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천이야기

북문고개~고려산~적석사

by 형과니 2023. 4. 2.

북문고개~고려산~적석사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22 00:55:10

 

(6)북문고개~고려산~적석사

 

연개소문의 `우렁찬 목소리' 들리는 듯

 

 

, 바람, 여자가 많아 제주도를 삼다도(三多島)라 한다. 강화도에도 강화삼다’(江華三多)라는 말이 있다. 역사가 깊고, 인물이 많고, (文章)이 뛰어나다는데서 연유된 얘기다.

 

강화도는 선사시대로부터 현대까지 유서 깊은 고장이요, 마니산의 영험함과 고려산의 높은 기개가 어려있으니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일까. 강화도에서 나고 자란 것마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신비함이 깃들어있다. 대표적인 예가 순무. 붉은빛을 띠는 순무의 맛은 같은 씨를 육지에 뿌려 거둔 순무와 확연히 다르니 강화도엔 알 수 없는 뭔가 특별한게 있다는 생각이 앞선다.

 

한남정맥의 들머리이자 종착점인 문수산을 뒤로하고, 염하를 건너 들어선 갑비고차의 첫 출발지는 고려산. 연개소문이 태어나 말을 달리며 기개를 높였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65일 오전 950분 종주단은 강화산성 북문을 들머리로 제6구간을 시작한다.

 

강화산성은 몽골의 침략으로 도읍을 강화로 옮긴 고려가 흙을 쌓아올린 토성(고려 고종19·1232). 강화읍에 있는 북산과 견자산·남산의 능선을 잇는 포곡식 산성으로 둘레가 7.1. 1259년 몽골과 화친을 맺을 때 내·외성을 모두 헐어야 한다는 조건에 따라 고려 조정은 환도할 때 강화산성을 모두 헐었다.

 

조선 숙종 36(1710) 때 강화유수 민진원이 지금의 모습으로 성을 쌓았다. 현재 동문(복원 계획 중) 이외의 서··북문은 모두 복원했다.

 

종주단은 진송루라 부른 북문을 출발, 김작골로 향했다. 마루금엔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어 우회가 불가피 했다. 길 양편으로 여름을 재촉하는 뙤약볕 아래 모내기를 끝낸 논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다.

 

고려산 동북쪽 긴 산등성이 아래 있는 김작골’(오전 1040)짐작골이라고도 한다. ‘긴 산 아래골에 있는 마을이라 풀이하기도 했고, 꾀꼬리가 많아 금작이라고 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종주단이 잠시 숨을 돌리고 있을 때, 이방인을 경계하듯 거위 한 쌍이 시끄럽게 짖어댔다. 김작골 입구에는 이제는 꾀나 알려진 곤충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문수산 구간보다 힘들다는 사전 답사팀의 으름장에 처음부터 발걸음이 무겁다. 그래도 능선에서 경험하는 산은 여유롭기만 하다. 그대로 서서 사람의 발길을 막지 않았다. 가끔 앞사람 발뒤꿈치에서 눈을 떼, 주변을 둘러본다.

 

오전 1130분 고려산 정상 등반에 앞서 청련사와 백련사의 갈림길인 길막재에 다다랐다.조금만 더 오르면 된다는 독려에 뒷심을 발휘하며 고려산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10.고려산 정상에 있다는 오정’(五井·오련지)은 애석하게도 군부대 안에 있어 확인하지 못했다.

 

고려산에서 적석사를 잇는 마루금중 일부를 치마대라 부른다. 고려산 북쪽 시루미봉 아래마을에서 태어난 연개소문(?665)이 말을 달리며 호연지기를 키웠다는 전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강화도 향토지인 강도지에 연개소문의 집터와 치마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정설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 시기는 신라가 한강하구 일대를 점령한 때라, 고구려 막리지의 아들인 연개소문이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전설은 신빙성이 없다. 하지만 강화도와 연개소문간에 어떤 관계가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고려산 정상에 서면, 북녘의 산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송악산은 물론 연백평야의 젖줄 예성강을 볼 수 있는데 해무가 끼어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북쪽을 바라보다 고개를 천천히 돌리면, 교동도 일대의 강화 앞바다와 영종도, 경기 고양시 일산, 서울 여의도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산 아래로는 하점면의 너른 평야가 펼쳐져 있는데, 고려 대몽항쟁기 부족한 식량을 채우기 위해 바다를 메워 만든 논이다. 이 땅에서 강화도 전체 주민이 5년간 먹을 수 있는 쌀이 나온단다.

