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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의 인천이야기

자유공원 길

by 형과니 2023. 5. 19.

자유공원 길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1-10 22:10:02

 

찐빵행상·야바위꾼인천의 萬象 집합소

김윤식·김보섭의 인천 재발견-(1) 자유공원 길

 

 

인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치고 만국공원, 곧 자유공원에 대해 일말의 감회라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공원이, 정확히 말해 웃터골을 포함하는 이 일대가 인천 사람들의 마음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그대로 생활이 되고 생각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공원을, 이 웃터골 일대를, 지난 날 인천의, 인천 사람들의, 표상이요 정체였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눈오는 날 자유공원.)

 

축항과 월미도를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우거진 숲, 맥 장군상. 길가에 앉아 사주팔자를 점치던 판수와 점쟁이들, 완장을 두른 유료 사진사들. 찐빵 행상들, 냉차 장수들. 그리고 물방게 행운 뽑기, 박보장기, 주사위놀이 따위로 산보객을 유인하던 야바위꾼들에 대한 기억. 전쟁 후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궁핍하고 힘들었던 시절, 자유공원은 그나마 이렇게 인천의 만상(萬象)자유롭게집합하던 곳이었다.

 

그 뿐인가. 그 시절 자유공원은 딱히 갈 곳도, 갈 여유도 없는 인천의 신혼부부들의 기념사진 촬영 코스이기도 했다.

 

식이 끝난 신혼부부들은 곧바로 이리로 올라와 월미도를 배경으로, 또는 맥 장군상 아래서 사진을 찍었다. 하얀 드레스에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인 신부와 애써 의젓해 보이려는 신랑의 모습, 울긋불긋 색 테이프로 치장한 대절 신혼 택시, 에워싼 구경꾼들.”

 

머릿속에 남은 1950~60년대 자유공원의 잔상(殘像)을 해 전, 어느 일간지에 이렇게 썼었다. 이것이, 그러니까, 이 글을 쓰는 사람만의 지난날 자유공원의 정체일 것이다. 산문이 아니라 시로 읽고 싶은,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이 공원에 대한 그 사람의 실체일 것이다. 누구나 이런 자유공원을 가슴속에 가지지 않았으랴. 이제 여기를 더 이상 고지식한 역사의 안목으로만 바라보지 말자. 차디찬 이념의 목소리로만 말하지 말자. 한 편의 시로 읽자. 아름다움으로 읽자. 다시 웃터골로 읽자.

 

누군가가 먼저 와 여기 눈 속의 공원길을 지난 것 같다. 아니, 한참을 머물다 간 것 같기도 하다. 벤치 위의 눈을 쓸어내린 흔적이 보인다. 아우성치듯 얽힌 채 흰 눈을 뒤집어쓴 나뭇가지들, 누운 벤치들, 몸이 우그러들 것 같은 정적(靜寂)에 발걸음을 붙잡혔는지 모른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앉아 있었을까.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을까. 이 도시의 과거, 이 공원의 과거를 생각했을까. 눈을 맞으며 이 벤치에 기대앉았다가 그냥 스르르 눈을 감는다 해도, 그것은 아무런 아쉬움이 남지 않는 순한 인생의 일일 것이다.

 

공원을 에두르고 있는 눈 속의 산책길이 정녕 시적(詩的)이다. , 이곳이, 이 공원길이, 당신에게 보여줄 아름다운 내 고장 첫 인천이다.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사진=김보섭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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