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손에 담긴 '가난한 일상'
仁川愛/만석부두 관련 스크랲
2007-03-07 15:27:55
거친손에 담긴 '가난한 일상'
힘겹지만 소중한 노동, '마늘까기'.. 하루종일 일해야 일당 5천원
"늙었다고 아무일도 안하면 바보야 늙을수록 손을 놀려야지."
현수네 할머니(68)는 9번지 대우담길에 가건물을 지어놓고 5년 전부터 매일 마늘을 까고 있다.
현수네 할머니처럼 동네에서 마늘을 까는 집은 9번지 대우담길에 4집, 43번지 만석3차아파트에 2집, 만석부두 2번지에 4집, 모두 10여집이다.
마늘까기는 현수네 할머니처럼 나이가 65세 이상인 노인들이 하는데, 소일거리처럼 보이지만 실은 노인들의 생계가 달린 일이다.
마늘 까는집, 만석동에 10여집 정도
만석3차아파트에 사는 민만식(73세) 할아버지도 할머니와 함께 집 근처에 마늘막을 지어 놓고 마늘을 깐다.
할아버지는 17년전 동국제강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해 4년간 병원에 입원하면서 8번의 대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몸이 낫지 않아 일을 다시 할 수 없었다.
게다가 6년전 할머니마저 월마트에서 해고되면서 두 노부부의 생계는 막막하기만 했다 할아버지가 5년전부터 시작한 일이 마늘까기인데, 한달에 23만원에서 27만원정도 버는 것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수입의 전부다.
"세금 내고, 관리비 내고 하면 남는 돈이 없어. 여기(마늘막)에서 오고 가며 일을 돕는 동네사람들이랑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는 게 고작이지."
9번지에 사는 김씨 할머니(73)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중학교에 다니는 손녀와 단 둘이 사는 할머니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연안부두에 나가 생선 말리는 일을 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생긴 병으로 수술을 받고 몸이 약해지면서 그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작년부터 마늘까기를 시작했는데 한달 수입이라야 10여만원 정도다.
"뭐라도 해서 벌지 않으면 어쩌갔어. 돈 들어가는데는 많고... 그래도 이거(마늘) 까고 있으면 시간은 잘 가는구먼."
생계의 막막함 덜수 있는 유일한 일거리
갯일과 굴까기에 익숙한 동네 노인들은 기력이 약해지면서 벌이는 적지만 굴까기보다 일하기 쉬운 마늘까기를 한다. 아이들 딱지 뜯기나 소켓조립 등 갯수를 세야하고 신경이 쓰이는 동네 다른 부업에 비해 수십년 간 노동으로 단련된 노인들에게는 마늘까기가 오히려 맘 편하기 때문이다.
바닷일과 공장일을 하면서 굳은살이 박히고 거칠어진 손임에도 노인들은 마늘의 매운 독에 손톱이 빠지고 손끝이 저리는 고통을 참아가면서 마늘을 깐다. 노인들에게 생계의 막막함을 덜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거리가 마늘까기이기 때문이다.
"이 손톱이 다섯 번 빠졌었어. 지금은 손톱이 제 모양대로 자라지도 않아. 처음 할 때는 마늘에 무슨 독이 있는지 까면서 냄새만 맡으면 졸았어. 때문에 손도 많이 베었지."
민만식 할아버지는 고무장갑 손가락 부분을 잘라 손에 끼고 마늘을 까는 요령이 생길 때까지 마늘 독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동네 노인들은 이틀에 한번 꼴로 오는 마늘 중간상에게서 마늘을 받는다.
노인들은 아침 일찍 만석동에 찾아오는 마늘중간상에게 전 날 깐 마늘의 무게를 달고 새로 깔 마늘 한 두 자루를 받는다. 마늘 중간상은 깐 마늘을 kg당 450원씩 쳐준다.
마늘은 한자루에 16kg 정도 하는데, 대충 한 자루를 까면 5,000원 정도를 벌 수 있다. 만석동에는 5월 중순 제주도에서 수확한 햇마늘을 시작으로 6월 7월경에는 전라도 해남, 무안 8월경에는 충청도순으로 점점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수확한 마늘이 들어온다. 그중 제주도 마늘이 제일 씨알이 굵고 좋다. 때문에 같은 한 자루를 까도 제주도 마늘이 까기도 수월하고 kg수도 더 나간다.
세상 이야기 서로 나누는 ‘마늘막’
노인들은 마늘을 받으면 우선 쪼개서 물에 불린다. 물에 불려야 껍질을 벗기기도 쉽고 깐마늘에 상처도 적게 나기 때문이다. 반나절 정도 불리고 나면 까기 시작하는데, 못 쓰는 부엌칼이나 쇠를 갈아 손수 만든 칼과 고무장갑 손가락 부분을 잘라만든 손가락장갑은 필수다.
"예전엔 IMF 이후 마늘까는 사람들이 많아져 만석동에만 30집이상되었었는데, 젊은 사람들은 진작에 관두고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거나 몸이 약해져 그만두시면서 이젠 한 10집정도 밖에 안남았어요."
만석동에 마늘을 실어오는 마늘중간상인 박태일씨(37)의 말이다.박씨는 하루 이틀 마늘을 못가져올때면 동네 할머니들에게 된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할머니들에게 마늘까기는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동네 노인들은 대부분 집에 혼자 앉아 마늘을 깐다. 때문에 가끔씩 찾아오는 이웃들의 품앗이는 큰힘이 된다. 집에서 혼자서 까는 노인들과 달리 민씨 할아버지네나 현수 할머니네처럼 골목에 세워진 마늘막은 일터일뿐 아니라 동네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한다. 겨울철 만석동의 굴막이 그러하듯 여름철 마늘막은 동네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공동 식당이 되곤 한다.
마늘막에는 냄비 가스렌지 등이 있어 점심때면 국수나 라면이 삶아지거나 밥이 익는다.
그곳에서는 같이 일하거나 마늘막을 찾은 이웃들과 끼니를 함께하고 세상사는 이야기가 나누어지곤 한다.
하지만 박씨의 말처럼 요즘들어 동네 노인들이 나이들고 기력이 약해지면서 또는 돌아가시면서 마늘막 풍경도 많이 변했다.
"혼자 이러고 앉아서 까면 얼마나 심심한지 알어? 작년에는 옆집 할마이가 매일 와서 같이 깠었는데... 오고가는 동네사람들이 조금씩 같이 까주고, 같이 까는 사람도 있고 해야 할만하지 그러지 않으면 못해."
현수네 할머니는 마늘막에서 작년까지만 해도 이웃 할머니 둘이랑 같이 마늘을 깠었다. 하지만 한 분이 올해 돌아가시고 다른 한 분은 다쳐서 움직이기 불편해지면서 할머니는 요즘들어 혼자 일하는 것이 영 지루하기만하다.
함께 일하기 때문에 얻는 재미나 즐거움은 예전보다 덜해도 동네 할머니들의 거친 손으로 다듬어진 마늘에는 할머니들의 가난한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있음에는 변함이 없다. (글:임종연/만석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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