 

오월이면, 고려산 정상이 붉게 물드는 장관이 펼쳐진다. 진달래·철쭉 군락지가 20여만평에 이른다. 꽃이 피는 때에 맞춰 철쭉축제가 벌어진다.

 

굽이쳐 흐르는 강처럼, 바람따라 햇살따라 구불구불 자란 소나무 아래서 햇볕을 피해 점심시간을 갖고 출발한 시간은 낮 1240.

 

10여분쯜을 걸었을까. 고천리 고인돌군이 발길을 잡는다. 인천시립박물관 이희인 학예연구사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진다. 원래 강화는 세개의 섬. 그 사이사이 바닷길을 메워 하나의 섬으로 된 것이다. 청동기시대엔 바닷가였을 산아래 마을 사람들이 산 위에 무덤을 조성했을 것으로 짐작한다는 설명이다.

 

오후 1406구간의 산행의 종착점인 적석사 낙조봉에 도착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시간이라 강도8경의 하나로 꼽히는 빼어난 낙조는 감상할 수 없었다.

 

알면 알 수록 더 새로워지는 강화도의 산줄기와 만난 첫날은 시원한 약수물로 더운 머리를 식히는 것으로 마감했다. /김주희기자 (블로그)kimjuhee

 

구간따라잡기/고려산과 적석사

 

강화의 진산으로 오련산이라고도 불린 고려산(436m)은 주변의 사찰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416년 인도의 조사스님이 중국 동진으로부터 들어와 이 산에 머물며 산 정상 연못에 핀

오색(, , , , )의 연꽃을 날려 각기 떨어진 곳마다 다섯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 중 붉은색 연꽃이 떨어진 곳에 사찰을 짓고 적련사라고 불렀는데 그 곳이 지금의 적석사다.

 

적석사는 여러차례 중건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영조 29(1759)

큰 화재로 향로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된 이후 대규모 중창불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몇 해 전 경기북부에 내린 폭우로 사찰이 큰 피해를 입은 후 법당을 비롯한 23동의 건물이 차례로 지어졌다.

 

전설과 관련해 지금 고려산 정상 군부대안에 있다고 전해지는 연못을 오련지라고 부르고

주변의 사찰을 청련사, 백련사, 황련사, 흑련사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의 고려산이라는 이름은 고려 고종19년 몽고 침입에 따른 강화천도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특히 일출명소인 동해 정동진에서 일직선상에 있다는 적석사 낙조봉은 억새밭,

적석사사적비 등과 함께 대표적인 볼거리로 통한다.

 

숙종40(1714)에 세워진 적석사사적비는 높이 394, 너비 69에 백하 윤순이 비문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비문에는 불교의 전래 및 사찰의 중건 중수상황과 고려시대 몽고 침입에 대항하여 도읍을 옮겼을때

임금의 거처로 사용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또 적석사에는 나라의 액운이 낄 때마다 붉은색 물을 토해낸다는 신비스런 약수가 전해지는데

지금은 물이 말라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이원구기자(블로그)jjlwk

 

 

고천리 고인돌

 

고려산 정상에서 적석사 낙조봉으로 가는길 중간쯤에 1.52m 크기의 돌이 무더기로 분포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강화도 고인돌은 섬 전역에서 발견되는데, 주로 고려산과 혈구산, 별립산 일대에 집중돼 있다.

특히 고려살 일대에는 삼거리 고인돌군, 고천리 고인돌군, 부근리 고인돌곤, 오상리 고인돌군 등

가장 많은 고인돌군이 있다.

 

특히 고려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길게 뻗은 산마루를 따라 고인돌이 떼를 이루고 있다.

바로 고천리 고인돌군인데, 해발 250300m 산마루에 모두 20여기의 고인돌이 3군데 군집을 이뤄 분포해 있다.

강화도내 지석묘 대부분이 능선이 산기슭, 평지 등 낮은 곳에 분포해 있는 것과 달리,

고천리 고인돌군은 산 정상 부근에 있는 것이 특이하다.

 

산 정상까지 그 큰 돌을 지고 올라왔을리 없고, 인근 채석장에서 돌을 캐 썼다. 북방식과 남방식이 혼재해 있다.

 

/김주희기자 (블로그)kimjuhee

 

 

 

5구간:남정골~문수산 성동

넉넉하게...산을 사람을 품는구나

 

남정골문수산 성동리(10.5)

 

사람이 그렇듯이 산도 항상 홀로 외로운 것만은 아니다.

 

요즘이야 산에 갔다왔다고 하면 등산을 의미하지만 예전엔 부모님의 산소를 돌보거나 공부, 혹은 병을 치료하기위해서도 산에 다녀왔다는 표현을 쓰곤 했다.

