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천이야기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by 형과니 2023. 3. 31.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20 08:34:18

 

추억의 그시절 들여다 본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그때는 그랬었지

 

1960~70년대 달동네 서민의 생활상을 테마로 한 체험박물관인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지난 200510월 개관했다. 이 곳은 인천 토박이들은 물론, 전국의 '달동네' 사람들에겐 고향 같은 곳이다.

 

박물관은 동네어귀, 구멍가게 등 달동네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특히 이 곳에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마네킨으로 만들어 생생함을 더한다.

 

정년 퇴직 이후 폐지를 수집해 불우이웃을 도왔던 고 맹태성씨, 수도국산 달동네가 사라질 때까지 지게로 연탄을 배달한 유완선씨, 동인천 구름다리에서 솜틀집 '은율면업사'를 운영하던 고 박길주씨, 송현동 83번지 대지이발관을 운영하던 박정양씨 등은 비록 마네킨의 모습이지만 지금은 아파트촌으로 변모한 수도국산 한 복판을 지키고 있다.

 

'송현상회'는 군것질거리와 생활필수품을 골고루 갖춘 구멍가게. 환희, 아리랑 등 당시 담배와 태양캬라멜, 쫀드기 등 지금은 추억의 생필품이 돼버린 제품을 잔뜩 쌓아놓고 관람객들을 유혹한다. 당시 구멍가게는 밀가루나 설탕 등을 함석이나 유리상자 안에 넣어두고 봉지에 담아 팔기도 했다.

 

골목을 조금 오르면 공동수도가 나온다. 한 통에 얼마씩의 돈을 받고 물을 파는 사람과 물지게를 진 소년이 뭔가를 열심히 얘기하고 있다.

 

맞은 편으로 '퍼세식' 공동화장실이 놓여있다. 이 두 칸의 화장실 앞에서 동네사람들은 아침마다 줄을 서 발을 동동 구르며 차례를 기다렸다 볼일을 보았다.

 

'청산학원'은 이 곳에 있던 야학당이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주경야독하던 사람들이 공부하던 곳이다. 이와 함께 고쳐서 쓰면 하나도 버릴 게 없었던 시절의 '재활용품 전시장', 유년시절의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앉은뱅이 책상',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어머니, 박치기왕 김일 선수의 경기를 바라보는 가족들도 눈에 띈다.

 

20분에 한 번씩, 박물관은 밤이 된다. 노을이 지고 개가 짖는 풍경, 통행금지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달동네의 밤은 깊어만 간다.

 

'TV동화 행복한 세상'. 맹 할아버지는 오늘도 동사무소 앞에 폐지를 잔뜩 쌓아두셨습니다. 동사무소 직원들이 "할아버지 여기는 공공장소이니 치우세요."라고 아무리 말해봐야 헛수고 입니다. 수도국산은 산동네라 딱히 폐지를 모을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가 폐지를 팔아 소녀가장 영희에게 쌀과 연탄을 사준다는 사실을 알면, 아마 누구도 할아버지에게 면박을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지이발관 박 아저씨가 5평 남짓한 공간에서 은율면업사 박 아저씨의 면도를 해주고 계십니다. 지게 높이 아슬아슬하게 연탄을 실고 비탈길을 오르던 유 할아버지가 대지이발관을 향해 인사를 건넵니다. "어이~ 수고들 하게" 유 할아버지는 맹 할아버지의 부탁으로 영희네 집에 연탄을 배달하는 중입니다.


이발사 아저씨가 중얼거립니다. "저 어르신 아니면 우리 수도국산 사람들 몽땅 얼어죽었을 것이구먼." 솜틀집 아저씨가 맞장구를 칩니다. "아 누가 아니래유, 산동네에 연탄배달해주는 사람이 요즘세상에 어디 또 있을라구."


인천의 대표 달동네 동구 송현동 '수도국산'. 지금은 아파트가 빼곡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곳은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숨막히는 비탈길이 나 있던 곳이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하 박물관)을 찾은 것은 조금은 감상적인 향수에 젖어서다.

