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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의 인천이야기

살아남는 ‘일본집’ 앞에서

by 형과니 2023. 5. 6.

살아남는 ‘일본집’ 앞에서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6-15 17:14:09

살아남는 일본집 앞에서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인천시 중구 송학동 3가에는 오늘날에도 아직 몇 채의 일본집이 남아 있다. 여기뿐이 아니라 중구 내에는 여기저기 낡아가는 대로 몇 채씩 일본집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일본집들은 연륜을 아무리 낮춰 잡아도 63년 이상이 된 집들이다.

 

대부분이 퇴락할 대로 퇴락한 상태인 데다가 낙후한 중구의 구세와 겹쳐 매매 거래가 없어서 흉가처럼 비워 놓은 집들도 여러 채가 된다. 주인들은 집을 비우고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본집이 팔리면 가차 없이 헐려지고 다른 새집이 들어선다.

 

그런데 며칠 전 한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신포동에서 이른바 구제 옷가게를 경영하고 있는, 전부터 약간 안면이 있는 A씨가 인부 행색의 사람들 몇몇과 높은 축대 위에 도사린, 그리고 여러 달째 비어 있던 허름한 일본집 문을 들락거리는 것이었다.

 

눈치로 보아 아마도 집을 산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이 지게차나 덤프트럭 같은 철거 장비를 전혀 동원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것이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다. A씨의 입에서 개발 논리가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그러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왜 부수느냐는 것이었다. 비록 일본집이라고는 하지만, 오래된 집이니 그대로 두고 내부만 바꾸겠다는 이야기였다.

 

개항 이후, 일제가 인천을 저들의 도시나 되는 듯이 마음대로 점령해 수탈의 기지로 삼던 잔재라는 생각을 하면 수치심까지 치밀어 오르지만, 한편 그 역시도 우리 역사의 일부라고 고쳐 생각하면, 일본집들을 그런 역사의 현장으로서 자손 대대로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그 순간 들었다.

 

A씨는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건축물에 대해 남다른 이해나 지식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그런 A씨가 이런 요지의 말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어쨌든 일본집이 인천에 남아 있다는 것이 특이하고, 또 부수기는 쉬운 법이어서 순식간에 없앨 수 있지만, 한 번 헐어버리면 6080년을 견뎌온 집이 지상에서 영영 사라지고 만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교롭게도 요즘 인천의 모 고등학교동창회가 옛 강당 건물을 철거하는 문제로 설왕설래하고 있는 것이 떠올랐다. 이 건물 역시 일제가 자신들의 후세를 교육하기 위해 세운 자신들 학교의 강당이었다. 그러니까 앞서 말한 일본집과 마찬가지로 일제의 잔재이면서 동시에 우리 역사의 현장인 셈이다.

 

이 건물의 철거를 주장하는 교육 당국은 우선 학생들의 안전을 주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안전 진단 결과가 어떤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철거가 시급했다면, 오늘날까지 보수를 하지 않고 방치했던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안전을 들어 철거를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행정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는 행정 조치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교육 당국은 다른 이유 다 치우고 그저 오래된 건물이라서 보존하려는 A씨의 소박함만도 못하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해방 이후, 이 강당은 우리 민족의 미래를 웅변하고, 민주주의를 토론하면서, 무릇 수많은 영재를 길러낸 도장이이기도 했던 것을 전혀 모르는 듯하다. 혹여 그 값싼 개발 논리가 교육 현장에도 퍼진 것은 아닌가.

 

엊그제는 배다리시민모임과 희망제작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배다리 문제를 중심으로 지역 개발 정책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다. ‘100년이 넘는 역사와 마을 문화를 파헤쳐 산업도로를 관통시키려는 개발지상주의를 따지고 바로잡기 위해 200여 주민이 서울 국회에까지 가서 포럼을 연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급격하고도 무분별한 개발 논리‘, ‘부수고 보는 불도저 논리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한 대안이었던 것이다.

 

왜 우리는 ‘75년 된 강당 건물의 의미를 후세 학생들에게 전해주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100년 마을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가꾸고 보존해 나가지 못하는가. 도처에서 벌어지는 철거와 파괴를 목도하며 A씨의 살아남는 일본집한 채 앞에서 거듭 뼈아프게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