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 서화가 모임 '한길회'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11-26 22:21:16
5개도시 순회 작품전시 시계·도계 허물며 예술교류 이끌어
인천·경기 서화가 모임 '한길회'
흔적들 20- 길에서 묻다
"한 번 간 곳을 또 가고 또 보는 것이야 말로 여행의 묘"이라고 했던 여행 전문가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개항장 일대의 산책로는 늘 보아도, 걸어도 낯섦을 느껴 좋다. 하얗게 서린 빛의 안개가 잠시 머물다 사라지며 고요가 밀리는 아침 아니면 저녁나절 한없이 고졸한 맛을 지니고 있어 더욱 좋다.
11월의 찬 것 처럼 시원한 공기를 발길을 당기며 공원에 올라 보이는 항구의 앞 바다는 눈에 꽉 찬다. 저혈당에 시달리는 자에게 초콜릿 한 조각은 포도당을 보충한 것처럼 머리가 맑아지는, 약발 받는 느낌의 내려다 보는 풍광은 그래서 좋은가 보다. 한편으론 산문(山門)은 속계(俗界)와 승계(僧界)의 경계라고 하지만 이 응봉산은 영욕과 투쟁의 경계였고 살고자하는 몸부림의 경계인바 내려다 보이는 항구는 생사의 유전(流轉)을 바라다 보는 고충이기도 하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가슴속에서 영생을 살아 있으니 다행인가 싶다.
몇 몇의 촌로들도 가고 없는, 기러기 울어 예는 구만리 하늘에는 물감 흐른 자국이 있고 글 귀가 날아다니며 수다스럽지도, 완벽하지도 않은 촌로 나름대로 우직하게 천착해 온 '소외'와 '실존'의 주제만 있구나. '듣고 있다면 내가 이득을 얻고,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는 산책로에서 들려주던 '들을' 청(聽)자의 풀이도. 그러나 귀를 열고 있어도 소용없는 일.
1990년도 참으로 고민스러운 제안으로, 받아들이기엔 껄끄럽고, 물리치자니 죄송한 일이 있었다.
한 분 생존해 계신 옥계 오석환 선생의 이야기며 작고하신 소암 이재호 선생의 말인즉, 성화대학(현 선문대) 이사장 문선명씨의 칠순에 전국 서화인(書畵人) 초대전을 여니 참여해 보자는 말이었다.
세계평화교수협의회 회장인 이항녕씨(홍익대 총장역임)가 직·간접으로 참여하며 정치, 사회계에 저명인사가 함께하는 초대전이라는 말의 앞 장식을 달며 독려했던 기억, 난감 할 수 밖에 없었다.
진리로 가는 길을 찾아내는 탁월한 통찰력이 담긴 감로법문이라고 해야 할까. 촌로들의 중지를 모은 답변은 우문현답 이었을까. 의외로 참여한들 어쩌랴하는 말이 노장의 풍모에서 훈향(薰香)이 느껴질 뿐, 덧붙일 말이 없었다. 바로 경계를 허무는 미소로 화답하여 참여하게 된 그 전시는 참으로 기가 찼다.
역시 돈으로 해결하는 면도 면이지만 지금껏 이렇게 큰 전시는 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리틀엔젤스예술회관 하면 그 당시 오페라하우스의 위용을 가진 회관으로 그 부(富)에도 놀라웠지만 로비에 꽉 찬 전시작품이야 말로 장관이었다.
옥계 오석환, 소암 이재호를 비롯하여 김규창, 이의재, 김학균, 노희정, 박영동, 양의석, 임종각 등 20여명의 인천 미술인들과, 미국, 일본, 중국, 독일, 영국, 프랑스를 포함한 전국 600여점의 작품이 장르를 초월하여 모이게 된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2월1일부터 시작하여 일주일 동안 치러진 전시의 첫 날 주최측에서 준 선물(?)을 받아들고 내려오던 전철속의 나는 나를 잃어버린, 정체성 없는 놈이 아니었나 생각 되었다.
천안의 선문대학 박물관에 있는 그 그림도 한 생각속에 들어 있는 세계를 보라며 질책하고 있겠구나.
세월은 흐르며 고해보벌(苦海寶筏)이랄까. 고통의 바다를 건너가는 배의 역할을 하며 거듭 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가 보다.
경기 일원(인천, 부천, 수원, 안양, 광명)의 예술인들이 의기투합하여 뭉친 '한길회'는 그대로 '한길'을 가는 동행인들을 전시장에 모이게 하였다. 누구의 발의랄 것도 없이 85년에 시작된 한길전(展)은 5개 도시를 순회하며 동의상생(同意相生)하였다.
91년 2월은 부천시 홍보관(부천역지하)개관에 맞추어 부천시에서 초대전을 열었던 것이다. 그 횟수 차가 6회전으로 일찍이 경기 일원의 서화가들이 모인 것은 한길회를 기점으로 다시 생겨나지 못하고 추억속의 이야기로 장식되어 아쉽기 그지 없지만 참으로 따뜻한 일이었다. 부천의 강선구, 장정웅, 이상덕, 안양의 오용길 수원의 이길범, 이수덕, 평택의 조성락 등 중진의 동·서양 화가들 그리고 인천의 노희정, 김재은, 강난주, 김영문, 박영동, 오영애, 김학균, 김규창 등 각 장르의 예술인들이 참여해 시계와 도계를 허물며 예술교류 시대를 만들어 갔었다.
'자연은 퇴화 했으면 했지, 발전은 없다'고 했던가. 그 불같은 정신에 감나무처럼 접을 붙이지 못해서 일까. 자연속에 묻혀 있는 예술이어서 일까. 지속하지 못하고 끊긴 한길회를 생각하면 참으로 따뜻한 옛날이 그립다. 말하면 다시 올까. 아! 옛날이여!
김학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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