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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전망차

아직도 일본 냄새

by 형과니 2023. 4. 22.

아직도 일본 냄새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8-03-03 19:11:13

 

아직도 일본 냄새

 

애당초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름은 모두 순수한 우리말로 된 이름들이었다. 땅의 생김새라든가 전설 따위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것들이 오늘과 같이 한자표기된 것은 중국의 영향이 본격화한 신라통일기 이후였다. 뜻글자인 한자를 원용하다 보니 발음도 부자연스럽거니와 원래의 땅이름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고 말았다. ‘억지춘향처럼 무리와 한계가 따랐다.

 

우리의 지명이 또한번의 수난을 겪게 된 것은 36년간의 일제치하에서였다. 우리 강토를 강점한 그들은 나름대로 자기네 이름을 가져다 달았다. 인천 관내에는 황당하게 저들 왕명으로까지 고쳐진 것이 있었다. 예를 들어 부평동은 昭和(소화), 부개동은 明治(명치), 계산동은 大正(대정)정이었다. 남구의 숭의동은 大和(대화=야마도), 고잔동은 日向(일향=히무카)정이었다.

 

이 외에도 일본식 이름을 나열하면 이러하다. 부평구 관내의 가와가미(川上=청천동), 가도리(香取=항동), 이도오(伊藤=구산동), 요시노(吉野=갈산동), 도오운(東雲=서운동), 미가사(三笠=삼산동)정이었다. 서구 관내에도 지요다(千代田=가정동), 겐무(玄武=신현동), 아사마(淺間=가좌동), 이노우에(井上=연희동), 구로다(黑田=공촌동), 히쓰미(日進=심곡동), 하루히(春日=시천동)정이었다. 이들 지역은 부천 관내에서 1940년 인천부역으로 확장하면서 재빨리 일본식으로 바뀐 것들이다.

 

이들 이름은 1945년 해방을 맞으면서 우리 이름을 되찾았다. 인천부를 제물포시로 하고 작업한 결과 194611일자로 일본식 동명을 모두 우리 고유의 이름으로 개칭했다. 인천부 고시 제62호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당시 완전하게 일제의 잔재가 깨끗하게 가셔지지 않았으며 정부수립 60주년이 되어서도 그대로라는 사실이다.

 

본보 29일자의 삼산동, 일본식 지명에서 유래에서 밝히고 있거니와 삼산동이란 일본제 삼립정의 잔재이다. 이 점은 이미 조찬석 교수 등에 의해서도 지적된 바 있다. 일신동 역시 일본 냄새가 풍긴다. 특히 그곳은 일제가 군수기지로 수용하느라 주민들이 강제 이주당한 사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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