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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배다리/근현대 역사 살아숨쉬는 곳 산업도로에 '만신창이' 될판

by 형과니 2023. 4. 7.

배다리/근현대 역사 살아숨쉬는 곳 산업도로에 '만신창이' 될판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4-08 00:17:18

 

 

문화재보호법 적용 앞서 개설공사 인·허가환경영향 평가도 예외 주민, 백지화 요구

 

<글 싣는 순서>

신개발주의, 산산조각 나는 삶터

산업도로 인천 근현대역사, 정체성 파괴

삶이 숨 쉬는 역사문화 공간 만들어야

 

50m 산업도로가 배다리 지역을 가로지르려 하고 있다. 각종 개발과 공사 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늘 있어왔던 일인데, 시민문화예술계까지 나서서 도로개설을 적극 반대하고 있다. 도로개설 반대 이유는 배다리 지역이 인천의 근현대역사문화의 보고이자 인천의 정체성을 간직한 얼마 남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본보는 배다리 산업도로 개설과 관련한 현안과 쟁점, 해결방안을 3회에 걸쳐 긴급 점검한다.

 

산업도로 역사 문화의 보고를 갈라놓다

 

최근 배다리 지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한때 배다리는 헌책방과 전통공예공방, 대장간 등이 밀집해 있었다. 당연히 학생들과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창영사회복지관, 영화학교, 창영초등학교 등 시 지정문화재와 오래된 건축물 등이 있어 제법 운치가 있고 활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지난 십수년간 신도시 개발로 거주인구와 상권이 이동하면서 다소 위축되긴 했으나 여전히 배다리는 인천의 독특한 역사문화공간이자 인천의 근현대역사문화의 보고이다.

 

그런데 폭이 50m나 되는 '신흥동 삼익아파트동국제강' 간 산업도로가 배다리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려 하고 있다. 97년 도시계획시설 결정이 돼 지난해 3월부터 공사가 시작된 이 도로는 오는 201112월 완공이 목표다. 주민들의 반대로 공사가 일시 중단됐지만 시와 종합건설본부는 조만간 도로공사를 강행할 방침이다. 산업도로가 배다리를 관통할 경우 배다리는 두개 지역으로 단절되게 된다. 더군다나 동인천역 주변 재개발 등 배다리 주변 지역 재개발 사업이 계획돼 있어 배다리 지역의 문화는 왜곡되고 파괴될 위기에 놓였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도로공사 막을 수 없나

 

일시 중단됐던 공사가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근 재개됐다. 그런데 현재로선 도로공사를 막을 법적인 방안이 없다. 현행법이 각종 개발을 지원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배다리에는 시 지정 문화재 3곳이 있어 건설공사가 문화재보존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공사를 제약할 수 있다. 그런데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 공사는 관련법이 정비되기 이전에 인·허가를 받아 절차상 하자가 없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행정기관이 문화재의 외곽경계의 외부지역에서 건설공사를 시행하고자 할 때는 시·도지사는 조례로 정하는 지역안(200m)의 건설공사시 공사 인·허가 등을 하기 전에 문화재보존에 영향을 미치는지의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는 법 개정 1년 전인 99년에 인·허가를 받아 법 적용에서 벗어났다.

 

또한 길이 5이상의 도로의 경우 환경영향평가를 받게 돼 있는데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는 길이 2.5로 적용을 받지 않는다. 설령 현행법을 적용하더라도 해당 지역 구·군에서 사전검토를 거쳐 이상이 없다고 판단하면 도로개설이 가능하다. 즉 도시계획 및 도시시설계획 단계부터 관련 공무원들이 환경·생태·문화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는 한 개발을 막을 수는 없는 체제다.

 

주민들 도로개설 백지화 요구

 

주민들은 주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도로개설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오후에는 주민총회를 열어 이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지역 시민·문화예술계도 도로개설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 문제가 배다리 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인천시의 무분별한 신개발주의가 가져온 인천 정체성과 역사, 문화 파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배다리에서 헌책방 아벨서점을 운영하는 곽현숙 씨는 "시는 개발이 되면 땅값이 오르고 살기 좋아진다고 말하지만 이는 배다리의 정체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며 "문화와 역사, 추억이 어우러진 이곳을 단절시키는 산업도로를 구상한 것 자체가 잘못된 발상"이라고 말했다.

