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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의 인천문화예술인 考

시인’ 최경섭

by 형과니 2023. 4. 27.

시인최경섭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문화예술인

 

2008-05-20 21:13:31

 

‘12월의 종소리처럼 은은히 울리던 시인최경섭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1910년 평안북도 희천 출생, 의주농업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연희전문 문과 졸업 후 2년간 일본 유학. 1937조광에 시 초추를 발표하며 등단. 1955년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역임했고, 1957년 교직에 들어서 인천남고, 인천사범학교, 인일여고, 동인천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 생애 후반을 인천에서 보냈다. 1969년 경기도문화상을 수상했고, 한국문인협회 경기도지부장을 역임했다. 시집으로 풍경(1938), , (1968)이 있다.”

 

“1970년대에 들어서 많은 신인들이 배출되고 신인들이 전국을 무대로 왕성하게 작품을 발표하여 시선을 모았고, 또 새로운 문학지들이 간행되어 인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 못지않게 기존의 문인 활동도 활발해졌다. 문협지부장을 오래 동안 맡아 인천문협을 이끌었던 김양수는 현대문학을 중심으로 활발한 평론 활동을 전개하여 명성을 떨쳤고, 랑승만은 서울에서 터를 잡고 활발한 시작 활동으로 이름을 내고 있었으며 이정길은 아동문학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한순홍 또한 이 시기에 활발한 문단 활동을 했던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리운 금강산을 작사한 한상억 시인도 예총을 이끌며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었다.

 

 

한편 인천에 묻혀서 작품 활동을 해 오던 최병구는 없는 살림에도 손설향과 함께 인천문학을 꾸준히 간행하며 열정을 보였고, 최경섭·이석인·심창화·이정태·김일주·김창황 등도 작품집을 내며 70년대를 풍요롭게 장식한 문인들이다.”

 연당(然堂) 최경섭(崔璟涉) 시인에 대한 기록이다. 전자는 어느 인터넷 정보이고 후자는 우리 인천시사에 실린 내용의 전부다. 시사의 내용은 다른 사람의 긴 이야기 속에 그저 이름 한 번 스치고 지나갈 정도로 간략하다. 40년 인천 생활에 그의 이름 뒤에 남은 것이 고작 이렇게 무거운 적막과 쓸쓸함뿐인가. 불과 10년 안팎일 터인데 그의 몰년(沒年)을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조차도 없을 정도니 무슨 말을 더 하랴.

 

  그의 성품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기름한 얼굴, 늘 미소를 띠고 있는 안색, 평안도 기질이 드러날 법한데도 세상 나서는 법이 없는 겸손과 온화와 다정의 시인. 있어도 있는지를 모를 만큼 고요하고 은은했던 그의 기질과 성품이 사적(私的)인 기록에고, 정식 문단사(文壇史)에고 기록 한 줄을 더 보태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1939.10.22 최경섭 시

 

어쩌면 또 불행했던 가정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새삼 이르기도 안타까운 그의 지극히 불운했던 사연들. 홀연한 장남의 이민, 차남의 정신병과 이어지는 사고, 퇴직금 사기, 부인과의 사별 등 계속되는 마()가 더욱 그를 고요와 침잠으로 몰아갔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조용한 성품에 어울리게 그는 늘 밝고 세련된 신사 이미지를 남겼다. 짙은 눈썹과 특이한 콧수염, 항시 콤비 양복에 나비넥타이로 멋을 내던, 아주 세련된 영국 신사풍의 외모가 그의 특징이었다.

 

 태고쩍 야자나무 그늘진 사막 위에

 코끼리 한 마리 눕고 간 자리.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둥근 이 구체(球體)

 벽 위에 냉큼 매어달려 있는 해학(諧謔)!

 

 누구의 피로써 물들인 그림이뇨·

 철부지 소녀 화가 내버린 파렛이여!

 

 눈부신 세기의 화문(花紋)이로다.

 

 피 묻은 역사의 자수(刺繡)이로다.

 

 흐르지 않는 해안의 조풍(潮風)이 풍겨오나

 이 누리에는 높고 푸른 하늘이 없다.

 

 시냇가 돌 위에 한 마리 물새인양

 나는 한 나절 앉아서 졸다가

 

 와락 겁이 나다오오 무서워

 주둥이에 감기는 거미줄거미줄

 

 나는 오늘 나의 흑점을 잃었노라.

 ―「세계지도전문

 

 

핫아비의 노래

 

193910월 연희전문 문과 시절 그가 조선일보에 발표했던 시 세계지도의 전문이다. 감수성 예민한 젊은 학도의 감정! 암울한 조국의 운명을 세계지도를 통해 바라보는 착잡한 감회와 절망의 씁쓸한 조소(嘲笑)를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이런 뛰어난 시적 재능과 눈과 감정을 가지고 있던 그가 과작의 시인으로 안으로만, 안으로만 움츠리고 만 것이 안타깝다. 그가 조금만 다른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면, 그의 예민한 시적 감수성이 우리 한국 문단에, 우리 인천 문단에 더욱 풍요를 가져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제2 시집 , , (鐘鐘鐘)은 어쩌면 자기 자신의 조용한 내면의 울림을 그려낸 것인지도 모른다. 인천에는 12월의 종소리처럼 종, , , 멀리 그리고 은은히 자신을 울리다 간 시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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