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동 이야기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1-05 19:19:19
구월동 이야기
인천의 중심가 구월동은 70년대까지만 해도 전답과 야산의 전원이었다. 80년대가 되면서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대로가 뚫리고 아파트와 관공서가 들어서면서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82년 인천시교육청이 이전해오고 85년 인천시청이 이사왔다. 늘어나는 인구로 행정수요를 감당키 어려워 82년 1, 2동으로 분리하고 그 2년 후 2동은 인구 3만명을 초과해 3동이 분동했다. 오늘날 신세계백화점 일대는 차량과 사람들로 종일토록 혼잡하다.
지금도 더러 옛지명과 전설이 남아있지만 개발 이전의 구월동은 자연부락이 많았다. 전자울, 성말, 오닭이, 붉은고개, 뱀골 등등이었다. 이들 마을이 아홉개라고 해서 구월리라 불린 것이 구월동의 유래라고 한다. 그러나 설득력이 약하다. 한 자료는 주안산의 줄기가 서쪽으로 뻗으면서 하나의 구릉을 이루었는데 형국이 거북과 같아 구산(龜山)이라고 했으며, 산이 반달처럼 휘어져 구산의 ‘구’와 ‘월’을 합하여 구월(龜月)리라 했는데 이것이 오늘의 구월(九月)동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8년 발간한 ‘인천의 지명유래’에 의하면 옛말의 ‘굴’이 ‘질다’의 뜻인데다 ‘마을’이나 ‘골짜기’의 뜻인 ‘울’을 합하여 ‘구리울’-땅이 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즉 ‘구리울’이 ‘구울’되고 ‘구월’로 변했다는 것이다. 사실 옛 구월동은 몹시 질어 비온 끝이면 주민들이 고통을 겪었다.
남동구의 공원 재정비사업으로 지난 연말 구월1동 큰성말공원과 구월3동의 붉은고개공원이 아름답고 새로운 어린이공원으로 단장되었다고 한다.
시설이 노후되어 파손 등 안전사고를 우려하던 것이 이번에 제거된 의미도 중요하지만 공원이름에 옛지명이 고스란히 살아 있어 반갑다. 성말은 오늘의 전재울 인근으로 마을에 성터가 있어 성리라고 했으며, 혹은 성씨 마을이라 해서 성말이라 했다가 큰성말 작은성말이 되었다고 한다. 붉은고개는 흙이 붉어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홈에버 건너편이다. 예전의 이곳 일대는 농토가 붉었었다.
인천의 뿌리라 할, 점차로 사라지는 옛지명을 지키는 일은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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