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는 남자들 손이 더 곱다니까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8 19:01:44
"우리동네는 남자들 손이 더 곱다니까"
상처투성이의 거칠고 굵은 할머니들 손마디에 부끄러움을 느끼다
우리동네 골목 이곳 저곳에서는 여름에는 마늘을 까고 겨울에는 굴을 까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더러는 아주머니들도 있지만 대부분 나이가 드신 할머니들이다.
(9번지 골목 마늘까기)
오전 9시, 어제 함께 마늘을 까기로 약속한 할머니 댁에 찾아갔다. 할머니는 벌써 그날 받은 마늘을 다 쪼개어 놓고는 물에 불려놓고 있었다. 마늘은 20Kg씩 자루에 담겨 오는데 한 자루를 까면 대개 15∼16Kg의 깐마늘이 나온다. 사람들은 마늘을 까는 수고비로 1Kg에 400원씩 받는다.
마늘이 물에 불기를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는 나를 골목길 안쪽에 아직 마늘을 쪼개고 있는 아주머니들에게 데려갔다. 그리곤 그곳에 앉아 아주머니들과 함께 마늘을 쪼개기 시작했다.
맨손으로 마늘을 쪼개는 나에게 아주머니 한 분이 장갑을 건내며 "암튼 우리동네는 남자들 손이 여자들보다 더 곱다니깐" 한다. 속으로 얼마나 뜨끔하던지 나중에 장갑을 벗은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의 손과 내 손을 비교해보니 정말 내 손이 새색시 손처럼 곱다. 고운 손이 여기선 무척 부끄러운 일이다.
할머니와 나는 30분쯤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마늘을 쪼개주고 나서 골목에 상을 내다놓고 마늘 깔 자리를 잡았다. 할머니는 "이 동네에서는 서로 돕지 않으면 이런 일 하기 힘들지"하신다.
한 시간쯤 앉아서 마늘을 깠더니 장갑 낀 손은 물에 젖어 시려오고 쪼그리고 앉은 탓에 다리도 저리다.
"할머니 다리 안 아프세요?"하고 물으니 할머니는 "다리도 저리고 목도 아프지 그래도 20년 넘게 해서 그런지 이골이 났어"하신다. 올해 나이가 81세인 할머니는 마늘을 까기 전에는 굴을 깠었는데 이제는 힘이 약해 굴까기 보다 쉬운 마늘을 깐단다.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아침에 같이 마늘을 쪼개었던 아주머니가 삶은 고구마와 감 네 개를 가져와 마늘 까는 상위에 얹어 놓고는 먹으며 하라고는 간다. 좀더 시간이 지나니 동네 아주머니 두 분이 우리가 자리 잡은 곳으로 와서 일손을 보탠다. 아주머니들과 동네에서 일어난 일들과 옛날 이야기들을 하다보니 소쿠리에 금새 깐 마늘이 쌓여갔다.
오후에는 앞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지난주 시집간 딸네 집들이가 오늘이라 홍어를 무친다며 할머니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홍어무침에는 식초가 얼마나 들어가지?" "혹시 쪽파 남은 것 있어?" "할매 식초 어디있지?"하며 할머니 집 부엌을 들락날락 하더니 어느새 우리 앞에는 홍어무침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이 놓여졌다. 동네 사람들끼리 니것내것 가리지 않고 나누어먹고 서로 일을 돕는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그날 내가 깐 마늘은 작은 소쿠리로 세 개, 돈으로 따져봐도 마늘을 까서 할머니를 도와드린 것보다 내가 얻어먹은 것이 더 많아 보였다.
그날 밤, 마늘을 깠던 손이 아리고 옷에서는 마늘 냄새가 진동했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다.
11월12일(9번지 골목 굴까기)
오전 10시, 할머니 한 분과 아주머니 한 분이 굴을 까고 있는 굴막으로 들어갔다.
굴은 40Kg씩 포대에 담겨져 오는데 한 포대에 25,000원을 주고 사서 깐 굴을 시장이나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근당 4,000원씩 받고 판다.
굴까기도 마늘까기처럼 쪼그리고 앉아 칼을 들고 까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힘은 몇 배가 더 들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굴 눈을 찾는 법, 칼로 굴 눈을 떼어 내는 방법을 배우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두 시간이 지나도록 내 굴 바가지에는 굴이 얼마 차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굴을 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굴 껍질을 부수고 있는 것 같았다. 굴 껍질이 이리저리 튀고 마늘 깔 때와는 달리 손이 시린 게 아니라 오히려 손이 아프고 열이 났다.
요령 없이 힘만으로 까고 있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할머니는 "처음에는 다 그래, 자 이리 줘봐 이렇게 굴 눈을 박박 오리면 속이 쏙 빠져" 하시며 위로하신다.
"할머니 굴 까는 게 생각보다 어렵네요"하고 말하는 나에게 할머니는 "30년 굴 깐 사람하고 오늘 처음 하는 사람하고 어디 같나"하시며 굴 까기 연륜을 자랑하신다.
40년 전 만석동에 들어와 일찍 남편을 여윈 할머니는 이렇게 굴을 까며 5남매를 키웠고 지금은 당뇨를 앓고 계시지만 손주와 자식들 걱정 안 시키기 위해 일손을 못 놓는다고 하신다.
"옛날에는 영종도에 굴 밭을 빌려 굴을 따서 배로 괭이부리로 실어와 동네까지 굴 포대를 이고 와서 굴을 깠어.
손수레를 빌려 실어오면 되는데도 그 돈 몇 원이 아까워서, 그 돈 아껴서 아이들 키우려고 힘들어도 이고 날랐지.”
나이가 71세인 할머니가 아직 장가 못간 아들을 걱정하시며 "나이 들면 죽어야지 자식들 걱정시키면 쓰겠어" 하시는데, 문득 나의 어머니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날 나는 두 대접의 굴을 깠는데 양으로 치면 3근이나 될까?
집에 돌아와 상처 난 검지손가락과 빨갛게 부어오른 엄지손가락을 보며 집사람에게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수없이 상처 입고 부어오르며 지금은 굵은 마디를 가진 거칠어진 동네 할머니들의 손이 맘속에 자꾸 아른거려서 말이다.
글:임종연/만석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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