 

사람들은 산에서 건강 뿐 아니라 잠시 잊었건 상상력을 되찾아오기도하고 삶의 여유를 얻어 온다.

 

이번 기획의 반환점이자 한남정맥을 마무리하고 강화(갑비고차)로 넘어서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산에게 돌려주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자리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일반체험단과 함께하는 제5구간은 남정골 한들고개와 알미고개를 거쳐 문수산 정상과 북문으로 이어지는 10.5구간이다.

 

529일 오전 950. 9명의 탐사종주단과 전화 접수로 선착순 모집한 무료체험단 30여명은 고속버스에서 내려 남정골 끝자락에 위치한 한들고개를 들머리로 산행을 시작한다.

 

한들고개는 월곶면 갈산리로 통하는 고개로 마루터기에 차돌로 된 고인돌이 있어 흰돌고개로 부르던 것이 음운변화로 지금의 한들고개로 불리게 됐다고 전해진다.

 

고개를 올라서면 곧바로 해발 95m 높이의 작은 언덕인 한산(오전 105)이다. 아무리 미약한 산세지만 이 정도 높이에 크다는 의미의 한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특별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부근에 부족장의 묘로 보이는 북방식과 남방식 지석묘 3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적지않은 규모의 선주민이 살아 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산에서 숲이 우거진 능선을 따라 걸으면 독굴에서 갈산리로 넘어가는 길목인 알미고개(오전 1040). 고개라고 부를 만큼 지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이라는 단어가 기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 이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알미고개에서 당고개(오전 1055)로 이어지는 마루금도 낮은 구릉으로 이어진다. 이 일대는 문수산 동쪽에 해당하는 언덕으로 해발 100m 내외의 봉우리로 이어져 있다.

 

사래울에서 고막리로 나가는 큰 도로방향으로 통하는 고개인 당고개에서 문수산 들머리인 무시미까지는 비교적 마루금이 잘 이어져 있지만 대부분 비포장 군사도로로 사용되고 있다.

 

흙먼지 나는 황톳길을 걸어 무시미(오전 1120)에 도착한 일행은 문수산 정상등반을 앞두고 그늘에서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다.

 

안성 칠현산과 함께 192에 이르는 한남정맥의 종착점이자 들머리이기도 한 문수산은 김포평야를 힘겹게 가로지르며 보여준 미약한 산세를 만회라도 하려는듯 마지막 용틀임을 하며 해발 376m의 산세를 품고 서 있다.

 

울안이라고 부르는 마을에서 고막리로 향하는 큰 골인 무시미에서 문수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30여분간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야 한다.

 

문수산 정상(오후 1210)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한 종주단과 체험단은 오후 1시부터 기념촬영과 개별산행객들을 위한 기념품 증정행사 등을 가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비아산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는 문수산 정상에서는 동쪽으로는 한강과 서울의 삼각산까지 조망이 가능하고 반대편으로는 인천앞바다와 강화도의 산줄기, 그리고 북녘의 산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행은 김포군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성곽인 문수산성의 성벽을 따라 하산에 나선다.

 

군용 교통로를 따라 내려서다보면 10여명이 올라설 수 있을 만한 봉우리에서는 강화대교와 강화도와 김포반도를 가르는 바닷물이 오가는 염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1970년에 개통 이후 초지대교가 들어선 2002년 전까지 30여년간 강화도를 오가는 유일한 교통로로 사용된 강화대교도 아직 그 위용을 자랑하듯 버티고 서 있다.

 

한남정맥의 마지막 산줄기가 물밑으로 고개를 내리는 보구곶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전망이 빼어나다.

 

종주단은 문수산성의 성벽을 밟으며 오른편으로 다음 6구간부터 본격적인 탐사종주에 들어갈 강화군 일대의 산줄기들을 내려보며 북문을 향해 걸었다.

 

이번 구간의 종착점인 성동리(오후 230)는 성안을 뜻하는 성내리와 동쪽이 막힌 마을이라는 뜻의 동막리가 합쳐진 이름으로 강화대교가 건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김포와 강화 갑곶리를 오가는 성동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안성에서 시작해 용인과 수원을 거쳐 인천을 향해 힘차게 달려온 한남정맥의 줄기는 미약한 김포평야를 넘어 다시 인천시 강화군의 문턱에서 그 산세를 조용히 마감한다.

 

그러나 그 산줄기의 끝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건 그 마지막에 소중한 우리 선조들의 역사와 아직도 순박한 생활상이 살아 숨쉬고 있는 강화군이 자리하고 있다는 건 종주단에게 큰 행운이다.

