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판(文庫版)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3-01 12:56:37
단기 4292년 5월이니까 서기로는 1959년, 6·25전쟁이 끝난 지 몇 해 안 되는 때였다. 전후 피폐한 사회와 경제 복구는 커녕 호구지책도 고단한 시절에 도서출판 '양문사'(陽文社)가 문고판 '양문문고'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변호성(邊浩成) 사장은 '양문문고를 발간하면서'라는 부제가 달린 '삼가 민족 앞에 바친다'라는 다소 비장한 제목의 발간사에 "민족적 불행이 초래한 문화적 폐허를 일소하여 문화 건설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지식의 문을 대중에게 개방함으로써 지식이 일부 소수인의 독점에서 벗어나 진실로 국민 대중의 향상에 이바지 하도록 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 때 벌써 시쳇말로 지식과 정보의 대중화를 주장하고 있는 대목이다.
청소년기였던 미추홀 자는 그의 신도(信徒)였다. 양문문고가 안방 책꽂이에 꽂혀 있다는 사실에 무슨 긍지 같은 걸 가졌다. 그 제1권이 고려대 신일철 교수가 번역한 몰턴 화이트의 '20세기 철학'이었는데, 145쪽 300환이었다.
물론 그 나이에 읽어 알 리 없는 내용들이 태반이었지만, 책가방에 넣고 다니며 까막눈으로 색독(色讀)하며 지냈다. 60년대로 접어들자, 여성 잡지사 '여원사(女苑社)'도 릴케의 '로뎅' 등을 '여성교양신서'로 한동안 발간했다.
문고판의 전성기는 1970년대였다. 을유문고, 정음문고, 춘추문고, 탐구신서, 박영문고, 삼성문고 등이 기억에 새롭다. 그 문고판이 요즘 다시 팔린다는 소식이다. 거기에 60년대의 대학생이라면 한 권쯤 사 봤을 '펭귄북'의 한국어판도 나온다니 반갑다. 문고판 독서열이 이 사회의 몰상식을 불식시켜 주리라 믿는다.
/조우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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