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도시 ‘북성포구’에서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6-12 16:30:50
명품 도시 ‘북성포구’에서
▲ 김윤식 객원논설위원
지난 토요일에는 인천 연수문화원이 주최하는 ‘작가 시인과 함께하는 문학기행’에 초대되어 갔었다. 이 행사의 취지는 시민들과 문인이 직접 대화를 하면서 문학의 현장으로서 인천을 재발견한다는 것이다. 인천을 주제로 한 작품, 인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 혹은 인천출신 문인들의 문학 정신이 배태(胚胎)한 성장기 고향으로서 그 현주소를 찾아가 보는 행사라고 할 것이다.
이번은 바다와 어물(魚物)에 관련한 시를 여러 편 썼던 내 차례여서 지금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는 옛 인천의 부두들-화수부두, 만석부두, 그리고 북성구지(북성포구)를 돌아보는 것으로 코스를 잡았다. 태풍 나리의 북상으로 많은 문학 동호인들이 참가를 취소했지만 20여 명 기행단 대부분은 평생 처음 와 보는 이 세 곳 부두에 크게 인상 깊어 했다.
‘인상 깊음’을 말했지만 사실 이 부두들은 시민들이 그렇게 흥미로워 할 만큼 제대로 된 부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근래에 이르러 겨우 그 오랜 세월 누명(陋名)처럼 쓰고 있던 “×바다” 신세를 면한, 그러나 여전히 초라하고 지저분하고 낙후된, 웬만한 작은 어촌, 포구만도 못한 소형어선 십수 척이 옹색하게 와 닿는 선창일 뿐이다.
더구나 이 부두들은 언제 폐쇄되고 말지 모르는 신세다. 특히 화수부두는 이제 한 재벌기업의 고철을 하역하는 전용부두가 되고 말 운명이고, 만석부두 역시 지금은 몇 척 남지 않은 소형 어선들이 주말 낚시객을 태우거나 아니면 조개 캐는 아주머니들을 실어 나르는 일이 고작이다.
그런데도 문학기행에 참가한 일행들은 이 어쭙잖은 부두에서 디카를 누르고 곳곳에 깃든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감탄하고 아쉬워하고 흥미로워 했던 것이다. 특히 북성포구에서 맛본 흥분이란 거의 절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운좋게 물때가 맞아 가을 꽃게와 생새우를 실은 소형어선들이 꼬리를 물고 입항(?)하는 장면을 생생히 목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꽃게와 생새우를 사기 위해 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줄잡아 100여 명은 실히 될 것으로 보였다. 인천시민은 물론 서울, 부천 등지에서 원정 온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배가 닿자 누가 먼저였는지 문학기행단들도 다른 시민들처럼 이내 열한 척 어선에 새카맣게 올라 한 말에 5천 원 하는 생새우를 봉지 봉지 사 드는 것이었다.
문학기행은 이것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무거운 새우 봉지를 들었으니 어디를 더 돌아볼 수도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모두들 이 인천만이, 이 북성포구만이 가지고 있는 ‘싱싱한 명물’에 흠뻑 빠져든 풍요로운 표정들이었다. 애초 이 코스를 택하면서 이들이 실망하고 돌아서면 어쩌나 했던 염려는 그야말로 기우였다.
그때 누군가가 던진 말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인천이야말로 진정 ‘명품 도시’”라는 것이었다. 이 북성포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명품 도시라! 인천시장이나 도시개발, 도시재생을 기획하는 국장, 과장 같은 공무원들이 생각하는 명품 도시는 결코 이런 것이 아닌데…. 그 사람은 이곳을 조금만 손보면 국내외적으로 최고의 명물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인천은 어디까지나 인천다워야 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이 말 때문에 정신이 번쩍 났던 것이다. 그렇구나. 인천이 인천다우려면 이렇게 ‘옛날 바다’를 살려서 ‘시민들이 몸을 대고 만지고 비비고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무턱대고 파헤치고 메우고 해서 그나마 옛 인천의 정체(正體)를 다 사라지게 해 놓는 것이 어찌 명품 도시로 가는 길인가.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파헤쳐 폭 50m 산업도로를 만드는 일 따위는 세계 어느 나라 명품 도시도 하지 않는 일이다.
물때 맞추어 시장이든 국장이든 한 번 북성포구에 가보시라. 얼마나 대단한 우리 일상의 명품이 거기에 있으며 얼마나 값진 도시 관광 명품이 거기에 있나.
조금만 손보면 된다. 대한사료 측과 의논해 축대를 정비하고, 청결하게 하고, 사람들 통행이나 조금 신경 써 주면 된다. 쓸데없이 밀어붙이거나 시멘트 바르지 말고. 그래야 이 포구 하나만이라도 명품으로 남겨 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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