 

반면 시는 이 같은 주민들과 지역 문화예술계의 도로개설 백지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 종합건설본부 관계자는 "전체 도로 구간 중 배다리 구간을 제외한 송현터널과 유동3거리 구간 공사가 마무리된 상황이라 공사 중단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개발 논리에 밀려날 터전

시민사회, 지역 정체성·문화 말살 우려

 

신흥동 삼익아파트 동국제강 을 연결하는 10차선 도로공사가 배다리 지역을 관통하면서 역사와 문화가 서려있는 배다리를 두 곳으로 갈라 놓아 이제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글 싣는 순서>

신개발주의, 산산조각 나는 삶터

산업도로 인천 근현대역사, 정체성 파괴

삶이 숨 쉬는 역사문화 공간 만들어야

 

주민 동의 없는 도로공사

 

배다리 지역을 관통하는 '신흥동 삼익아파트동국제강'간 도로는 폭 50m(10차선)로 계획돼 있다. 도로가 개설되면 주변 주택 및 토지가격이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배다리 지역 주민들은 도로 개설을 반대하고 있다. 이 도로가 주민을 위한 도로가 아니라 화물차 통행을 위한 도로이기 때문에 매연, 소음 등의 환경공해에 시달릴 것이라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인천시의 도로계획에 따르면 시는 이 도로를 "항만 발생 교통량의 남북 수송체계를 확보하여 인천항을 이용하는 수출입 물동량의 원활한 수송체계 구축"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 과업명도 '인천시 남북고속도로'라 칭하며 산업도로 또는 고속도로의 성격을 갖는 도로로 규정하고 있다.

 

즉 인천항에서 청라경제자유구역, 서부공단으로 이어지는 산업도로가 배다리를 둘로 나누며 가로지르게 된다. 또한 인천항과 공단을 출입하는 화물차들이 24시간 매연을 뿜고 분진을 휘날리며 질주하게 된다. 이처럼 주민들의 피해가 불을 보듯 훤한데도 시는 이해 당사자인 주민들에게 충분한 설명과 동의 없이 도로계획을 세우고 공사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이후 주민들의 완강한 반발에 부딪히자 사업시행처인 종합건설본부측은 주민설명회를 개최했으나 기존 입장만을 되풀이하는 자리에 그쳤다.

 

인천 근현대역사 공간의 단절과 파괴

 

주민들의 환경오염 노출과 불편도 문제지만 이 도로가 지역 주민들의 삶과 공간을 단절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배다리는 인천의 개항기와 근대기, 산업화 역사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경인철도 착공지(1907), 창영사회복지회관(19세기 말), 영화학교(1892), 창영초교(1907) 등 시 지정 유형문화재와 인천양조장(1920년대), 헌책방거리(1953) 등이 있는 인천의 근현대사를 증언하는 역사적 공간이다. 특히 중구 일대 개항장과 달리 이곳은 인천의 교육, 기독교, 노동운동의 산실로 인천지역 민중의 역사적 의지가 담긴 장소이기도 하다.

 

배다리 지역의 역사를 연구해 온 영화여자정보고 이성진 교사는 "근대기 인천은 개항장을 중심으로 하는 이식문화지역(중앙동, 송학동), 이식문화와 고유문화가 공존하는 완충문화지역(신포동, 용동, 경동), 조선인 이주민들에 의해 형성된 변두리 문화가 존재했는데 그 변두리 문화의 중심지가 바로 배다리였다""배다리 우각로는 인천 근대교육의 산실이자 에즈베리 선교기지 등이 있었던 인천 기독교의 산실이며, 일제 강점기 노동착취에 대항해 동맹파업을 벌였던 인천 노동운동의 산실인 조선인촌주식회사가 있던 곳"이라며 이 지역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그는 "도로 개설로 인한 경제적 이익과 효율성을 먼저 고려하기 보다는 해당지역 주민과 이곳의 역사적 장소성을 고려하는 계획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고 덧붙였다.

