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2동 515의8번지. 최근 남구 주안2·4동 뉴타운 개발 소식의 현장 한복판에 ‘소월재’란 이름을 지닌 주택이 있다. 1970년대에 지은 국민주택형의 주변 단층주택들과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2층 집이다.
밖에서 보기엔 우선 기품 있게 뻗은 소나무와 무성한 담쟁이가 일품이다. 특히 2층 하부를 필로티로 띄워 외부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것과 날카로운 예각의 대지를 적절히 활용하여 1층 마당과 2층을 연결하는 외부계단으로 쓰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시멘트벽으로 남아 있던 이웃집 담장에 담쟁이를 심어 시각적 유쾌함을 선사하고 있는 것은 이 집 주인의 센스가 보통이 아님을 내비춘다.
대문 왼쪽 기둥에 2004년 주거부문 ‘인천광역시 건축상’ 수상작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다. 겉으로 보기에 집의 디자인이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천광역시장이 표창한 주택이라니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집 앞을 지나가는 행인들 열이면 열 모두가 늘상 이 집 ‘소월재’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들의 눈을 따라가 보자. 화려한 조형감각으로 장식된 집도, 값비싼 재료를 사용한 집도 아니다. 검박미가 도드라지는 집이다. 긴 담장과 집의 동측과 북측의 벽면에 백색 페인트칠 된 벽돌의 텍스춰가 이전 집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인들이 이 집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소월재는 5년 전에 리모델링한 주택이다. 이 집 또한 옆집과 마찬가지로 허름한 단층의 소형 국민주택이었다. 앞집 담장을 대지경계선으로 하는 예각 부분에 작은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던 것을 빼고는 다른 집과 다를 게 없었다. 30여 평 단위로 필지를 분할하다가 지대가 높은 인접대지와의 사이에 자투리로 남은 땅이 이 집의 대지로 엮인 것이다. 정방형의 국민주택 표준도면이 적용되기엔 부적절한 땅이었던 까닭에 졸지에 작지만 그럴듯한 정원을 이 집이 갖게 된 이유다. 대지면적 57평. 바닥면적 20평이 채 안 되는 작은 집이었다. 안방 하나와 작은 방 둘, 거실과 주방, 화장실이 각각 하나씩 그리고 침실에 딸린 내부화 된 창고가 있었다.
좁은 집안에 여러 실이 혼재되어 있음으로 비좁을 수밖에 없는 서민주택이다. 기존 집의 뼈대를 살리면서 내부 공간의 평면조정과 부분적으로 증축을 한 것이 현재의 2층 집으로 탄생된 배경이다. 1, 2층 합하여 30평이 조금 넘는다. 자녀들도 어느새 성년이 되어있던 탓에 이전 집의 규모로는 가족의 생활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집주인 남자는 안동출신의 인쇄인이다. 맨주먹으로 고향을 떠나 인천으로 건너와서 서울 을지로 인쇄골목을 휘저으며 자수성가한 그가 인쇄인의 길로 들어선 지 벌써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처음엔 세를 살았던 집이었지만 인쇄업을 통하여 오래지 않아 이 집을 사들였고, 그렇게 호시절을 맞았다. 점차 인천에도 대형 브랜드 아파트들이 등장한다.
남자는 살던 집을 세놓고 가족 모두 효성동 H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2주택의 소유자가 된 것이다. 아이들은 어느새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2000년을 정점으로 인쇄업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영세한 자영업자들의 일감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무자동화 체제의 안착으로 종이인쇄시장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졌다.
위기감을 느낀 남자는 급하게 인생항로를 조정하기로 작정한다. 2채의 집 중 하나를 처분하자. 그리고 그 자금으로 아이들 학업까지는 마치고, 나머지로는 부부의 노후대책을 세워보자.
처음엔 지금의 주안주택을 처분할까 싶었다. 그제나 이제나 주안 집은 팔아도 돈이 되는 집터가 못되었다. 그 자금을 가지고는 답이 나오질 않았다. 이윽고 남자는 결심을 굳힌다. 50평대의 H아파트를 매각하기로 하고 그 돈의 일부로 변두리에 땅을 조금 사고, 나름 성공적인 젊은 날을 있게 만들어준 주안 집을 리모델링하기로 작정한다. 그의 여자를 설득했다. 어느새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진 여자에게 구질구질한 단독주택의 기억이 좋을 리 만무했다. 남자는 주안 집이 가족의 행복을 일궈 준 원점이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조금만 손을 보면 작더라도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의 삶이 아파트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결국 우리는 불편을 즐기게 될 거야.” 남자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아파트 버금가는 생활의 편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지 규모도 작고, 가용할 수 있는 현금도 제한적이었지만 리모델링하면서는 이전의 집이 그랬듯이 정체도 모르는 업자에게 일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남자의 뜻을 알아서 펼쳐줄 건축가를 찾아 설계를 맡기기로 작정하고 소개를 받는다. 설계자 PMC와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지게 된다.
PMC는 기존 집의 평면을 검토한 후 1층엔 거실 중심으로 주방과 안방을 두고 자녀방은 2층으로 빼는 제안을 한다. 정육면체형 1층 매스 위에 직육면체형의 매스를 포개어 놓는 방식으로 필로티(기둥으로 하부공간을 비운 구조)를 만들고, 그렇게 해서 생긴 잉여의 빈 공간들을 9개의 의미 있는 크고 작은 마당의 안을 제시한다.
그렇게 해서 이 집은 57평밖에 안 되는 대지임에도 무려 그에 준하는 크기의 마당이 되살아났을 뿐 아니라 1, 2층에 걸쳐 군데군데 각각의 의미를 지닌 마당이 숨어 있다. 실로 마당 많은 집이다.
주택의 건축공사가 완료되고, 시공자로부터 열쇠를 넘겨받은 남자는 그때부터 꼬박 3년 이상을 초기 자금 부족으로 미진했던 마당의 식재 등 조경공사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인접대지경계벽에 담쟁이와 대나무를 심고, 집밖의 담장 아래에 화단을 조성하고, 1층과 2층의 마당에 잔디를 포장하고 배수로를 이용하여 수상식물을 키우는 등 곳곳에 번뜩이는 기지를 펼쳐 보였다.
집주인 부부의 손길이 닿아서 완성된 주택의 외부공간이 그 방면 전문가 뺨치는 솜씨를 보여준다. 집의 안팎이 행인의 눈높이로 즐길 수 있기에 이 집의 조경은 고스란히 지나는 행인들의 눈요기 감으로 맞춤하다. 그뿐 아니다. 이 집 소월재에는 벌써 몇 년 째 제집처럼 드나들며 목도 축이고 목욕도 하고 놀다가 가는 새들로 봄부터 가을까지 물 텀벙대는 새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러는 사이 이 집에 영예로운 ‘건축상’ 명패가 붙은 것이다. <계속> (제보 및 기타의견: hinsan@paran.com)
등 장 인 물
PMC(실명:박민철)=1962년생, 중앙대 건축학과 졸업, 동대학원 에서 ‘젊은 건축가 홍순인의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대한민국 건축대전에서 막달라 마리아 기념관으로 특선을 수상했고, 졸업 후 류춘수의 이공건축에서 수학, 삼우설계에서 실무를 쌓았다. 1998년 간향건축을 설립,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여 함평재래시장 환경개선사업으로 제1회 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소월재로 인천시 건축상을 수상했다. 최근 혜원까치종합건축사사무소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건축인생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