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서 '소외'된 사람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7 15:29:52
변화에서 '소외'된 사람들
동네가 변하면서 제일 안타까운 건 서로 의지하던 이웃들과 헤어지는 것
만석동 9번지 골목, 할머니 여럿이 나와 있다.
"새로 이사 올 집 수리하는구먼."
"거 그집 살던 할머니 딸이 이사 온다지. 애덜도 있다는디." "얼매나 잘 고치고 들어올려고 저리 뚱땅 거린댜."
최근들어 매번 이사가는 모습만을 보아온 이 곳 할머니들에게 동네에 이사오는 집 소식은 무척이나 큰 관심거리가 아닐수 없다. 그리고 매우 반가운 일이다. 9번지 골목에서 손주와 단 둘이 사는 김씨 할머니(76세)는 "맨날 비기만 하는 동네에 사람이 이사오면 좋지" 하면서 며칠 전 돌아가신 김은년 할머니 이야기를 꺼낸다.
"그 할마이 잘 돌아갔어. 만날 힘들게 앓고 있었는데 이젠 이런저런 걱정 안 해도 될 것 아녀."
이곳 나이든 할머니들은 한결같이 얼른 편하게 죽었으면 하는 바람들을 가지고 있다. 할머니들이 사는 오늘이 힘들고 지친 탓도 있지만 의지 할 곳 없는 처지에 말년에 병이라도 심하게 앓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맨날 비기만 하는 동네 이사오면 좋지”
만석동 9번지, 50년전부터 피난민 촌으로 형성된 이곳에 빈집과 노인들이 사는 집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특히 10년전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시작되면서 그 모습이 변하기 시작한 동네는 재작년 만석비치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주변에 좋은 집 생기는데 젊은 사람들이 이런데 살려고 하나. 그러니 옛날보다 길은 넓어지고, 공원도 생기고, 동네가 좋고 편해진거 처럼 뵈도 옛날만 못해."
김씨 할머니는 9번지 공동화장실 옆 동네 한가운데를 가르고 생긴 소방도로를 가리키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려면 계단으로 돌아내려가야하는데 우리 같은 할매들에게는 힘들다"며 달라진 동네를 못 마땅해 했다.
주변에 빌라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젊은 사람들은 이사를 갔지만, 이사를 갈 경제적 형편도 안 될뿐더러 이곳의 오랜 삶에 익숙해진 노인들만 남겨지게 되었다.
동네에 노인들만 남게 된 이유에 대해 9번지에서 수퍼를 운영하는 이계노(54세)씨는 이런 의견을 내놓는다.
형편에 따라 사람들 나눠져
"동네가 변하면서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서로 비교되지 않겠어요. 골목에 사는 사람들, 빌라에 사는 사람들, 고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이렇게요. 그런 문제엔 젊은 사람들과 아이들이 제일 예민하게 반응을 할 것이고 말예요."
이씨의 말에 따르면 동네가 변하면서 사는 주거형태나 형편에 따라 사람들이 나뉘고 그 중에도 가장 살기 힘든 노인들이 동네 골목을 지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기차길옆작은학교의 상근자인 김재양(26세)씨는 "동네가 변하는 동안 아무런 선택권이 없는 아이들과 노인들이 가장 큰 약자"라며 그중 "아이들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한다.
만석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씨는 옛날 자신의 어린시절 모습과 지금 아이들이 겪는 모습이 최근 동네의 변화와 함께 많이 달라졌다며 이렇게 말한다.
"동네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 거의 없어요. 방에서 텔레비젼이나 컴퓨터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또 유행이나 돈쓰는 데 익숙한 친구들을 따라 동인천이나 밖으로 나가 노는 아이들도 많죠."
김씨는 이런 이유를 아이들이 가지게 되는 '선망'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아이들이 동네에 아파트와 빌라가 들어서면서 자신들과 사는 형편이 다른, 유행에 민감하고 돈 쓰는데 익숙한 친구들을 만나고, 또 텔레비젼에 비춰지는 소비적인 문화들을 접하면서 그런 선망을 가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다 고만고만한 형편의 친구들이 서로 잴 것 도 없이 어울리면서 놀았습니다. 예전엔 서로 의지하고 서로를 지키면서 세상이 주는 유혹에 함께 버틸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 각자 혼자서 감당해야하는 몫이 되어 버렸어요."
동네에 넓은 길도, 또 놀이터도, 공원도 생겨 아이들이 놀 공간이 예전에 비해 많아졌다.
“겉모양 좋아지는게 다 좋은건 아니지”
하지만 이런 변화 때문에 그 자리에 있던 집이 철거되면서 아이들은 서로 의지하던 친구를 떠나 보내야했다. 그리고 동네의 변화는 비교하지 않아도 되던 것을 서로 비교하게 만드는 소외감을 겪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만석동 43번지에 어린이 공원이 들어서면서 살던 집이 철거되어 만석비치아파트로 이사하게된 이막덕(73세) 할머니. 할머니는 동네가 변하면서 제일 안타까운 것이 '이웃들이 서로 헤어지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도 43번지에 있는 굴막에 나와 옛날 친구들을 찾아 함께 굴을 까는 할머니는 "사는 겉모양이 좋아지고 깨끗해지는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며 "마음이 서로 맞는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게 제일 좋은 것이여"하고 말한다.
작년 봄 KBS에서는 `삶의 질에 관한 설문을 우리나라 성인 남녀 3,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바 있다.이 설문 결과를 보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경제적 삶의 질’(41.5%)이외에도 ‘심리적 삶의 질’(15.8%), ‘건강에 관한 삶의 질’(15.7%), ‘인간관계에 관한 삶의 질’(12.8%)로 나타났다.
물질적 경제적 요인 말고도 '삶의 질'을 결정하는데는 심리, 건강, 인간관계 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결과다.
IMF 이후 경제적으로 힘든 주민들에게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인한 동네의 변화는 주민들에게 심리적 소외감과 인간관계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이는 주민들의 '삶의 질'이 결코 나아졌다고 보기 힘들게 만든다.
마치 성벽처럼 둘러쳐진 주변의 고층 아파트와 공장들 그 속에 게딱지처럼 옹기종기 앉아있는 가난한 지붕들, 만석동이 앞으로 맞을 변화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고려해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글:임종연/만석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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