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동제(2) -남동구 운연동 음실 마을 동제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8-10-31 13:37:33
인천의 동제(2) -남동구 운연동 음실 마을 동제
문상범 제물포고등학교 교사
인천시 남동구 운연동 음실마을은 인천대공원 앞쪽에 있다. 농업이 주업이었으나 최근 중소 규모의 공장들이 들어서며 마을 경관이 많이 변했다. 인천에서는 매년 동제를 지내는 유일한 마을로, 올해도 어김없이 동제를 지냈다. 유교식과 무속이 혼합된 절차의 동제를 지낸다.
# 인천 유일의 당고사
제의 이름은 ‘당고사’다. 주민들에 따라서는 도당굿, 도당고사, 도당제 등의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제당의 명칭은 당고사가 행해지는 마을 뒷산이라 뜻으로 당산재라 부른다. 당산재에는 매년 짚으로 이엉을 덧씌워 크기가 집채만 해진 터주가리가 두 개가 있다. 이 마을에서 모시는 동신의 신체다. 오른쪽이 도당할아버지고, 왼쪽이 도당할머니다. 그 아래쪽에는 산신제를 드리는 아랫당 고사터에 있다. 아랫당은 수령 150년 정도 소나무를 신목으로 삼고 있고, 그 앞에 터주가리를 매해 엮어 세워 둔다.
이 마을 제의의 유래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제의의 목적은 축원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축원을 할 때 여느 동제처럼 마을의 평안, 재앙 예방, 집집 평안, 부귀공명, 자손 번창 등을 기원한다.
제의는 매년 음력 7월 초하루에 오전, 오후 두 차례 지낸다. 예전에는 10월 초에 도당굿을 했다. 7월에 제의를 지내는 것은 이때가 바쁜 농사일이 지난 한가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만약 부정이 생기면 제의를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부정을 피하기 쉬운 초하루로 날을 정했다. 정기적으로 장(場)이 열릴 때에는 장에서 제의에 필요한 각종 제물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7월 2일에 당고사를 지냈다. 장이 7월 초하루에 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업이 발달하며 특별히 장에서 물건을 사오지 않아도 되면서 제의 날짜를 초하루로 바꾸어 정했다. 당고사로 바꾸고 나서도 4년에 한 번 정도는 도당굿을 했다.
# 제의의 과정
제의는 오전 피고사(산고사)와 오후 당고사의 두 과정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피고사는 아침 식사 후 오전 10시경에 마을 어른이 제주가 돼 유교식 의례로 지내고, 당고사는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해지기 전인 5~6시경에 무녀의 주관으로 진행된다. 당고사는 도당굿을 간소화한 형태의 의례다.
제의를 주관하는 제관으로 당주 1명과 화주(화부) 2~3명을 선정하는데, 당주는 돈, 쌀 등을 걷고 제 음식을 장만한다. 화부는 일당을 받으며 제물로 쓰일 소를 잡고 피를 끓여 선짓국을 장만하고 소머리를 손질 하는 일을 한다. 당주는 60세 이상의 남자 중에서 연령별로 순서대로 돌아가며 하는데, 부인이 있어야 하고 부정이 없어야 한다.
부정이 없다 함은 아프지도 않고, 집안에 우환이 없고, 출산을 했거나, 초상과 같은 일이 없는 것을 말한다. 해당자가 그해 부정이 있으면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한 번 빠지면 당주 하기가 어렵다. 당주의 선정은 보름 전에 이루어지는데, 당주가 되면 외지 출타가 금지되고, 그 집에는 금줄을 걸고, 대문 양쪽에 황토를 펴 둔다. 당주는 항상 깨끗함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화부는 젊은 사람이나 소를 잡고 고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 선정한다. 축산물가공법이 시행되며 도살장에서 소를 잡아오면서부터는 화부의 일은 선짓국을 끓이고, 소머리를 손질하고 삶아 내는 정도이나, 이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어서 일당을 주어도 화부를 거부하고 있다.
