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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역사

'경성잡필' 1936년 12월호에 수록된 "송도유원을 말한다" 라는 글

by 형과니 2023. 5. 8.

'경성잡필' 193612월호에 수록된 "송도유원을 말한다" 라는 글

知識 ,知慧 ,生活/옛날공책

 

2006-12-26 01:19:19

 

[자료보충] '경성잡필' 193612월호에 수록된 "송도유원을 말한다" 라는 글

 

 

<경성잡필> 193612월호에 송도유원의 상무인 후지모토 겐이치(藤本源市)가 기고한 "송도유원을 말한다"는 글이다.

 

<경성잡필> 19389월호에 수록된 "인천 송도를 보다"라는 글인데, 필자는 그냥 '일기자(一記者)'라고만 표시되어 있다.

역시 <경성잡필> 19389월호에 수록된 "인천 송도를 보다"라는 글의 뒷부분이다.

 

 

위의 글 가운데 단순히 사료가치로만 본다면, 앞에 나온 후지모토 겐이치의 글이 아무래도 더 낫다고 할 것이다. 우선 글이 쓰여진 시점이 '옥련리'가 막 인천으로 편입되어 '송도정'으로 바뀐 때이고, 필자가 송도유원의 상무 직위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송도유원의 설립배경 및 그 당시의 모습이 어느 정도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뒤의 글은 약간 시차가 나는 글이긴 하지만, 이것 역시 송도유원에 대한 직접 탐방기라는 점에서 그런대로 참고할 만한 내용은 되지 않을까 여겨진다.

 

여기에서는 우선 후지모토의 글만 옮겨둔다.

 

 

후지모토 겐이치(藤本源市, 송도유원 상무), "송도유원을 말한다"

 

<경성잡필> 193612월호, 52

 

송도유원(松島遊園)은 자본근 2백만 원의 주식회사로 본년 4월 인천부(仁川府)에서 고고성(孤孤聲)을 올렸던 것이나 아직 경성(京城)의 사람에게는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는 못한 모양이다. 물론 영리회사이긴 하지만, 본 유원(遊園)은 무역, 공업, 관광의 3대 부시(府是)를 기간(基幹)으로 하여 인천부의 개발에 대단히 활약하고 있는 나가이 인천부윤(永井 仁川府尹府尹)에 의해 계획되어 본래는 부()의 사업으로 경영되어질 성질의 것이었으나, 적적(適適)한 바다에 대해 동경을 가졌던 경성(京城)의 유지(有志)로부터 계획되고 있던 임해별장지(臨海別莊地)의 경영과 경합된 탓에, 회사의 사업으로 하여 실현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나가이 부윤의 관광인천(觀光仁川)은 문학산(文鶴山)을 중심으로 하는 480만 평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을 국제관광지대(國際觀光地帶)로 하여 개발하는 것을 이르는데, 송도유원은 실로 그 선구(先驅)가 되는 것으로, 따라서 회사의 사업목적은 해수욕장(海水浴場)을 중심으로 하는 임해유원지(臨海遊園地)의 건설과 임해별장지(臨海別莊地) 및 임해주택지(臨海住宅地)의 경영에 있으므로, 이름은 주식회사(株式會社)이지만 사업 자체는 다분히 공공적(公共的) 색채를 지니고 있다.

 

관광인천의 건설은 그 규모가 크고 이것의 완성에는 상당한 세월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 선구인 송도유원은 인천부 관민일반의 큰 기대와 지원 아래 내년 여름철까지 대체의 형태를 갖춰 도읍대중(都邑大衆)에 선을 보이고자 착착 공사를 진척시키고 있다.

 

회사의 경영지(經營地)는 본년 10월 새롭게 인천부에 편입되어진 구 부천군 문학면 옥련리(舊 富川郡 文鶴面 玉蓮里)의 해안 일대 60여만 평의 지대인데, 인천부 제2산업도로의 연장과 경동철도 수인선(京東鐵道 水仁線)의 개통으로 경성에서의 행정(行程)1시간 20분으로 단축되고, 더구나 주안학익정간(朱安鶴翼町間)의 도시계획노선이 개통되는 날에는 행정이 1시간으로 되어, 유원의 위치는 인천부에 있으나 경성의 유원지라고 해도 안될 것도 없으며 또한 실제에 있어서도 월미도유원(月尾島遊園)과 더불어 경성부민(京城府民)에게 보다 많이 이용되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도시가 커지게 되면 그런 만큼 시민의 건강보지(健康保持)의 입장에서 위안, 오락, 운동, 휴양 등을 겸비한 유원설비가 필요한 것은 설명을 필요치 않는 바이며, 특히 여름철의 해수욕이 도회인(都會人), 그 가운데 아동(兒童)의 건강에 기여하는 효과가 큰 것이 일찍이 경험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송도유원은 10만 평의 해면(海面)을 매립, 해빈사유지(海濱社有地) 2만 평을 합쳐 면적 12만 평을 유원지대로 하고, 25천 평의 대해수욕장(大海水浴場)을 중심으로 위안, 휴양, 오락, 운동을 겸한 유원지를 조성하여 경인양부(京仁兩府)는 물론 원근(遠近)의 도읍대중을 맞아들이고 있다. 게다가 경영지 일대는 송도금강(松島金剛)이라 칭하는 기암(奇岩)이 중첩(重疊)된 영봉(靈峰)을 배경으로 하여 바다에 임하며, 멀리 인천 앞바다의 도서(島嶼)를 전망(展望)하는 멋진 바닷가 별장지도 있고 또 주택지도 있다.

 

우리 경성부(京城府)는 최근 부역확장(府域擴張)에 따라 인구 65만의 대도시(大都市)가 되고, 나아가 인구 백만을 보며 약진도상에 있어, 도시로서의 시설은 해마다 정비되어 가고 있다. 이것을 지리적으로 보아도 산이 있고, 강이 있고, 지세의 변화에도 충분히 건강도시(健康都市)로서의 요소는 모두 갖추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빠진 것은 바다가 멀다는 것이다. 아니, 가까이 이용하기에 적합한 바다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성의 인사(人士)는 허다한 불편과 경제적 희생을 돌보지 않고, 겨우 여름철 수주간을 위해 원격지(遠隔地)에다 별장을 구하고, 혹은 천막생활을 나선다. 하지만 그것은 부민(府民)의 아주 일부분이며, 대다수의 부민은 바다를 접할 기회를 누리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 경성의 현상이다. 송도유원이 다대한 희생을 견디며 거비(巨費)를 던져 부시(府是)에 순응하여 일대유원지를 건설하는 것과 함께, 바닷가 별장지의 경영을 기도하는 것은 실로 이 바다에서 떨어진 경성의 결함을 메워 도읍대중에 위안과 휴양을 겸하여 가족적 아동본위(兒童本位)의 오락장을 제공함으로써 건강증진에 기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감히 여기에 본고를 기고하는 까닭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