로는 내탁식으로 외벽을 잘 다듬은 돌로 쌓아 올리고 안쪽은 불규칙한 할석으로 쌓았다.

<<증보문헌비고>> <관방성곽>조에 의하면 '이 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둘레가 1937보(587m)이나 지금은 퇴락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을 고려해 볼 때 계양산성은 삼국시대 이래 부평읍의 성곽 역할을 담당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 성과 관련된 전투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임진왜란 때 명군이 전투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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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오시는길


*교통정보

  * 자가용 : 경인고속도로 부평IC에서 계양방면으로 직진한 후 계산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첫 번째 사거리에서 좌 회전하여 노동복지회관 앞에서 연무정을 지나 20분정도
                   오르면 육각정이 나오고 그 주변에서 계양산성의 자취를 찾아 볼 수 있음.
  * 지하철 : 인천지하철 1호선을 타고 계산역에 내린후 계양구청 방면으로 나와 노동복지회관 앞에서
                  연무정을 지나 20분 정도 오르면 육각정이 나오고 그 주변에서 계양산성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음.
  * 버 스 : 부평역에서 버스 30번를 타고 계산삼거리에서 내린 후 길을 건너 노동복지회관을
                  찾는다.
       (도보 10분 소요) 노동복지회관 앞에서 연무정을 지나 20분정도 오르면 육각정이
                  나오고 그 주변에서 계양산성의 자취를 찾아 볼 수 있음.

[자료제공 : 문화공보실 오영림 (☎450-5116)]


=========<계양산성 국가 사적지정에 손색 없다>==================

백제, 신라시대 토기등 유물 대량 발굴
성 길이도 애초에 알려진 587m의 두배인 1,117m

▲ 발굴현장에서 바라본 시내전경-계양산성이 전략적 요충지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계양산성1차 발굴조사 결과 성의 역사적 가치와 규모가 그동안 알려졌던 것보다 훨씬 높고 큰 것으로 밝혀져,
역사학계에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선문대 고고연구소(소장 이형구 박사) 조사단은
지난 8월 1일부터 계양산성(둘레 1천1백17m) 서벽 육각정 일원을 1차 발굴조사한 결과, 백제와 신라의 유물들이 대량으로 출토되었고,축조시기는 삼국시대나 통일신라 이전이고, 당시 한강어구를 장악하고 서해로 진출할 수 있는 중요한 군사적 관문 역할을 한 성벽으로 추정된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출토유물 중에서 특히 6m×12m라는 좁은 조사면적에서 1.5t 트럭 1대 분량이나 되는 기와가 출토됨으로써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형구 박사는 “계양산 부근에 기와 굽는 가마터가 있었을 것이며,성을 쌓는데 기와를 의도적으로 사용했음이 밝혀져 기와를 이용한 성 축조방법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토기류는 백제계와 신라계로 대별됐으며 기종별로는 굽다리잔·병 모양 호(壺)·뚜껑·각종 사발류와 시루가 섞여 있다.
또한, 조사면적에 비해 화살촉, 작은 칼 등 무기류가 다수 출토되어 계양산성이 군사적 요충지임을 짐작케 했다.
이 밖에도 돌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거울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한편, 이 면적에서 조사된 성벽의 구조는 내외 협축식으로 돌로 안팎을 쌓았고,잔존높이는 외벽 4m, 내벽이 3.8m이고 두께는 4m에 이르는 철옹성으로,축성술이 삼국시대의 다른 산성에 비해 견고해 당시 큰 재력과 인력이 소모됐을 것으로 추정되었고,위치적으로도 서해와 한강어구, 김포평야 등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였음이 확인되었다.

특히, 이날 현장설명회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유전 전소장, 국사편찬위원회 이성무 전위원장, 육군사관학교 이재 교수,
인하대학교박물관 서영대 관장, 경기도박물관 이종선 관장, 한밭대 심정보 교수, 서울시립대 박희현 교수,
문화재청 최맹식 과장 등 역사학자들과 관계기관에서 대거 참석하여 계양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고,
향후 인천시와 계양구의 계획적인 발굴, 복원 추진과 시민들의 관심만이 계양산성을 복원하는 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인천은 국가사적지가 하나도 없는 도시로 인천시와 인천시민의 문화의식 부족을 지적하면서
계양산성은 국가사적지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이제, 1천4백여년전의 역사를 발굴하여 복원시키는 것은 계양을 뛰어 넘어
인천이 문화유적의 도시로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관건이며, 문화불모지 인천시민의 자존심 문제로 남겨졌다.
(관련기사 이형구박사 인터뷰 참조)

취재기자  김보정(kbj@gyey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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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계양산성 1차 발굴조사 단장 이형구 박사            

국가 사적의 불모지 인천에서 건져낸 보물
지속적인 발굴조사 필요  

# 계양산성에 대한 지표조사가 그 동안 여러번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지난 지표조사와 이번 발굴조사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2000년에 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에서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성곽전체의 규모를 확인하였고,
유물들은 수습하여 계양산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아울러 서벽의 일부를 발굴조사하였다.
이번 발굴을 통하여 대략 초축시기를 삼국시기 중후반경으로 추정하고
계양산성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장차 국가 사적으로 지정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 이번 발굴조사의 의미와 성과는 무엇입니까?

