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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최초의 해군사관학교와 근대군함 첫선

by 형과니 2023. 4. 1.

최초의 해군사관학교와 근대군함 첫선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21 00:59:53

 

최초의 해군사관학교와 근대군함 첫선

 

 

강화도에 세운 사관학교 2년만에 폐교된 까닭은...

화물선 개조한 '양무함' 이름만 군함

이듬해 두번째 입항 배도 '유명무실'

, 조선 해양강국꺼려 강제 폐교

 

구한말 시절은 서구 열강들이 군함을 앞세우고 한반도 연안에 빈번하게 출몰하면서 갖가지 요구를 내세우며 침략하는 사태가 빈번히 벌어졌다.

 

특히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프랑스와 미국 등 제국주의 열강들이 보유하고 있는 함선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쏘아대는 대포의 위력을 익히 보아왔던 대한제국 황제 고종은 최첨단 군함 없이는 해상방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에 고종은 승려 이동인에게 비자금을 준 후 신식군함을 도입하라는 비밀지령을 내려 군함도입을 시도했으나 이동인은 이를 시도하기도 전에 암살 당하고 비자금도 종적을 감춰 군함도입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이후 일본은 모든 첩보망을 동원해 조선의 군함구입을 원천봉쇄하는 정책을 폈으며 이에 고종은 군함구입에 앞서 해양강국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해군력 증강에 있다고 보고 해군을 양성하기 위한 군사교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고종은 이를 위해 18932월 경기, 충청, 황해 등 3도의 수군을 통할하기 위해 설치한 군영인 기연해방영(畿沿海昉營)을 근대식 해군편제로 전환시켰다.

 

이어 조선정부는 해양 강국인 영국에 군함 제공과 해군군사교육을 위해 영국 해군장교 파견을 요청했으나 동북아 정세와 강대국간의 이해관계로 인해 군함 도입은 수포로 돌아가고 해군 창설의 기초가 되는 해군사관학교 설립만 착수한다.

 

같은 해 3월 해군사관학교 설치령을 공포하고 강화도 갑곶진 근처(현재의 구 강화대교와 신 강화대교 사이)에 교사를 신축하면서 최초의 해군사관학교가 창설된다.

 

그러나 강화도 해군사관학교의 앞날은 순탄치 못했는데 설립 초기부터 갖은 방해공작을 펴온 일제가 청일전쟁에 승리한 1895년 조선의 해군제를 강제로 폐지해 우리나라 최초의 해군사관학교는 끝내 문을 닫는 운명을 맞게 된다.

 

해군사관학교가 폐쇄된지 8년 후인 1903년 우리 해군사에 길이 남을 근대식 군함의 효시인 양무호(揚武號)가 인천항에 닻을 내린다.

 

양무호는 고종이 해군창설을 위해 일본에 군함을 의뢰했고 다음해 미쓰이물산 합명회사(三井物産合名會社)가 군함을 납품함으로써 국내 첫 근대식 군함이 선을 보이게 됐는데 영국에서 만든 화물선을 군함으로 조잡하게 만든 것이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결국 이듬해인 190411월 인천항에 두 번째 군함인 광제호가 일본 가와사키 조선으로부터 들어왔으나 군함으로서의 역할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면서 외세와 단 한번의 전투도 없이 역할을 끝내야 하는 운명을 맞았다.

 

하지만 일본이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 사사건건 조선의 군사력 확대를 저지했음에도 일개 조선회사에서 군함을 납품했다는 것은 의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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