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 안관당 이야기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20 00:52:55
문학산 안관당 이야기
옛날 문학산 봉화대가 있던 자리 밑에는 안관당이라는 사당이 하나 있었다. 이 안관당에는 나무로 깎아 만든 할아버지와 할머니목조상이 모셔져 있었다. 할아버지의 상은 아주 험상한 듯하면서도 위엄이 있고, 눈을 부라린 모습이 매우 용맹하게 보였다.
“마치 불법을 지키는 금강역사와도 비슷하게 생겼네.”
“그래도 우리 마을 우리 문학산을 지켜 주는 신령님이신데.”
“암, 우리 마을이 평안한 것은 다 저 두 분 할아버지, 할머니 덕분이야.”
이곳 마을 사람들은 모두 두 목조상을 ‘안관할아버지’ ‘안관할머니’라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좀 험상궂게 생기기는 했지만 안관할아버지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믿고 의지하며 떠받들었다.
매년 봄가을로 풍년을 빌고, 또 감사드리는 치성을 올리고 바다에 나가서는 풍랑을 만나지 않고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제사를 지냈다. 뿐만 아니라 온 마을의 태평함을 기원하는 것은 물론, 아기가 없는 사람들은 이 안관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아기를 낳게 해 달라고 백일 정성을 드리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모지 고개 너머 지금의 청학동에 사는 최씨 문중의 어느 부인이 이 안관 할아버지의 험상궂은 얼굴을 보고는 그만 흉을 보았다.
“흥, 이것이 다 무어람? 이상하게 생긴 목조상을 갖다 놓고 이걸 산신이라고? 다 어리석은 미신이고 우상일 뿐이야.”
그 부인은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안관당에 와서 아기를 낳게 해 달라고 비손(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신에게 소원을 비는 일)하는 것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웃고 경멸했다.
이런 일이 있고 얼마 후 그 부인이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열 달이 지나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아기의 생김생김이 바보 천치처럼 생긴 것이었다.
“필경 부정을 탄 거야.”
“안관할아버지를 비웃었으니 할아버지가 노하셔서 벌을 주셨는지도 모르지.”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영락없이 아이는 안관할아버지처럼 눈을 부라리면서 마치 사람들을 쥐어박을 듯 주먹질을 해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연상,
“씨익 씨익.”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아이를 보면,
“어, 씨익 할 네, 가는구나.”
하고 말했다. ‘씨익 할 네’는 ‘씨익 하는 소리를 내는 사람’ 이라는 뜻이었다.
안관당에는 이와 비슷한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봉화대 밑에 사당이 한 채 있는데, 그 사당 인근에는 수백 년 묵은 큰 느티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사당 안에 나무로 새겨 만들어 옷을 입힌 남녀 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하며, 그 곁에는 많은 목마와 창과 칼들이 놓여 있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설화로는 인천 부사 김민선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안관당이 임진왜란 때 김민선 부사의 공적을 기려 그의 혼령을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라는 것이다. 김민선은 옛 문학산성을 수리하고 지혜와 계략으로 왜병을 물리쳤다고 한다. 사당을 짓기 전에 김민선 부사의 혼령이 가끔 이곳에 나타났기 때문에 이곳에 그의 혼령을 모셨고 그 후 병란이 있을 때마다 김부사가 목마를 타고 나타나 창과 칼로서 막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이 사당이 보이는 곳에서 말을 타고 지나가면 말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를 못했다고 하는데, 김 부사에 대한 존경을 강조하는 뜻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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