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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의 미추홀

소극장 '돌체' 

by 형과니 2023. 4. 7.

소극장 '돌체'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4-25 21:58:49

 

미추홀 - 소극장 '돌체' 

 

조우성 <객원논설위원>

 

신극사(新劇史)의 산 증인 안종화 선생은 유저 '신극사 이야기'에서 "인천의 독립협회 회원 김봉의 씨가 1912년 혁신단을 협률사로 초청했고 그 때 김봉의 씨의 개명 부탁을 받은 임성구 단장이 협률사를 축항사(築港舍)로 개칭했다."고 전한 바 있다.

 

협률사는 1895년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공연장이었고 임성구 일행이 공연한 신파극 '육혈포 강도'는 인천 신연극의 효시였다. 협률사는 후에 축항사, 활동사진 전문관 '애관(愛館·1925)'으로 개명, 개축된 뒤에도 연극 공연장으로 활용되어 왔다.

 

그 무렵 정통극을 지향하는 토월회(土月會)의 영향아래 탄생한 인천 최초의 극단 '칠면구락부(七面俱樂部)'1926년 애관에서 춘향전을 공연했었다. 이 때 참여한 이는 극작가 진우촌, 함세덕, 연기자 정암, 무대 장치가 원우전, 임영균, 고일, 송수안 등 이었다.

 

광복되던 해에는 극단 '고향'이 창단됐다. 그해 1017·18일 이틀 동안 '고향'은 애관에서 '피를 파는 사람들''명상' 등을 공연했다. 그 후에도 인천의 여러 극단은 주로 애관을 무대로 공연해 왔다.

 

연극 전용 소극장이 비로소 탄생된 것은 1979년이었다. 중구 경동 인천기독병원 앞 반 지하 50여 평의 공간에 무대와 객석을 마련한 '소극장 돌체'가 그것이었다. 최규호, 박상숙 씨는 지난 28년간 이 무대를 어렵사리 지켜온 연극인 부부로 그들의 눈물겨운 고군분투는 인천연극사에 길이 기록되리라 믿는다.

 

또한 폐관 위기에 처한 소극장 돌체를 지상 4120평 규모의 최신 복합 공연장으로 부활시키는 데 앞장선 홍미영 국회의원에게도 따듯한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 언젠가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했던 추억이 아련한데, 이전에 즈음해 '고도를 기다리는 광대들'을 문학동 무대에 올리고 있다./조우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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