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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달동네 박물관 - 정으로 살았던 '서민의 고향'

by 형과니 2023. 4. 3.

정으로 살았던 '서민의 고향'

인천의관광/인천가볼만한곳

 

2007-03-25 13:47:31

 

정으로 살았던 '서민의 고향'

[달동네 박물관]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만한 좁은 골목. 불규칙한 계단이 여기저기로 연결되고, 10앞에 뭐가 있을 지 모를 정도로 구불구불 꼭대기로 이어지는 길. 대문 마다 내놓은 하얀연탄재와 검댕이 묻어나는 나무전봇대에 붙은 계몽포스터. 귀를 기울이면 낮은 담장 너머로 그날 있었던 이웃집 대소사를 모두 알 수 있었던 아련한 기억.

 

 지난 1960~1970년대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터전을 잃고 쫓겨난 사람들이 산자락에 옹기종기 모여살면서 생긴 달동네는 도시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곳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의 대명사로 달동네라는 이름이 굳어진 건 지난 1980'달동네'란 드라마 방영 이후.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 보듬고 정을 나누며 사는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 속에 달동네는 여전히 '()'이란 추억으로 남아있다.

 

 인천지역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송현동 옛 수도국산(水道局山)도 인천토박이들에겐 가슴 시린 추억이 서려있는 고향 같은 곳이다. 본래 만수산(萬壽山) 또는 송림산(松林山)이었던 이 곳은 지난 1909년 일제가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꼭대기에 배수지를 만들면서 수도국산으로 불렸다. 6·25 전쟁과 산업화를 겪으며 피란민과 일자리를 찾아 올라온 충청도, 전라도 사람들이 모여들며 수도국산 달동네가 형성됐다. 이후 1990년대 후반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시작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달동네가 25'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을 통해 다시 태어났다. 박물관 관계자는 달동네 박물관은 고단했던 시절 부지런히 일하면서 이웃과 더불어 살았던 달동네의 미덕과 추억을 되살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폄훼돼 온 달동네를 건전한 시각에서 재조명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은 다른 박물관들처럼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전체를 둘러보는데 1시간이면 족할 정도로 규모도 작다. 그렇지만 세간의 주목을 받는 건 우리나라 박물관 역사를 돌이켜볼 때 매우 이례적으로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달동네 박물관은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사람들이 실질적인 역사의 주체였음을 인정하는 진보적인 인식의 결과라며 이것이 우리 박물관의 가장 큰 의의라고 말했다.

 

 주제에 맞게 박물관은 보통사람들과 그들의 삶으로 가득하다. 게다가 놀랍게도 이들은 수도국산 달동네에 실존했던 인물들이다. 폐지를 줍는 '호랑이눈썹 할아버지'는 지난 2000년 작고한 맹태성씨를 모델로 했다. 그는 퇴직 뒤 죽는 날까지 송현동 일대에서 폐지를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등 선행을 베풀었다. 연탄가게 마네킹은 달동네가 사라질 때까지 지게로 좁은 골목을 오르며 연탄을 날랐던 유완선(69)씨가 모델이다. '은율솜틀집'6·25 전쟁 때 황해도에서 피란내려와 '은율면업사'를 열었던 박재화씨의 손자 박길주(2004년 작고)씨를 모델로 재현됐다. 고 박씨는 유언을 남겨 솜틀기를 박물관에 기증했고, 이 솜틀기는 현재 전시실에 놓여져 있다. 현재도 이발관을 운영하는 박정양(62)씨는 '대지이발관'의 마네킹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박씨는 10대 중반이었던 지난 1957년부터 수도국산 일대에서 가장 오래됐던 대지이발관에서 이발기술을 배웠다.