발굴결과 서벽 구간은 성의 높이가 7m 정도라고 추정되며 성의 외벽과 내벽사이의 두께는 4m로 확인 되었다.
외벽은 잘 다듬은 돌로 기울기가 거의 수직으로 쌓았으며, 내탁은 할석으로 견고하게 쌓고,
외벽으로 기저부에는 보축한 시설이 남아 있다.

출토된 유물은 6m×12m라는 좁은 조사 면적에서 다양하고 많은 양이 출토되었다.
특히 기와편은 1.5톤 트럭에 가득 담을 정도로 수습되었고, 철기류는 53점이 출토되었는데
종류는 철촉, 철정, 칼, 철제이기(鐵製利器)등 양과 종류가 다양하다.

그리고 철기류의 시기는 백제시기 혹은 고신라시기로 추정한다.
토기류 또한 다양한 파편들이 나오고 있는데, 고배류·호루·뚜껑류·완류·시루·발형토기편 등이 있고 백제와 신라시기 토기로 추정하고 있다.

성의 구조와 수습 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초축시기는 삼국시대 백제시기로 추정하며,
늦어도 고신라시기 즉 진흥왕이 한강을 장악한 6세기 중엽까지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추후 더 많은 발굴조사를 통하여 정확한 연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 계양산성의 국가사적지 지정 필요성이 많이 제기되었는데, 국가사적지가 될 만한 가치가 있는지요?

그동안 인천은 국가 사적의 불모지로 인식되었으나. 계양산성의 발굴로 해소되었다.
이 곳은 한강어구를 장악하고 서해로 진출할 수 있는 관문의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관방유적이며,
계양산성 서벽의 규모 및 축조형태와 6m×12m라는 좁은 조사 면적을 발굴하였지만 성벽축조의 견고함이나
웅장한 규모로 보아 서해와 한강어구, 그리고 부평, 김포평야를 장악할 수 있는 전략적 요새임을 알 수 있었다.

# 그동안 각종 문헌을 근거로 계양산성의 축조연대를 삼국시대로 추정하고 있는데, 보다 확실한 축조시기를 확인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요?

알다시피 문헌상에는 삼국시대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더욱 확실한 방법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서 성벽을 계속 발굴조사하고,
이밖에 문지, 건물지, 연못지, 수구 등을 연차적으로 발굴 조사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

# 계양산성의 국가사적지 추진을 위해 지역과 관계기관이 할 일은?

계양산성을 국가사적으로 지정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계양산성 주변의 주민들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계양산성 주변의 현재 건물과 건물사이의 높이를 유지하되 앞으로 4·5층 정도의 스카이라인을 정해서
계양산성의 경관을 보존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관계기관의 지속적인 발굴과 정비가 필요하며 성곽전문 연구소의 설립이 필요하다.

취재기자  ( @gyeyangnews.com)



     
     시민저널 기자 webmaster@insimin.com
     
     계양구에 위치한 해발 394m의 계양산은 인천시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산이다.
     진달래가 계양구를 상징하는 꽃이듯이 이산에는 유난히 진달래가 많고,
     특히 팔각정 부근에는 무리를 지어 그아름다움을 뽐낸다.
     
     산 아래에는 계양문화회관, 경인여대, 백용사, 성불사, 연무정 등이 자리잡고 있다.
     계양산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막힘이 없다.
     
     서쪽으로 영종도, 강화도 등 주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며,
     동쪽으로는 김포공항을 비롯한 서울시내전경이 자리를 잡고 있고,
     북쪽으로는 고양시가지가, 남쪽으로는 인천시내가 펼쳐진다.
     
     산행은 연무정에서 시작해 팔각정을 거쳐 정상에 오른후,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계산약수를 거쳐 계양문화센터로 내려가거나,
     징맹이고개쪽으로 능선을 계속타면 된다.
     
     어느 코스건 2시간 안팎이면 충분하며,
     인천시내의 산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함에도 불편이 없다.
     
     산에 오를 때 팔각정 지나 사거리안부 ↔ 정상코스 및 정상 ↔ 계산약수터 구간은
     미끄럽고 가파르며 잔돌이 많으므로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매우 주의해야 한다.
     
     특히 등산로에 조성된 지압길과 산림욕장은
     건강한 삶을 원하는 웰빙족들의 단골코스가 되고 있다.
     
     <계양산성> 계양산성은 삼국시대 축조된 석성으로 고산성으로 불려지기도 하며
     계양산 주봉의 동쪽 능선 23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증보문헌비고’ 관방 성곽조에 “이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둘레가 1천937척(587m)이나 지금은 쇠락하였다”라고 기록돼 있고
     조선 세조때 계양산성 아래쪽 병방동에 중익진을 설치한 것으로 볼 때
     계양산성은 삼국시대 이래 부평의 산성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산행코스>
     △제1코스(약 1시간 40분 소요): 연무정-팔각정-헬기장-정상-계산약수-계양문화센터-연무정
     △제2코스(약 2시간 소요): 연무정-팔각정-헬기장-정상-헬기장-징맹이고개-계산동
     
     만일 차가 연무정이나 계양공원주차장에 있다면 1코스, 2코스 모두 도로를 따라
     원점까지 걸어가면 되는데, 산행시간이 짧기 때문에
     도보로 이동하기에 힘겹지 않으므로
     차를 연무정이나 계양공원 주차장에 세우고 산행 후
     다시 걸어서 되돌아오는 것이 좋다.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에는 계산역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해
     연무정-정상-징맹이고개-계산역의 코스로 산행을 하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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