 

수도국산 꼭대기에 틀어앉은 박물관에 들어서자 골목어귀가 드러난다. 어귀에선 할아버지가 폐지를 줍고 있고 그 옆에선 아저씨가 뻥튀기를 튀기는 중이다. '송현상회'는 백열등 불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다. 구멍가게 안에는 태양캬라멜, 환희담배가 반짝반짝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조금 더 오르자 빨간색 5촉전구를 켜 놓은 두 칸 짜리 '공동변소'가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담벼락엔 낡은 반공방첩, 쥐잡기 포스터가…. 달동네에 밤이 온다. 다듬이질, 고양이, 야경꾼(방범대원) 소리가 새나온다. 마지막 코스인 전시장엔 재활용품과 '난쏘공'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 서민생활상을 그린 책들도 갖춰놓았다. 1970년 대 도시변두리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 내부는 전체적으로 '따뜻한 어두움'의 색조를 띤다.


다시 'TV동화 행복한 세상'. 멍멍… 슬레이트 지붕에 석양이 내려앉기 시작합니다. 시나브로, 달님과 별님들도 하나 둘 얼굴을 내밉니다. 잠자리에 누운 철수가 옆에 나란히 누운 동생의 얼굴을 확인합니다. 동생은 쌕쌕거리며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철수가 영희에게 말을 건넵니다. "누나, 엄만 언제 오시는거야?" "……." 앉은뱅이 책상에서 공부를 하던 영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작고 네모난 창틀을 가리킵니다. "저기 반짝이는 거 보이지? 저 별나라로 여행가셨는데 몇 밤만 자면 오실거야." "으…응… 알겠어 누나." 돌아누운 철수의 얼굴 위로 주르륵 물방울이 흘러내립니다.

 

수도국산은

 

인천의 대표 달동네였던 수도국산의 원 이름은 '만수산' 혹은 '송림산'이었다. 바닷가의 조용한 소나무숲이었던 송림산은 소나무를 베어내고 언덕에 정착해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달동네 역사를 시작했다. 수도국산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이 곳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지(수도국)가 생기면서 부터다. 인천은 본래 우물이 적을 뿐 아니라 수질까지 나빴다. 한국 정부는 1906년 일제 통감부의 강압에 의해 탁지부에 수도국을 신설하고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상수도 공사에 착공, 이 곳에 수도국이 생기게 됐다. 일본인에게 상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은 비탈진 소나무숲인 송현·송림동으로 몰려들었다. 한국전쟁 때는 피란민들이 정착했으며, 1960~70년대엔 산업화와 함께 일자리를 찾는 전라·충청 지역 사람들까지 가세했다. 그 결과, 55천평 규모의 수도국산엔 3천여 가구가 모둠살이를 시작했다.

 

찾아가는 길

 

지하철1호선을 타고 동인천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나온다. 정면 '역전샛길'로 빠지면 큰 길이 나오는데, 길 건너편에 '송현시장 입구 아치'가 보인다. 입구를 통과해 약 400m 걸어오르면 언덕 위에 박물관이 나온다.

 

시내버스는 12, 16, 17-1, 41, 62번을 타고 좌석버스는 105, 105-1, 112을 타고 미림극장 앞에서 내리면 걸어서 7분 거리다. 혹은 2, 3, 10번을 타고 복음병원 앞에서 내려도 된다.

 

승용차로 갈 경우 제1경인고속도로 가좌 IC (동인천방향)-재능대학-을 거쳐 송림오거리까지 오면 동인천역 방향(배다리쪽)으로 10m 지점에 박물관 이정표가 보인다. 여기서 오른편 골목(SK텔레콤)으로 우회해 들어오면 50m 지점에 '경기부동산'이 나온다. 그 삼거리에서 좌회전 한 뒤 약 400m정도 직진하면 오른편에 배모양의 박물관 건물이 드러난다. 2경인고속도로 종점으로 올 경우 동인천방향을 지나 배다리 삼거리에서 좌회전, '화도진길'로 진입한다. 500m 정도 직진한 뒤 삼거리 오른편 모퉁이에 '송현시장 입구 아치'가 보인다. '인천종합동물병원''코리안숯불바베큐' 사이길로 진입해 약 400m 정도 직진, 언덕을 오르면 왼편에 박물관 건물이 보인다.

 

박물관을 이용하려면

 

관람시간은 오전9~오후6시까지다.(매표 마감은 오후530) 매주월요일과 11, 설날과 추석날 당일은 휴관한다. 관람료는 어른 500, 청소년·군경 300, 어린이(5~12) 200원 등이다.

4세 이하 65세 이상은 무료다.

 

박물관에선 연만들기, 솟대깎기, 한지공예 등 연중 내내 어린이·청소년, 가족,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종합문의 032-770-6131~2  /·사진=김진국기자(블로그)free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