 

종주단이 한남정맥을 마감하고 인천시민들에게는 아직도 가깝고도 먼 땅인 강화군의 산줄기를 다시 찾아나서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진 이원구기자(블로그)jjlwk

 

 

 

4구간:함배마을~남정골

굽이굽이 능선길 `콧노래 절로'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고 했던가. 하나의 강을 이루는 물줄기가 수백, 수천이듯이 우리의 산도 크고 작은 능선을 이루며 흘러간다.

 

그러나 물줄기 주변엔 사람들이 모여 독특한 생활문화를 만들어 왔고, 반대로 산줄기는 사람과 물을 가두며 문화적 이질성을 만들어내는 경계선 역할을 해왔다.

 

지금 우리가 걷는 마루금이 마을과 마을, 혹은 시와 도를 나누는 접경선으로 쓰이고 철탑과 군부대 초소들이 자리하는 것도 결국 산과 강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의미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위적으로 가공된 지질학적인 선인 산맥지형도와, 실존하는 우리 산과 강을 기초로 그린 산경도의 차이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515일 오전 9. 주점 주인의 인심이 후하다해서 생긴 이름인 함배마을에 집결한 9명의 종주단과 일반참가자 5명은 한남정맥에서 가장 볼품없는 산세를 보이고 있는 4구간 들머리인 오성화학() 입구에서 숨을 고른다. 이번 구간은 수안산과 대곶사거리, 것고개를 지나 남정골에 이르는 13.5구간.

 

출발부터 낮은 야산지대를 타고 올라 전주이씨 무덤군과 잡목 능선을 지나 군 교통호를 따라 마루금이 이어진다.

 

능선안부에서 제법 가파른 등로를 올라 또 다른 교통호를 따라가면 헬기장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 좌측으로 길을 잡으면 또 하나의 헬기장과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수안산(오전 950) 정상이다.

 

수안산 정상 주변은 온통 묘지 투성이지만 수안산성이 자리하던 곳으로 고대로부터 산신제를 올리던 유서깊은 장소다.잠시 산행일정을 멈추고 안내판 앞에선 종주단은 배성수·이희인 학예연구사로부터 산성과 관련한 설명을 듣는다.

 

수안산성은 비록 146m의 낮은 구릉이지만 둘레 578.5m의 동서를 장축으로 하는 장타원형 테뫼식 석축성으로 백제때 처음 축조되어 신라와 통일신라시대에 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특히 수안산성 동남쪽 계곡부의 좌우로 연결된 대능리성과 함께 1343m의 길이로 수안고현성(守安古縣城)’이라 불릴 만큼 고려 수도인 개경의 방어선 역할을 해왔다는 부연 설명이다.

 

수안산을 지나 대곳사거리로 이어지는 능선은 교통호와 묘지들이 눈에 띄지만 가끔씩 아기자기한 쉼터까지 마련된 소나무 숲길이다.

 

그러나 산행의 즐거움을 누릴 틈도 없이 종주단은 아스팔트 도로와 만난다.

 

대곶사거리(오전 1020)에서 광주이씨 집성촌이자 미륵당바위 전설이 전해오는 미륵당을 지나 팔거리로 이어지는 능선은 작은 언덕과 아스팔트길을 걸어야 할 만큼 미약한 산세에다 마을이 중심을 차지하고 앉아 있다.

 

한국전쟁이후 실향민들이 마을을 이룬 팔거리(오전 1040)에서 해란산 좌측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은 도로가 지나고 있다. 그나마 도로변 우측으로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이는 ()동인엔테크 건물 입구에 사람 얼굴모양을 한 12m 높이의 인공암벽이 종주단의 시선을 끈다.

 

이 정도의 배려라면 회사 관계자 중 지독한 암벽마니아가 있거나 앞서가는 사고를 지닌 CEO일거라는 추측을 하며 다시 마루금을 찾는다.

 

한남정맥의 미약해진 능선은 사현마을 옆을 지나 종주단이 잠시 점심식사를 위해 머물렀던 옹정리 공동묘지 뒷능선을 경유해 거친고개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고개로 이어진다.

 

볼품없는 산세지만 그나마 도로를 걷지 않아 다행이라 위안삼으며 것고개 전 좌측 안부를 타고 내려와 조선명종때 학자로 영의정을 지낸 보암 심연원 선생의 신도비가 있는 통진면 옹정리 청송심씨묘역 일대를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인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인천IC~백석초교  (0) 2023.04.02
백석초등학교∼함배마을(15.5㎞)  (0) 2023.04.02
헐구산~퇴모산  (0) 2023.04.02
한남정맥 체험행사  (0) 2023.04.02
강화 5일장 4곳  (0) 2023.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