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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사옥

by 형과니 2023. 3. 12.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사옥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1-21 00:41:33

 

격동의 역사, 질곡을 넘나드는 시간의 통로

잊혀진 근대건축물 -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사옥

<공동기획-‘우리문화유산 바로 알고 지키기’>

 

인천에서 알려지지 않은 근대건축물 -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사옥>

· 손장원

 

 

구 일본우선회사 인천지점 사옥

 

개항기, 일제강점기 인천에서 활동했던 일본 회사 건물을 보면 그 회사들이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망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이 들곤 한다. 일제가 이 땅에서 물러가면서 그 회사들도 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그 당시 회사들은 지금도 일본에서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우선주식회사(日本郵船株式會社)의 경우 지금도 도쿄에 본사를 두고 항운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18은행도 웹페이지에 은행간판이 있는 것을 보면 사업을 계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천시 중구 해안동 19번지에 위치한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사옥은 1895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건축물의 건축연도에 대해서는 연구가 좀 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1886년에 신축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신태범 선생의 인천중구의 옛 풍물과 달리, “인천부사에는 일본우선회사가 인천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기를 1895년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내셔널 트러스트 홈페이지에는 이 건물의 건립연대를 1933년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1908년에 발행된 인천개항 25년사에 건물사진이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1908년 이전에 건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의 정확한 건립연도와는 별개로 일본우선회사는 189410월 조선에서의 연안항업을 장악할 목적으로 조선정부와 접촉하기 시작했고 이듬해인 18952월에 이운사(利運社 ; 1892년 조선정부의 전운국에서 세운 해운회사)의 항해업을 위탁관리하면서 우리나라 연안에서 정기항해를 시작했다. 그 후 여러 항운회사가 인천에 진출했지만, 일본우선회사가 인천 항운업을 거의 독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사옥은 당시의 업무용 건축물로는 비교적 규모가 큰 편으로, 건축재료를 일본에서 반입하여 세웠다고 전한다. 정면을 좌우대칭으로 처리하고 이를 강조하기 위해 설치한 주 출입구 상부를 페디먼트로 처리한 의양풍(擬洋風) 건축물이다. 현재 정면 출입구에 있는 기둥과 슬라브는 나중에 설치한 것이다. 세로방향의 창문을 두어 수직성을 강조했고, 정면부 지붕에는 패러핏을 설치하여 앞에서 보면 평 슬라브 건물로 보이지만 실제는 모임지붕의 건물이다.

 

이 일대의 건축문화재가 주로 은행이나 관공서 건물인데 비해 격식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었던 회사의 업무용 건물이라는데 의미가 있으며, 근대기 사무소 건축양식을 알려주는 건축물이다. 이 건물의 이력을 살펴보면 일본우선회사 인천지점, 미쓰비시기선 인천지점, 굴기선(掘汽船)회사, 창고(1933)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방 후 동화실업주식회사, 천신항업, 대흥공사 등 항만관련 회사의 업무용 건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비어있는 상태이다. 건물 옆에 쓰러져있는 한그루 향나무가 쇠락한 이 건물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인천을 넘어 우리나라 근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 건축물은 우중충한 과거와 역사의 질곡을 넘어 보다 면밀한 연구조사를 바탕으로 문화재로 지정 관리할 필요가 있는 근대건축물이다.

 

우리나라에서 사방공사수종으로 많이 사용되다가 왕성한 번식력으로 비난을 받아 지금은 많이 사라진 아까시 나무도 이 건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에 아까시 나무가 전래된 것은 1891년으로 일본우선회사 인천지점장에 부임한 사까끼가 중국 상해에서 묘목을 구입하여 인천공원(, 자유공원으로 추정됨)에 식재한 것이 효시라는 설이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