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는 없고 맨 망둥이들만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8 18:59:45
장어는 없고 맨 망둥이들만..
뻘그물에 잡힌 고기 40마리중 장어는 4마리뿐.. “이걸 걷어야 돼 말아야 돼”
뻘에 묻힌 그물을 선장 윤현순씨가 살펴보고 있다.
"자 이 배야, 어서 타라구 "
약간은 흐린 듯한 하늘, 아침 8시 물때를 맞춰 찾아간 만석부두에서 선장 윤현순(가좌동, 44세)씨가 우리를 무뚝뚝하게 맞는다. 그가 우리에게 가리킨 배는 '서해호'란 이름이 쓰여진 4.63톤 짜리 작은 배였다.
우리는 바다로 나가기 위해 해경에 출항자 명단을 작성해 내고는 배에 올랐다.
배 안에 널린 그물과 그물에 걸어놓고 말리고 있는 생선을 보니 작기는 해도 이 배가 어선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배 뒤에는 작은 고무 모터보트가 매달려 있었는데, 이 고무보트의 용도는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배는 선미로 하얀 거품을 내뿜으며 바다로 나갔다.
만석부두가에 있는 공장들과 일도화력발전소를 뒤로하고, 서해호는 바다 위에 세워진 기다란 가스관과 원유 수송관을 지나 영종도 쪽으로 향했다.
윤씨는 오른손으로 배의 속력을 조절하는 레버를, 왼쪽 다리로는 키를 이리저리 돌리며 능숙한 솜씨로 배를 몰았다.
찝찔한 바다냄새에 콧노래 절로 나와
배가 바다를 가르며 달릴수록 불어오는 찝찔한 내음의 바람은 좀 차갑긴 했지만 마음까지 시원해질 만큼 상쾌했다. 콧노래도 절로 난다. '저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바다로 떠나는 배...'
배가 20여분을 달려 멈춘 곳은 서인천 복합 화력발전소 수문 앞. 저 앞에 영종대교가 보이고 수문 주위 갯벌에는 갈매기와 왜가리들이 한가로이 놀고있다.
작은 부표에 배를 고정시키고 나니 갑자기 선장 윤씨의 손길이 바빠진다. 그가 플라스틱 박스와 그물을 챙겨 작은 고무보트위로 던진다.
"오늘 일 할 사람이 누구야. 이 고무옷으로 갈아입어"
내 앞에 가슴까지 올라오는 멜빵이 달린 고무옷이 던져졌다.
처음 입어보는 것이라 바지를 벗고 입어야 할지 그냥 입어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냥 바지를 입은 채로 입기로 했다. 그런데 정작 윤씨는 바지를 벗고 나서 멜빵 바지를 입고 있지 않은가.
고무보트에 올라 탄 나와 윤씨는 발전소 수문이 보이는 갯벌로 향했다. 배 뒤에 묶여 있던 고무보트는 수심이 얕은 바닷가를 달려 그물이 쳐 있는 뻘로 가기 위한 ‘상륙용’ 보트였다.
상륙용 보트 타고 뻘그물로 가
갯벌에는 4~5미터의 장대가 일렬로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고 그 사이를 그물로 둘러 싼 울타리 같은 구조물이 서있다.
"이게 그물인가요?" 내가 윤씨에게 묻자. "이런걸 '이강망'이라고 해. '뻘그물'이라고도 하고 말야."
뻘그물은 밀물 때 그물 안에 들어온 고기들을 가두어, 썰물 때 그물 안에 설치된 통로 몇 군데에 따로 원통형의 그물을 놓아 고기를 잡는 그물을 말한다.
우리는 처음으로 통로에 설치된 그물 하나를 건져 올렸다. 나는 들뜬 맘으로 그물을 고무 보트 위로 올려 플라스틱 박스 안에 잡힌 고기를 털어 내기 시작했다.
한 10여 마리의 고기가 잡혔다. 팔뚝만한 망둥이, 숭어, 황색이, 서대, 전어, 새끼우럭, 게 등.. 잡힌 고기를 두고 윤씨는 "이거 장어가 잡혀야 되는데, 전부 돈 안 되는 고기만 잡혔네" 한다.
윤씨가 뻘그물을 쳐 놓은 이유는 '민물장어'를 잡기 위해서다. 발전소 저수지에서 나오는 민물에는 장어가 살고 있는데, 장어는 kg당 4~5만원을 받을 수 있어 다른 고기에 비해 수입이 짭짤한 편이다.
윤씨가 쳐 놓은 뻘그물은 모두 7개였다. 고무 보트를 타고 1시간 정도 돌아다니며 우리가 거둔 고기는 대충 40~50마리고 그 중 장어는 4마리였다. 아무리 따져봐도 배 기름값도 건지기 힘든 수확량이었다.
윤씨는 들라는 장어는 없고 망둥이만 들어 있는 그물을 고무보트위로 끌어올릴 때마다 "이걸 거둬 말어, 미치겠구먼"하고 한숨만 쉰다.
요즘들어 장어 구경이 힘들어진데다 며칠 전부터 바다에 폭풍주의보가 내려 그물을 살필 수 없던 터라 수문 바로 앞에 대 놓은 그물 두 개가 뻘에 묻혔으니 한숨이 나올 만도 했다.
우리는 잡은 고기를 모두 배에 옮겨 놓고 뻘에 묻힌 그물을 수리하러 가기로 했다.
그물 앞에 도착한 우리는 우선 뻘에 잠긴 그물을 끌어올리기로 하고 삽을 들고 갯벌로 뛰어 내렸다. 하지만 그것이 무모한 일이란 걸 깨닫는데는 불과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퍼내도 퍼내도 원래대로 쌓이는 뻘들
뻘은 퍼내도 퍼내도 원래대로 다시 쌓였고, 게다가 몸이 허리까지 빠지는 갯벌에서 삽질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묻힌 그물을 놔두고 그 위에 새 그물을 설치하기로 했다. 윤씨가 그물을 꿰매는 사이 나는 끈과 그물을 들고 배와 뻘그물 사이를 왔다갔다하느라 온 몸이 뻘로 뒤범벅이 되었고 쓰고 있던 안경도 뻘이 묻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
서해호 선장 윤씨는 모두 일곱개의 뻘그물을 쳐놓았다.
두 시간 정도 작업하고 나니 겨우 그물 하나를 고칠 수 있었다.
우리가 또 다른 그물을 손보러 갔을 때는 이미 물이 들어 오고있어 일을 포기해야만 했다.배에 돌아와 뻘이 묻은 몸을 대충 씻고 나니 윤씨가 잡은 숭어를 솜씨 좋게 회치고 있다.절편처럼 두껍게 썰린 숭어회 한 점에 소주 한 잔, 뻘에서 헤맨 피로가 싹 가신다.일을 마치고 부두로 향하는 배는 잡은 것이 별로 없어 가벼웠지만 정성과 부지런함 없이는 고기를 잡을 수 없다는 어부의 하루를 맛본 내 삶의 경험은 무척이나 값졌다.
(임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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