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도진공원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5-13 19:15:44
죽림 속 정자 잔바람 불면 땀 식히던 군인 보이는 듯
화도진공원
개항기 화도진에서 훈련을 받던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던 육모정.
선홍빛 철쭉꽃이 피어날 때면, 화도진공원(이하 화도진)엔 형형색색 사람꽃이 만발한다. '꽃섬'(花島·화도)이란 이름은 그러나 철쪽꽃이 많아서 붙여진 건 아니다.
화도진은 바다 쪽에서 봤을 때 길게 뻗은 육지인 '곶'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때문에 '곶섬'으로 불리다가 '꽃섬'이 됐고 한자표기로 '화도'가 됐다는 게 사학자들의 설명이다.
봄볕을 가볍게 걸친 채 철쭉꽃이 늘어선 언덕길을 오른다.정문을 지나면 처음 만나는 것이 '내사'이다. 아녀자들이 기거하던 별관이다. 화도진의 내사는 모두 일곱 칸의 방을 갖고 있다. 그런데 내사 처마 밑에 달린 쇠막대기는 무엇일까.
여름이면 여닫이문은 처마 쪽으로 들어올려 바람을 통하게 했다. 쇠막대기는 문을 걸어둘 때 쓰던 '걸쇠'이다. 이처럼 문을 자유자재로 분리하는 문을 '분함문'이라고 한다.
'동헌'으로 들어서자 왼쪽으로 오두막처럼 보이는 건축물이 눈에 띈다. 개항기 군인들은 훈련을 받다 지치면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이 곳 '육모정'에서 휴식을 취했다. 군인들은 잠시나마 이 곳에서 쉬면서 밀려오는 외양선에 대한 적개심과 두려움,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삭였을 것이다.
수령이 정무를 집행하던 동헌 안쪽을 들여다본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는 듯한 장면을 밀랍인형으로 재현하고 있다. 이 조약의 당사자는 조선 관리 신헌과 미국 슈펠트였다. 이들은 청나라 리훙장의 중재 아래 조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동헌은 중요한 장소이므로 지붕도 위엄있게 보이는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동헌을 중심으로 양쪽에서 마주보고 있는 '무기고'는 그러나 검소하고 소박한 '맞배지붕'의 모양이다. 동헌 정문 밖으로 '사랑채'가 보인다. 사랑채는 본래 내사 쪽에서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해야 한다. 아녀자들은 사랑채 앞에 놓인 신발을 세어본 뒤 주안상 등을 준비했다. 따라서 사랑채는 내사에서 잘 보여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도진은 잘못 복원했을 가능성이 있다. 기념비에 조미수호통상조약을 한미수호통상조약으로 표기하고 있거나, 임진왜란 때 썼던 화약포탄 '비격진천뢰'를 전시하고 있는 점 등이 그 반증이다. 바닥 역시 아스콘 포장을 해 놓은 상태여서 인공적 느낌이 크게 다가온다. 80년대만 해도 바닭은 따뜻한 흙이었다.
또 전시관 밖으로 영종도와 같은 섬이 보였으나 지금은 아파트가 가로막고 있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전시관'은 개항 당시 사진과 몇 벌의 의복, 무기 등을 전시하고 있다.'야외전시장'은 동헌 정문을 나와 왼쪽에 위치한다. '홍이포'를 비롯, 몇 문의 포가 설치된 야외전시장은 햇볕을 피하기엔 좋은 장소처럼 보인다.
무성한 나뭇잎으로 그늘진 야외전시장을 거닐며 단상에 빠진다. 화도진을 교육적 가치와 오락적 가치를 겸비한 공원으로 부활시키는 방법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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