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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사람들의 생각

민어(民魚)와 복(伏)

by 형과니 2023. 5. 12.

민어(民魚)와 복()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8-07-30 10:51:32

 

민어(民魚)와 복()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일전에 모 일간지 살롱필자의 삼복민어란 글을 본 적이 있다. 글의 요지는 삼복에 잘 먹어야 한다는 것과 그 별미로 옛날 어른들은 더위에 민어를 먹어 왔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이 민어 철이어서 유서 깊은 생선전, 신포시장 민어집들이 성시를 이루고 있다.

 

지나치게 아전인수라 할지 모르나, 민어라 하면 단연 인천이 최고였고 지금도 몇 군데 좋은 맛을 내는 집이 있는데, 거기 필자는 그것을 잘 모르고 민어탕을 찾아 목포까지 갔었던 모양이다. 더구나 민어 내장을 넣고 끓인 매운탕운운하는데 그는 아마도 인천 특유의 전통 민어 서덜이탕에 대해서도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원래 인천에서는 민어매운탕이 아니라 서덜이탕이었다.

 

민어는 조기와 함께 서해바다의 대표적인 어족이다. 요즘은 워낙 귀해서 고급어에 속하나 이전에는 흔했기 때문에 서민과 가장 가까운 대중어(大衆魚)였다. <중략> 민어는 여름 복중이 제철이라, 이때면 기름진 소담한 살이 한창 맛을 돋구어 준다. <중략> 제철의 민어는 전통 요리법에만 따르면 무엇을 만들든 그 맛이 일품이다, 생회와 어포도 좋고 굽거나 끓이거나 졸여도 그만이고, 심지어 딴 생선 같으면 버리는 대가리, 등뼈, 내장을 끓인 서덜이탕도 인천의 명물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중략>

 

민어가 많이 잡히던 강화, 영종, 덕적 같은 섬에서는 생선으로는 처분할 길이 없어 옛적부터 소금에 절여 말린 암치를 주로 만들고 있었다. 새하얀 암치가 서울 살림에 없어서는 안 될 여름 반찬이었던 것도 오래된 이야기다. 민어를 갈라서 암치를 만들 때 알과 부레, 그리고 아가미와 내장이 남는다. 민어 알을 말린 어란은 고소하고 쫀득대는 맛이 일품이어서 마른반찬과 마른안주의 꽃이었다. 아가미와 내장으로 담근 젓갈도 밥반찬으로 별미였다. 민어는 유별나게 발달하고 있는 하얗고 두꺼운 부레가 있는데 이것이 예부터 어교(魚膠) 또는 부레풀이라고 부르던 활과 장롱을 만드는 데 긴요한 최고급 접착제였다. 한 반세기 동안 생선 민어, 암치, 어란, 부레의 공급지가 인천이었던 것이다.”

 

이 글은 고 신태범 박사의 먹는 재미 사는 재미에 나오는 민어에 대한 일절이다. 고인이 워낙 식품에 대한 지식이 넓고 미각이 특출한 분이었지만 맛깔 나는 문장과 함께 인천 민어의 요리법과 맛을 생생히 전해 주고 있다. 여기에는 소개가 되지 않았지만 민어 부레는 인천의 중국 요리점에서 재료로 쓰였고 별미 순대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이 같은 인천 민어 요리의 전국적 명성은 적어도 개항을 지나 대략 1920년대 초입 무렵부터 시작됐다. “당시 여름 한때에는 인천 앞바다에서 잡히는 기름진 싱싱한 민어가 흔해서 회와 구이, 그리고 서덜이 찌개를 맛보려고 많은 서울 술꾼들이 찾아 내려왔다.”는 신 박사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그곳 필자는 이런 내력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민어를 民魚로 표기한 근원은 알 수 없으나, 이름 그대로 서민의 생선임에 틀림없다. 옛날에는 작은 아이 몸통 만했던 그 크기로 보나, 온몸 구석구석 하나도 버리지 않고 통째로 먹을 수 있는 점에서 서민들과 가깝다. 어쩌면 뭍의 소와 비슷하다고 할까. 그런데 민어는 이제 점차 씨가 말라간다고 하고, 그 소는 지난봄부터 지금, 삼복까지 나라를 뒤숭숭하게 만들고 서민들을 땀나게 하고 있다.

 

속대발광욕대규(束帶發狂欲大叫)는 두보(杜甫)의 시에 나오던가.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 의관을 정제하고 앉았으니 미쳐서 소리를 지를 것 같다는 뜻이다. 비록 속대(束帶)’까지는 하지 않는 서인(庶人)에 불과하지만 중복에 들어선 요즘 날씨가 가히 발광(發狂)’하고 욕대규(欲大叫)’할 만하다. 더구나 앞서 말한 대로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무엇 하나 소리 지르지 않을 일이 없다.

 

이런 날, 굳이 포럼이랍시고 이것저것 들춰내 가뜩이나 덥고 짜증나는 시민들을 더 ()’받게 하느니 잠시나마 먹음직스런 우리 인천 민어, 제철 인천 민어 음식 이야기로 복날의 더위와 머리를 식혀 보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