 

 한편 달동네 박물관은 세트 및 미니어처를 통한 체험 중심의 전시실로 꾸며져 유물 보존과 관람을 목적으로 하는 기존 박물관과 차별화된다. 박물관 관계자는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는 한편 달동네 주민들의 생활사를 주제로 한 전문박물관이라며 보고 만지고 체험해 볼 수 있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인천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에선 까다로운 고증을 거쳐 복원된 지난 시절 달동네의 모습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230여 평의 공간은 크게 달동네 생활상을 재현한 전시실과 '달동네 삶의 편린들'이란 주제로 각종 생활유물들을 전시한 기획공간, 기념품코너 등이 있는 기념공간 등으로 꾸며져 있다.

 

 전시실은 뻥튀기장수와 '은율솜틀집', '대지이발관', 연탄가게, '송현상회' 등이 들어서있는 '상가구역', 공동수도 및 변소, 야학, 성냥갑 만드는 사람들이 자리한 '공동구역', 저녁 먹는 가족과 TV 보는 사람 등이 재현된 '생활구역'으로 구성됐다. 누런 신문지를 덕지덕지 붙인 방, 비닐로 막은 창문, 때가 묻어 시커먼 문고리, 부뚜막에 놓인 놋쇠주전자 등 어느 것 하나 그때 그 시절 물건이 아닌 게 없다.

 

 특히 상점과 가옥에 놓인 마네킹들은 당시 수도국산 달동네에서 살았던 실존인물들을 토대로 재현됐다.

 관람객들은 전시실을 돌며 물지게지기, 옛날교복입기, 연탄불갈기, 성냥갑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기회공간에 마련된 진열장은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붙이고, 꿰맨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달동네 옛 생활용품들로 채워져 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냄비땜질도구와 고무신 수선도구 뿐 아니라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생활유물들이 시대별로 전시돼있다.

 

 이곳은 옛 장난감과 먹을거리, 전화기, TV, 잡지, 교과서 등을 통해 자신만이 간직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다. 기념공간에선 예전 만화책들로 채워진 만화방과 수도국산 달동네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다. 한편 송림복덕방을 재현한 박물관 입구 안내데스크에선 터치스크린을 통해 수도국산 주민들의 인터뷰와 박물관 구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생활유물은 직접 구입한 1600여 종 4천여 점과 기증받은 270여 종 1400여 점 등 모두 5400여 점. 동구 박물관팀은 지난 2004년부터 3차례에 걸쳐 서울 황학동 등 전국의 고물상을 뒤져가며 옛 물건들을 구입했다. 전시물은 대부분 실제로 쓰였던 것들로 크게는 장롱 등 가구류와 솜틀기, 부엌살림, 재봉틀, 전화기부터 작게는 성냥, 구슬, 딱지 등 종류도 다양하다.

 

 박물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규모는 작은면서도 관람 뒤 많은 것을 가져갈 수 있는 '큰 박물관'을 지향한다전시공간을 세분화하고 주제를 여러 각도에서 접근시켜 달동네 서민들의 삶과 그들의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풀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의:(032)770-6131

/ 김창훈·chkim@kyeongin.com

 

 

사라져가는 우리동네 "고스란히 옮겨놓았네"

 

 사라져가는 달동네의 추억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인천시 동구 송현동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이 공사를 마치고 일반에 공개된다. 동구는 지난 2001년 말부터 건립을 추진한 달동네 박물관이 4년간의 산고 끝에 25일 개관식을 갖는다고 밝혔다. 일반인은 26일 관람할 수 있다.

 

 옛 수도 국산 해발 53m 꼭대기에 위치한 박물관은 연면적 300여 평에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 135천만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전문 박물관으로 서민들의 일상을 주제로 삼았다. 박물관은 연탄가게와 구멍가게, 이발소, 솜틀집, 야학, 공동수도 등을 재현한 세트와 생활유물들을 전시한 기획공간, 기념품코너 등으로 꾸며졌다. 보는 것을 넘어 서민들의 삶을 관람객들이 체험을 통해 느껴볼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달동네 박물관은 송림로터리에서 동인천 방향으로 진행하다 이정표를 따라 오르막길을 오르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구는 11월말까지 무료로 운영한 뒤 어른 500, 청소년 300, 어린이 200원씩 관람료를 받을 예정이다. 10인 이상 단체관람객은 50% 할인되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 김창훈·ch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