제사 비용은 소 값과 기타 경비를 미리 산정해 참여 세대가 똑같이 나누어 낸다. 부정한 집은 참여하지 않는다. 제사 때에 소 한 마리를 잡아 그 고기를 똑같이 나누어 먹고 해당하는 돈을 내야 하는데, 적은 액수가 아니다. 보통 150여 가구 중에서 120여 호 정도가 참여했다. 제사 비용은 소 값에 따라 달라진다. 1994년에는 무게 520kg의 소를 한 근에 6천100원씩 해서 317만2천 원에 사고 도살비와 운반비(20만1천 원), 화부 일당(15만 원), 제물구입비 및 잡비(17만4천600원), 무녀비(10만 원) 등 총비용이 379만7천600원이 들었다.
이해에는 가구당 3만 원을 냈다. 참여 가구는 122호였다. 1996년에는 무게 560kg의 소를 한 근에 5천500원씩 해서 308만 원에 샀다. 가구당 추렴비는 3만 원, 참여 가구는 108호였다. 제사 비용 중에서 소 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요즘에는 소의 중량이 보통 700kg 이상이 돼 적당한 소를 고르기도 쉽지 않다. 마을 사람들은 고깃값으로만 따진다면 시장에서 사다 먹는 것이 더 싸지만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고 정성이기 때문에 불만 없이 참여한다.
제물로 쓸 소는 장에 가서 미리 사다 외양간에 모셔 놓았다. 소는 반드시 빛깔이 빨간 황소여야 한다. 사 온 소는 일을 시키면 안 되고, 소를 사다 두었는데 부정이 생기면 되팔고 다른 소를 사와야 한다. 언젠가
제사 소를 누군가가 몰래 일을 시켰는데 소가 바위에 얼굴을 부딪쳐 눈이 멀어 다시 사 온 일이 있었다. 잡은 소의 갈빗살을 한 근 정도 베어내 따로 두었다가 삶아 제사상에 올린다. 이를 ‘새치’라 한다. 소머리는 잘 손질해 푹 삶아서 제물로 사용한다. 소머리는 통으로 쓰지 않고 살이 허물어질 정도로 삶아 제물로 쓴다. 선지를 따로 분리해 내장과 함께 선짓국을 끓인다.
제의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조라(제주)다. 조라는 당주 부부가 고사 전날 새벽에 당우물에서 목욕을 하고 당우물 물로 누룩과 밥을 버무려 빚는다. 조라 항아리는 당나무 앞에 묻고 그 위에 터주가리를 세운다. 다음 날 당주 부인이 걸러 제주로 사용한다. 그 외에 제물로는 과일, 다시마, 부침, 팥 시루떡 등이다, 밥은 진설하지 않는다.
제의 날에는 우물이 있는 집은 아침 일찍 우물을 깨끗이 청소한다. 화부는 선짓국을 끓이고 소머리를 손질한다. 한쪽에서는 고기를 부위별로 손질해 제의 참여 가구 수에 맞게 나눈다. 거의 10시 정도가 되면 소일이 끝나고, 이 일이 끝날 때쯤 당주 부부가 제 음식을 가지고 오면 산고사(피고사)를 지낸다.
# 당고사와 결산
산고사가 끝나면 주민들이 모여 선짓국을 나눠 먹고, 소다리나 꼬리, 기타 뼈와 같이 나누기 어려운 부위들을 경매한다. 경매로 들어오는 돈은 제사 비용에 보탠다. 경매가 끝나면 나눈 고기를 가지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아침에 청소한 우물의 새로 고인 물로 쌀밥을 짓고, 고깃국을 끓여 이른 저녁을 먹는다. 제삿날은 쌀밥을 먹는 몇 안 되는 날 중의 하루고, 고깃국을 가장 푸짐하게 먹는 날이었다. 시집간 딸이나, 출타 중인 마을 사람이 모두 모여 배불리 먹었다.
오후에는 다시 당으로 모여 도당할머니와 도당할아버지 터주가리 앞에 미리 준비해 놓은 소머리와 새치(갈빗살) 등의 제물을 차려놓고 무녀의 주관 아래 당고사를 드린다. 제의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면 결산을 한다. 남은 돈을 보관했다가 다음 당주에게 인계해 다음해의 제의에 사용한다.
예전에는 당고사를 엄격히 해 당산의 나무는 건드리지 않았고 당산 밑으로는 집도 짓지 못했다. 제의 날은 일하지 않고 쉬었으며 외출도 삼갔다. 직장이 있는 사람은 일찍 퇴근했다.
<※ 자료제공=인천시 역사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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