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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송현근린공원 일기

by 형과니 2023. 5. 5.

송현근린공원 일기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6-10 15:06:26


송현근린공원 일기


서울 출장 가는 길에 고향 인천에 들렀다. 송림동 어머님 집에서 하룻밤 묵은 다음날 아침 근처 송현근린공원에 들었다. 귀에는 향적사 풍경소리만이 아닌 배수지 숲의 비둘기며 산새 소리도 들려왔고 불전에 올린 향 타는 냄새와 가지 치기를 했던 탓일까.

시큼한 잣나무 수액 향기는 코로 든다. 이른 아침인데도 주민들이 많다. 모두 빠르게 걷고 또 뛰기도 하는 걸 보면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다. 사실 동구에 이만한 쉼터가 어디 있을까? 여기는 유서 깊은 달동네가 있었던 수도국산이고 이젠 아파트가 들어섰고 그 흔적은 달동네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산정에 오르니 기계음이 고막을 울린다. 바닷가 공장에서 들려오는 쇳 소리들이다. 어디 소음뿐인가, 화공약품 냄새도 진동한다. 그렇게 공원은 아파트와 공장 사이 작은 섬처럼 외롭게 존재하고 있다. 거대한 회색 숲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다.

그런데 동구의 허파인 외로운 송현동 공원 아래가 수상하다. 터널이 뚫린 것이다. 달동네박물관 지하를 관통하고 있는 산업도로였다. 공사는 잠시 멈췄지만 아주 멈춰야 한다. 박물관 초입 우측 아파트 앞에 교회 건물이 보인다. 아직 십자가 불빛은 켜져 있고 교회 이름은 '온사랑'이다. 그 때 좌측 배수지 넘어 아침 해가 떠오른다. 동구에 온(모두)사랑의 불씨 살아 있다는 뜻으로 받아 들였다. 그 희망은 '산업도로 터에 나무 심어 녹색 띠를 만들라는 의미'로 말이다. 터널 앞 경사진 잔디 위에 박힌 좌우 역동적인 팔처럼 감싸는 녹색 띠 위에 빛나는 태양의 동구 마크가 선명하다. 공교롭게도 지금 떠오르는 해와 한 몸으로 환하게 겹쳐지고 있다. 순간에 맛본 벅찬 감동이다.

인천이, 동구가 길을 잃었을 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경제적 가치만이 아닌 생명적 가치'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이기적 경제성장이 저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길로 이끈다면 생명의 가치는 함께 나눠먹는 삶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지금 동구는 산업도로 공사뿐 아니라 도시재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개발 속에서 말없이 죽어간(갈) 문화생명들이 좀 많으랴. '불편에서 편리'로 바뀌는 '몸살'이었으면 좋으련만, '생활이 아닌 생존'의 공간으로만 거듭 날까 두렵다. '죽음이 생명'으로 '회색이 녹색'으로 바뀌는 역사라야 '광야가 가나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송현동 공원, 그래도 나무가 있어 새들 날아와 놀고 사람들도 다퉈 활보하며 건강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이 구민들의 '소박한 그리고 간절한 활동(活動)' 말고 그 어데서 따로 쾌적한 삶(생활)을 구할 수 있을까?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도 해보고 공 주먹의 팔을 앞뒤로 흔들며 몸 풀기도 해본다. 몇 분 안돼 숨이 가 파 온다. 벤치에 앉아 숨고르기를 한다. 헌데 숨이 더 가프다. 숨을 몰아 쉴 때마다 화학약품 냄새가 허파로 들어온 탓일까. 녹색으로 물든 공간에 산소대신 공장에서 내뿜은 역한 냄새로 가득 찼던 것이다. 작은 숲이 공장들의 악취를 감당키엔 너무 애처롭다. 그래도 수도국산 하늘은 아직도 푸르고 흰 구름도 오간다.

공원을 한바퀴 돌아 향적사 경내에 섰다. 마당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돌탑이 있다. 깊게 합장한다. 대웅전 앞 펼침 막엔 '마음을 맑게 세상을 향그롭게'라고 적혀있다.

온사랑 교회에 담긴 주님의 뜻도 사랑이었고 향적사 부처도 살림을 말씀했다. 그랬다. 구민들의 온 마음을 담은 동구 상징도 결코 죽음이 아니었다. 오직 '녹색의 생명'이었다.
 
/김철성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