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료(鄕土史料)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12-08 13:30:33
향토사료(鄕土史料)
미추홀
인천대 산하 인천학연구원이 지난 주 인천종합문화예술관 회의장에서 제1회 한국지역학대회를 열었다. 대회에서는 개항기 인천·서울의 위생 사업과 1910년대 인천 지역의 사료(史料) 검토 및 지역학 방법에 대해 전공자들의 토구가 있었다.
그 중 지역지들이 초점을 맞춰 보도한 화제 가운데 하나는 '인천향토사료조사사항'(仁川鄕土史料調査事項·이하 향토 사료)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적 의의와 사실 관계 등에서 일부 실제와는 다른 점이 있어 이를 지적하고자 한다.
보도와는 달리 '향토 사료'는 새로 발굴된 문헌이 아니다. 인천 최초로 '개항사' 관련 '자료관'을 운영하고 있는 화도진도서관이 인천학연구원 설립 10여년 전인 1990년에 이미 복제본을 제작해 배포한 바 있는 알려진 자료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 동안 지역 사학계가 이에 별달리 언급하지 않았던 것은 이런 유(類)의 저작물들이 흔히 식민 통치의 정당성을 담보하려는 일본인 특유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인천부사'(仁川府史)가 대표적인 예다.
'인천 사료'가 '인천의 자랑' 같은 대목에서 "인천은 이 시기 조선의 건강지로 부를 만큼 풍토병이 없고… 특히 1914년 이래, 전국에 만연했던 성홍열 환자가 불과 3명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위생이 잘 되었다"며 심지어는 "인천경찰서와 인천부청에 인천 시민은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는 것 등등이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위생 상태가 보다 개선되었어야 할 그 5, 6년 뒤인 1920년대의 각종 통계를 보면 인천은 성홍열, 장티푸스, 이질 등이 창궐했던 전염병 무방비 도시였다. 역시 식민지 차원의 치적 기술이었던 것이다. 향후 일제 강점기 당시의 '사료'에 대해서는 논의가 거듭되야겠다는 생각이다.
/조우성 <객원논설위원>
'조우성의 미추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각국공원의 창조적 복원 사업'의 보류 (0) | 2023.04.19 |
---|---|
설탕 (0) | 2023.04.19 |
민란(民亂) (0) | 2023.04.18 |
불평등 수도(水道) (0) | 2023.04.18 |
빠홈'들 (0) | 2023.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