 

신개발주의 도시 정체성 파괴, 정주성 없는 도시 전락

 

산업도로 개설로 촉발된 배다리 문제는 비단 이 지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게 시민사회의 지적이다. 개발위주 정책으로 인천의 구도심권은 아파트 숲으로 급속히 변모하고 있다. 이미 만석동, 수도국산 등 인천의 변두리 문화권이 아파트 단지라는 박제된 문화로 전락했으며 주민들은 생존 터전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다. 동인천역, 제물포, 숭의동 등에서도 이른바 도심재생사업 프로젝트에 따라 아파트 단지 건설계획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 배다리 지역도 주거환경개선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신개발주의가 갖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인가. 지역 시민사회에선 개발 정책은 결국 인천의 정체성을 말살시킬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박병상 소장은 "안 시장의 개발정책은 인천을 뿌리가 없고 정주성이 없는 도시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스페이스 빔 민운기 대표는 "배다리 지역은 신개발주의에 맞선 최후의 저항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배다리 산업도로가 지역 정체성과 문화를 파괴하는 개발주의 경제논리의 연장선임을 분명히 했다.

 

 

 

'문화 가치' 인식정립 먼저

주민, 고물품·한복거리 공간 구성안 눈길

 

문화적 가치관 정립해야

 

인천시는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동인천역 주변 72천 평을 오는 2013년까지 문화공간 및 레크리에이션 시설, 지역특화상가, 초고층 아파트 등으로 개발하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그런데 동인천역 도시재생사업은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와 함께 배다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배다리, 동인천역 주변은 양키시장, 한복·이불가게, 주방용품 상점, 전통공예상가, 헌책방 골목, 문구도매상 등으로 이어지는 문화벨트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시 계획대로 동인천역 일대를 개발을 할 경우 이 지역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문화 정체성의 한축이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동인천과 배다리는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있는 장소라는 얘기다.

문화교육기관 '언덕을 오르는 바닷길'대표를 맡고 있는 드라마고 의장은 "배다리는 100년의 역사를 가진 영화·창영 학교, 동명학교와 반세기 가깝게 한 자리를 지켜온 헌책방, 전통공예상가, 양키시장까지 '인천문화재의 보고'"라며 "이런 보물들을 개발 논리로 없앤다는 것은 기가 막힌 일이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적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도로 무효화, 재개발 중단, 도시재생계획 철회 이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즉 행정 및 정책 입안자들이 문화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먼저 정립하고 개발과 보존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생적 문화 정체성 존중해야

 

배다리 산업도로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본보가 후원하는 인천도시문화탐사대(대장 민운기)가 지난 12024일 이 지역으로 도시유목을 떠나면서부터다.

 

탐사대는 이곳에 체류하며 산업도로 건설이 가져올 폐해를 목도하고 이를 공론화했다. 이를 계기로 지난 38일에는 지역 시민사회문화예술계 및 주민들이 참여한 '도시문화포럼'이 열려 배다리 지역 문화발전을 위한 논의가 이뤄졌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문화예술단체들이 배다리에 위치한 인천양조장 건물에 공동입주, 배다리를 인천지역 문화예술의 중심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현재 인천작가회의, 스페이스 빔 등 45개 예술단체들이 이곳으로 사무실을 이전하고 문화중심지 역할을 찾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 민운기 스페이스 빔 대표는 "이 같은 움직임은 복합문화단지 추진 같은 시 당국의 일방적인 사업 방식이 아니라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연대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말했다.

 

향후 추이를 지켜볼 일이지만 예술인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정책 결정자들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배다리를 역사·문화 공간으로

 

문화예술인들의 움직임과 함께 주민들이 직접 구상한 개발안인'배다리우각로 금창동 문화마을 구성안'을 내놓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주민들은 배다리를 교육, 역사문화체험, 자립적 경제활동의 장이라는 세 가지 특성을 갖는 공간으로 발전시키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철도역사 박물관과 기독교 역사 자료관, 여성교육 역사교육관, 문화공방·목공학교, 생활사 박물관, 인천양조장을 리모델링 한 공동체예술센터, 고물품 거리, 한복거리 등을 갖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안은 이곳의 문화적 특성과 지역 정체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주민들이 구상했다는 점에서 옛 것을 깡그리 밀어버리고 주상복합건물, 고층 아파트 등 천편일률적인 콘크리트 건물을 짓는 행정기관 중심의 개발과는 내용 및 성격 면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더욱이 주민들의 구상은 지역의 삶과 역사, 문화,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 당국의 정책적 의지와 지원만 뒷받침된다면 실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 건설 및 주변 재개발 계획 철회를 전제로 한 얘기다.

배다리에서 헌책방 아벨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곽현숙 대표는 "사람 사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선 배다리를 관통하는 산업도로 건설 계획이 폐지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조혁신·박석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