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냄새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4 16:01:52
골목냄새
만석동 오래된 골목에 들어서면 나는 냄새. 나는 그 냄새가 좋다.
오래되어 조금씩 삭아가는 나무에서 나는 듯한 그 냄새. 50년 전 미국의 원조물자로 들어온 밀과 석탄을 받치던 나무로 골격을 세웠다는 골목의 오래된 집들은 지나온 세월만큼 깊은 냄새를 지니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냄새는 골목의 냄새만은 아니다. 낡은 집에 사는 할머니들이 풍기는 짠내, 단내. 난 그 냄새가 더 좋다.
요즘은 골목에 앉아 굴을 까고 바다에 나가 '갯일'을 하는 할머니들을 예전만큼 보기 힘들지만, 그런 할머니들의 몸에 베인 짠내는 나의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또 나에게 '몸을 놀려 일 할만큼 건강하셔서 다행이다'하는 안도감을 준다.
기력을 잃고 건강이 안 좋은 우리동네 할머니들에게서는 대게 단내가 난다. 대부분 오랫동안 당뇨를 앓아서 이기도 하지만 신기하게도 화장기 없이 오래 지낸 우리동네 할머니들한테는 짠내가 가시면 단내가 난다.
난 그 냄새가 좋기도 하지만, 할머니들의 방안 이리저리 놓인 약봉투와 하루종일 켜놓는 TV로 외로움을 달래는 할머니들의 모습과 만날 때면 맘이 아프다.
내가 단내나고 짠내나는 우리동네 할머니들을 만나기 시작한 건, 2001년 5월 <만석신문>에 '예전만석동'이란 꼭지로 50년대 만석동이야기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할머니 옛날 얘기 좀 해주세요."하고 마치 어린 손자가 보채듯 졸라가며 만난 할머니들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나누어 주셨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수 있었던 옛날 만석동이야기와 힘겹게 살아온 할머니의 삶을 그리고 지금도 가난한 그분들의 일상을 말이다.
때론 믿기지 않고 감당하기 어렵기도 한 그 이야기들은 동네에 함께 사는 젊은이로서 또 신문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사는 만석동이 정말 아름다운 동네구나 하는 감탄과 내 삶에 대한 반성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그대로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바람 같은 것들 말이다.
동네 할머니들이 나에겐 큰 채찍이고 또 큰 힘이다. 나는 오래 오래 그분들과 만나고 싶다.
(임종연)
바람조차 길잃는 쪽방촌의 한여름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7-10 10:01:38
바람조차 길잃는 쪽방촌의 한여름
화려한 도시축전 뒷골목에 342세대 '다닥다닥'
"너무 더워서 좀처럼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나와 있어."
9일 오후 2시 인천시 동구 만석동 2번지 쪽방촌에 사는 노인과 아주머니들이 골목길 초입에 모여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과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열대야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는 살인 더위를 참을 수 없어서 란다.
쪽방촌에 사는 이순자(78·가명) 씨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사람 한 명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미닫이로 된 출입문을 열자 문 왼쪽에 바로 7~8㎡ 가량 돼 보이는 방이 나온다. 오른쪽에는 싱크대와 가스레인지가 바닥에 놓여져 있다.
방안에 들어가자 빛이 겨우 들어오는 좁은 창문이 보이고 뜨거운 열기에 숨이 턱 막힌다. 방 한 구석에 있는 선풍기에서는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
이야기를 시작한 지 10분쯤 됐을까. 할머니의 이마에서는 어느덧 땀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50년 넘게 살았지. 원래 이 곳은 집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어서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곳이야. 그래도 겨울에는 추워도 보일러도 못 때는데 여름엔 찬 물 한 번 끼얹으면 되니까 양반이지 뭐."
골목을 빠져나와 쪽방촌 한 구석에서 젊은 아주머니를 만났다.
김미순(38·가명) 씨는 남편과 단 둘이 이 곳에서 살고 있다.
금방이라도 도둑이 들 것 같은 낡은 문을 열자 두사람이 겨우 몸을 뉘울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방이 보인다. 방 입구에 있는 낡은 싱크대와 부탄가스통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지난달만해도 3만6천원하던 LPG가스가 이 달 들어 4만2천원이 됐어요. 하루 일해 하루 먹고 사는 형편에 가스비며, 전기세, 수도세 등 감당하기가 힘드네요."
내년에 열리는 '2009 세계도시축전'를 발판으로 세계 일류 도시로 거듭나려는 인천 도심에는 쪽방촌이 있다. 보건복지가족부 기준으로 쪽방은 3.3㎡규모에 화장실과 부엌이 없는 집을 말한다.
인천시에 따르면 인천에는 모두 342세대 635명의 쪽방촌 거주민이 있다. 쪽방촌은 중구 인현동·북성동 78세대 176명, 동구 만석동 209세대 394명, 계양구 작전동·효성동 45세대 65명이 있다. 이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는 149명에 불과하다. 이들 쪽방촌 거주민들 가운데는 자신을 보살펴 줄 사람이 없는 홀몸노인 가구도 많지만 정서적·경제적 지원을 기대하긴 어려운 형편이다.
유해숙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저소득층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최저 주거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공간에서 사는 이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정보라기자 blog.itimes.co.kr/j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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