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둥글 열심히 살아야죠"
仁川愛/만석부두 관련 스크랲
2007-03-07 15:41:40
"둥글둥글 열심히 살아야죠"
고등학교 때부터 일 시작,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성실’과 ‘천진함’물려받아
(내가 천성민씨(24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아직도 앳된 얼굴을 하고 있던 중3의 사춘기 소년이었다. 천씨와는 만석동에서 ‘우람솔’이라는 조기 축구회를 같이 했었는데 조금은 뚱뚱한 몸을 하고 공을 쫓아 운동장 이곳 저곳을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였다.)
인터뷰를 위해 8년 만에 다시 만난 천성민씨는 올해 9월 군대를 제대하고 직장을 다니는 24살의 건장한 청년이 되어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당황스럽고 어색했지만, 천씨의 웃는 얼굴을 보니 이내 마음이 편안해 졌다.)
천씨는 웃는 얼굴이 어린아이 마냥 천진스럽다.그래서 함께 있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재주 아닌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군대 2년 빼곤 줄곧 만석동에서 지낸 토박이
천씨는 군대2년을 빼고 줄곧 만석동에서 지냈다. 그는 원주에 있는 부대에서 중장비 정비병으로 군생활을 했다. 군대에서 정비 기술 좀 배웠냐는 물음에 ‘참 세상물정 모른다’는 듯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천씨는 자대 배치를 받고 처음엔 군대에서 사회에 나가면 써 먹을 수 있는 기술을 배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그 생각이 오래가진 못했다.
“군대에선 기술 못 배워요. 진짜 정비는 군무원 아저씨들이 하고 저희는 그냥 공구나 날라주죠. 군대있는 시간이 정말 아까웠어요. 배운 게 있다면 그냥 다들 그렇겠지만 인내심 밖에 없어요.”
천씨는 지금 자동차 부품을 공급하는 물류창고에서 일하고 있다. 군대를 제대하고나서 일주일 정도 집에 있다가 군대에 입대하기 전 다니던 회사에 다시 취직한 것이다.
천씨는 지금하고 있는 일이 자신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연말이 되어 바쁠 때는 몸이 힘들 때도 있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마음이 잘 맞아 마음은 편하다고 한다.
실제 하는 일도 생산라인에서 기계에 맞추어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전에 하던 일보다 훨씬 편하다.
천씨는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그가 처음 취업한 곳은 남동공단에서 펌프를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고등학교 다닐때 펌프조립공장에서 일해
“내가 공고 다닐 때 ‘2+1제도’ 라는 게 있었어요. 학교에서 2학년까지 공부하고 3학년 때는 공장에서 기술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취업하는 거예요.”
그는 이 제도로 고3때 펌프공장에 취업했다.
“ 양수펌프 조립하는 일을 했는데 정말 미치는 줄 알았어요. 하루 종일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오는 펌프를 조립 하거나 포장했는데 나중엔 아무생각이 없어지더라구요. 지금 다시 하면 어떨지 잘 모르겠는데 그땐 정말 끔찍했죠. 기술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냥 기계가 되는 것 같더라구요. 친구 다섯 명이랑 함께 다녔는데 아침에 버스타고 공장에 가는 게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랑 공장에서 몇 정거장 더 지나서 내리기도 했지요. 결국 친구 3명은 중간에 그만 뒀어요.”
펌프공장에서 1년을 일하고 공고를 졸업한 천씨는 대형 할인 매장에서 신발 판매도 하고, 정수기 영업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 인천의 한 전문대학 야간학부의 공업화학과로 진학하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좀 해보니까, 전문대 졸업장이라도 있어야 뭘 해도 하겠더라구요. ”
그가 전문대 공부를 하며 찾은 직장이 지금 다니고 있는 물류창고였다. 천씨는 아침부터 오후 4시 까지 일하고 저녁에는 전문대에 나가 수업을 들었다.
천씨는 요즘 고민이 하나 있다. 군대가기 전 다니던 전문대 학과가 갑자기 화장품학과로 바뀌고 야간학부가 없어져 복학을 하려면 직장을 그만두고 주간에 다른 학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가장이된 청년
“무얼 하든 졸업장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학교를 나가려면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하거든요. 어머니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시는데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이제는 제가 가장이거든요.”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천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천씨의 아버지는 올해 초 군대에 있을 때 뒤늦게 발견한 폐암으로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전라남도 여수가 고향인 천씨의 아버지는 빈몸으로 인천으로 올라와 가족들을 위해 부두노동자로 20년간 일하셨다. 1남1녀중 장남인 그를 무척 아끼고 사랑하셨다고 한다.
“가끔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아요. 평생 고생만 하시고..., 저도 제대해서 돈 벌고, 여동생도 졸업해서 직장다니면 아버지도 조금 편하게 사실 수 있으셨을텐데..., ”
천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하신 마지막 말이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돌아가시기 전에 저한테 화장해 달라고 하시고 끝까지 돌봐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돌아 가시기 전까지 저희들 걱정만 하셨어요.”
천씨는 아버지에게서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배운 게 가장 큰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또 하나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것이 있다면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는 시간이 흘러 생활이 안정되면 결혼을 하고 싶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여러 명 키웠으면 한다.
“형제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형제 많은 집이 부럽더라구요. 요즘도 조카들 보면 얼마나 귀여운데요.”
천씨는 요즘 영어학원을 신청해 두었다. 일이 바빠 잠시 쉬고 있지만, 곧 공부를 시작할 작정이다. 훗날 무엇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영어가 꼭 필요할 것 같아서다.
“요즘은 어디든 정규직으로 취직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제가 지금 다니는 곳도 비정규직으로 다니고 있는 거예요. 친구들을 만나도 모두 어떻게 살지 불안해 하더라구요. 저도 그래요. 그래서 뭐든지 해야할 것 같아서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목표가 확실하지 않아 자신이 답답하다”며 고개를 숙이던 천씨는 “무엇을 하든 다른 사람들과 둥글둥글 열심히 살겠다”하고는 이내 그 천진한 웃음을 터뜨렸다.
(글:유동훈/만석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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