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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사람들의 생각

인천도호부와 자유공원

by 형과니 2023. 5. 4.

인천도호부와 자유공원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6-08 00:45:54

 

인천도호부와 자유공원

 

김상태 ()인천사연구소 회장/인하대 강사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사기(史記)를 서술할 때 여러 가지 원칙 중의 하나가 무징불신(無徵不信)’이라고 한다. 어떠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지 않으면 기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식의 사실은 서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포유류이기 때문에 알에서 태어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이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 것은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 아니다. 분명 박혁거세도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태어났음에도 건국시조이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들 출생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선민의식(選民意識)에서 출발한 것이고 신화(神話)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신화라 함은 분명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성은 없다.

 

 41회 인천시민의 날 기념행사의 하나로 지난 일요일 인천도호부에서는 인천도호부대제(?)가 열렸다. 행사에 앞서 인천시장의 축사 가운데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문구가 있었다. 인천이 도호부로 승격한 시기를 세조 6(1460)이라고 언급하고, 인천도호부대제가 마치 전통시대부터 있어왔던, 그래서 인천에서만이 유일하게 종묘제와 같이 전통을 계승하는 행사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내가 잘못 들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서 옆자리의 사람에게 확인해보니 듣는 사람의 잘못은 없는 듯하다. 말은 한 번 입 밖으로 나가면 주워 담기 어렵고, 상대방이 녹음하지 않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글은 한 번 쓰여지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인천시장이 인천시민을 상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잘못된 전달이라면 분명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말 실수가 아니라 사실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이야기되어질 때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인천이 도호부로 승격된 것은 세조 5년이고, 이에 대한 사실규명은 이미 확고하게 이루어졌다. 인천도호부대제라 불리는 제례는 전통시대 어떤 시기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의례이다. 이 때문에 인천도호부대제는 사실의 고증을 확실하게 할 수 없는 이상한 제례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사가 주재하는 제사에서 종묘제에서나 사용하는 종묘제례악과 춤을 추는 무례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의례를 행하면서 의례를 모독하는 행위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거에 없는 행사를 하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에 따라서 그 당위성을 주장하면 될 것이다. 다만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정확한 사실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어찌 보면 창조적 복원이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한동안 잠잠하던 자유공원 문제가 다시금 우리의 관심을 끌게 하고 있다. 아니 사실은 잠잠했던 것이 아니라, 인천시민이 모르게 물밑에서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일전의 신문기사에 따르면 창조적 복원이라는 해괴망칙한 용어가 재현이라는 용어로 변질되어 밀어붙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 인천시는 서두르는지 모르겠다. 분명 일에는 순서가 있음에도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말 바꾸기를 하면서까지 진행하고자 하는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자유공원은 제국주의의 산물을 재현하는 데 필요한 곳이기보다는 우리의 역사적 자부심을 밝힐 수 있는 소중한 곳이다.

 

최근의 연구에서 자유공원은 19193·1운동이 일어난 이후 같은 해 42일 인천 만국공원(자유공원)에서 13도대표자대회를 개최한 지역임이 확인되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성과는 11월 초에 발표될 것이다. 홍진(洪震 : 1877~1946.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냈고, 민족유일당 운동을 일으켰으며 임시의정원 의장을 3번이나 역임했고, 광복 후 환국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인천 선영에 묻혔다가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됨)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이 바로 이곳 자유공원에서 13도대표자 모임을 가진 역사적인 곳이다.

 

이후 13도대표자대회는 같은 해 423일 서울에서 국민대회를 통해 한성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이 한성정부는 곧 상하이 임시정부로 합쳐지고, 임시정부는 우리 역사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정부로서 인정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역사적인 첫 발을 뗀 곳이 이곳 자유공원인 것이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유공원을 제국주의 세트장으로 꾸미는 것이 인천의 트랜드마크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사실과 꾸밈을 구별할 줄 아는 현명함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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