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영화' 찾기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08-03-17 14:42:09
국내 최초로 영화가 상영된 것은 1898년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남대문에서 장사하던 중국인의 창고에서 프랑스 '빠테' 사의 단편 영화를 상영했던 것을 효시로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진 게 없다.
처음 만들어진 극영화는 1919년의 '의리적 구투'였는데 전해지지 않는다. 영상자료원이 2005년 중국에서 찾아낸 1936년도 양주남 감독의 '미몽'에 이어 최근 서울에서 1934년도 안종화 감독이 만든 극영화 '청춘의 십자로'의 원본 필름 9권이 유명 극장 '단성사'를 운영했던 집안에서 몽땅 발굴돼 화제가 되고 있다.
인천 사람들이 영화를 접했던 것은 1894년 이후로 보인다.
정부가 장죽(長竹) 사용을 금지하자 미국산, 일본산 궐련 수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선전전(宣傳戰)도 치열했는데, 그때 등장한 것이 신문명의 총아인 '활동사진'이었다.
빈 담배갑을 모아 오면 단편 영화, 뉴스 등을 관람하게 했던 것인데 1899년과 1901년에 각각 인천서 문을 연 '영미연초(주)'와 '동양연초(주)'도 선전 수단으로 영화 상영을 했다는 것은 한국영화사에 나오는 초창기의 에피소드다.
인천에서 정작 극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광복 직후였다. 감나무, 무영(無影)의 악마(46년), 수우(愁雨), 날개 없는 천사(47년), 심판자(49년), 사랑의 교실(50년), 돌아오는 사람들(51년) 등이 바로 인천제(仁川製) 영화였다.
최근 인천이 외지 영화인들의 촬영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보도가 눈에 띈다. 그러나 '시 영상위'는 인천을 기껏 촬영지로만 선전할 것이 아니라, 영화 창작의 산실로 만드는 데 애를 써야 할 것 같다. 물론 옛 '인천 영화의 필름'도 찾아 나서야 한다.
/조우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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