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와 박재구씨를 통해 본 70년대말 만석동 모습
仁川愛/만석부두 관련 스크랲
2007-03-04 15:56:46
현우와 박재구씨를 통해 본 70년대말 만석동 모습
이번 '예전만석동'에서는 1970년대 후반(1975~1980) 만석동의 모습을 동네분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 때를 살아가는 현우(초등학교 6학년)와 박재구씨(40대 가장)라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 하려합니다.
현우 이야기(1976년 11월10일)
현우는 대동철강(지금의 광원목재 자리) 건너편 축대 위에 지어진 집들 중 가장 작은 집에 산다.
학교를 일찍 마친 현우는 매일 다니는 경사진 좁은 골목길을 걸어 집까지 가고 있다.
그 골목길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굴을 까고 있고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 두 그루도 서있다.
골목길 바닥은 아주머니들이 굴을 까고 버린 굴 껍질 때문에 눈이 온 것처럼 하얗다. 벽을 맞댄 집들이 나란히 늘어선 골목길에는 집집마다 불을 때기 위해 쌓아놓은 땔나무와 물을 받아 내어놓은 드럼통들이 줄지어 있다.
집에 돌아온 현우는 제일먼저 연탄 아궁이의 불을 살핀다. 혹시라도 꺼뜨리는 날이면 일 나갔다 돌아온 엄마에게 혼이 나기 때문이다. 몇 해전까지만 해도 현우네는 다른 집들처럼 겨울이 되면 나무를 때고 살았다.때문에 해마다 가을이 되면 똥바다에 떠 있는 나무에서 껍질을 벗겨와 집 앞에 차곡차곡 쌓아 말리는 일은 현우의 몫이었다.
연탄불을 본 뒤 현우는 친구들과 놀기 위해 학교 갈때 신었던 런닝화를 벗고 검정 고무신으로 갈아 신는다.
굴 껍질이 천지인 동네를 마음 편히 뛰어 다니기에는 더러워지거나 해질까봐 조심스러운 런닝화 보다는 검정 고무신이 낫기 때문이다.
놀러 나가기 전에 현우에게는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동네에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서 현우네도 다른 집들처럼 골목길 아래에 있는 우물이나 공중화장실 아래쪽에 있는 공동수도에서 물을 길어다 먹어야 하는데, 현우가 물을 길어 집 앞 드럼통에 채워 놓아야 하는 것이다.
물을 길어 놓고 밖으로 나온 현우는 옆집 상민이와 동네 친구들을 불러모은다. 오늘은 윗동네 아이들과 연탄재 싸움을 하기로 한 날이어서 모인 아이들은 하나 같이 뚫어진 목장갑을 하나씩 끼고 각오가 대단하다.
연탄재 싸움을 하다 연탄재를 머리에 정통으로 얻어맞아 화가난 현우는 괜한 남의 집 벽만 발길로 찬다.
집 벽에 발라진 흙이 부서져 내리더니 안에서 '누구야'하는 소리가 난다. 현우는 얼른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도망가 버린다.
동네 집들은 대부분 나무로 지어졌는데, 추위를 막기 위해 그 위에 흙을 덧발라 놓았다. 때문에 벽에 발라진 흙은 조금만 건드려도 쉽게 떨어졌다.
집에 돌아온 현우는 친구들과 지난번 부두로 일 나가신 아버지가 얻어온 흑설탕으로 '뽑기'를 해 먹기로 한다. 아이들은 '뽑기'를 해 먹느라 새까매진 국자를 연탄불 위에 올려놓고 설탕을 녹이고 있다. 하지만 놀면서 꺼진 아이들의 배가 '뽑기' 몇 개로 채워질리 없다.
아이들은 똥바다에 가서 조개와 홍합을 캐와 수제비를 해먹기로 한다.
현우와 친구들은 똥바다에서 온몸에 뻘을 묻히고 조개와 홍합 캐기에 열심이다.
박재구(40세, 대한제분에 다님)씨 이야기(1976년 11월 10일)
박씨는 현우네 옆집에 사는 현우 친구 상민이의 아버지다. 박씨는 어제 상민이 엄마가 만석부두에 나가 소금과 바꿔온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일터인 대한제분으로 나선다.
만석부두에는 영종도로 가는 배가 있어서 섬사람들과 육지사람들이 서로 물건을 바꾸는 장이 서곤 하는데 어제가 그날이었다. 섬사람들은 쌀이나 누룽지를 가져와 육지사람들이 가져온 옷가지나 소금과 맞바꾸어 가곤 하는데 상민이 엄마도 소금을 가져가 누룽지로 바꿔왔던 것이다.
박씨가 공장에서 하는 일은 밀가루를 포장해 나르는 일로 한달 일을 하면 5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몇 해전까지 부두에서 짐을 나르던 박씨는 아는 사람 소개로 작년부터 대한제분에서 일을 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박씨의 어깨에는 회사에서 받은 밀가루 한 포대가 얹혀있다. 오늘이 한 달에 한번 회사에서 주는 밀가루를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동네에는 제분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이렇게 밀가루를 받아온 다음 날이면 '술빵'을 만들어 동네 잔치가 벌어지곤 한다. 박씨는 같이 일하는 이들과 함께 대성목재 앞 길가(지금의 6번지 도로)에 있는 대폿집에 들른다. 대성목재앞 길은 만석부두나 대한제분, 한국유리, 이천전기 등 동네 주변에 있는 공장으로 사람들이 일하러 다니는 길목으로 몇 해전부터 대포집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박씨는 식구들과 텔레비전을 본다. 몇 해전만 해도 동네에는 텔레비전 있는 집이 얼마 되지 않았다. 때문에 그때 텔레비전이 있는 집 아이들은 동네 대장이 됐었다. 아이들은 마음에 안 드는 친구에게는 텔레비전을 보여주지 않았고, 친구들에게 먹을 것을 받아야만 보여주기도 했다. 박씨는 아들 상민이가 텔레비전이 있는 집 아이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 보기 싫어 작년에 큰맘 먹고 텔레비전을 하나 장만했다.
갑자기 방안의 전등이 깜박거리기 시작한다. 박씨는 분명히 어느 집에서 다리미를 쓰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밖으로 나가 "어떤 집이 다리미 써"하며 소리친다. 동네에 한집에서 전기를 끌어오면 계량기를 하나 달고 여러 집이 나누어 쓰던 터라 전력이 약했다.
때문에 어느 집에서 다리미 하나만 써도 다른 집 전등이 깜박거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전기를 같이 쓰는 집들끼리 전기세를 나누어 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으면 사람들끼리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박씨가 소리치자마자 전등이 깜빡거리기를 멈춘다. 집에 들어온 박씨는 내년에 중학교에 들어갈 상민이를 바라보며 5년 전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 만석동에 올라 왔을 때를 생각한다.
막막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먹고살기 힘들어 고향을 떠나야 했던 것이 서럽기만 하다. 하지만 지금 박씨는 만석동에 들어와 집과 일자리를 얻고 상민이를 이만큼 키워 놓은 것이 마냥 흐뭇하기만 하다. (임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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