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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전망차

씨름의 활성화 방안

by 형과니 2023. 4. 15.

씨름의 활성화 방안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7-08-27 20:57:05


씨름의 활성화 방안


씨름은 옛부터 전해져온 우리의 힘겨루기 경기이다. 어느 때부터인지 정확치 않으나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도 보이기 때문이다. 즉 각저총 벽화에 씨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니 그때도 씨름은 상무정신을 앙양하는 훌륭한 행사였던 듯하다. 적과 1 대 1로 대적해야 했던 전술에서 체력증진을 위한 씨름은 필수였을 것이다.

씨름 그림으로 말하면 조선조의 풍속화가 김홍도의 각희도(脚戱圖)를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의 씨름경기를 보듯 완연하다. 둘이 마주잡고 겨루는데 한쪽 사람의 발이 들려 있는 것을 보면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하다. 그런데 씨름꾼 보다는 구경꾼의 모습이 흥미롭다.

엿목판을 멘 엿장수 소년이 구경에 정신이 팔려 있고 갓차림의 젊은이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부채를 들고 있는 것을 보면 계절이 단오 때인 듯 하다.

씨름은 단오 때부터 벌어지던 경기였다. 동국세시기에는 단오에 남산의 왜장대나 북악의 경복궁 신무문에서 씨름이 행해졌다고 적혀 있다. 지방 곳곳에서도 성황리에 열렸다.

남녀노소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승자가 나올 때마다 함성이 그치지를 않았다. 그날 최종 승자는 상으로 황소 한마리가 주어졌다. 장사는 그것을 타고 자랑스럽게 마을에 개선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우리 민속의 탄압으로 씨름은 빛을 잃기 시작했다. 개화기에 전래한 서양 스포츠에 영향하여 더욱 쇠퇴케 했다. 그러다가 광복후 다시 부흥기를 맞았다.

전국체육대회에서도 정식종목이 되었다. 경기 운영방식이 과학화·현대화하고 국민의 인기도 얻어 흥행에도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에 더욱 노력하여 국제경기로도 육성해야 한다.

인천은 한때 씨름의 고장처럼 여겨졌었다. 90년대 부평고교와 인하대의 씨름이 전국을 제패했었다. 씨름이 영호남에서 성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변이라 할만도 했다.

그만큼 지도자들의 노력이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인하대 씨름부 장지영 감독이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한다. 논제는 ‘한국씨름의 활성화 방안에 관한 실증분석’- 2014년 인천에서 치러질 아시안게임에서 씨름이 정식 종목에 들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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