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동인 '소통의 창' 열리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12-11 11:43:50
여성동인 '소통의 창' 열리다
흐르고싶은 인천- 길에서 묻다 흔적들 22
1990년 '인천여류문학' 발족 … 1년뒤 창간호 출판
인천여류문학 창간호 출판기념회가 지난 1991년 6월10일 오림포스호
텔(현 파라다이스 오림포스호텔) 8층에서 열렸다.
소통의 공간 길에서 바라다 보이는 '쇼 윈도우'의 안쪽에는 따스함은 있으나 단절된 공간이라고 낯설게 보여 질 수가 있는 반면 안에서 바깥쪽을 보면 쓸쓸함 보다는 무언가 통할 수 있는 오고 감이 있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계절에 따라 느낌의 차이는 있겠지만 황량하게 바람이 몰고 가는 계절이 아니라면 더욱더 그러한것 같다. 도시속에서 보이는 창 그것은 소통이 될 수 없는 그저 팔고 사는 상행위를 위한 창에 불과 한 것. 그래서 마네킹은 변함없이, 표정없이 그저 바라만 볼 뿐 스쳐가는 바람만도 못한 것.
'창(窓)은 진정한 의미로서 소통의 길이다. 그러나 창이 닫혀 있다면 단절이요 절망이다. 해서 창은 들고 나는 것 이외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너와 나 마음의 창을 서로 넘나들면 깊은 신뢰와 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창은 분명 건축 구조물로 풀이되는 기능이지만 사람의 정신세계 깊숙이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시(詩)속에서 응용된 일례로는 일제하 1934년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에서 잘 나타나 있다. 동토의 땅에서 변절하지 않고 조국 광복을 꿈꾸는 농부의 마음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 처럼.
창은 이처럼 세상을 담는 그릇이요 공간이기도 하다.
작은 것을 꿈꾸며 크게 번성하리라 믿으며 내는 창, 그 창을 내기 위하여 고심하며 고군분투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바로 예술가들이 내는 창이란 무엇일까. 소통을 위하고 좀 더 나은 세계(작품)관을 갖고자 만들고 허물어지는 모임, 다시 말하자면 미술에서 말 하는 그룹전이고 문학판에서 말하는 동인들이다.
지역 문화예술의 터에서 지역의 발전적 논리를 가지고 태동되는 동인회를 조직한다는 것이 바로 창을 낸다는 것과 같은, 정신적인 창이다.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공간을 달려오며 우리는 참으로 많은 창을 만들고 닫고 했었다. 선대들은 그들대로 촌로들은 촌로들대로 만들며 소멸하고 우리들은 우리대로 만들며 물려주며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이 땅(지역)의 예술을 키워왔던 것이다.
관이나 제도적인 기관의 공모전이나 등용의 문을 거부한 채 내심을 키워가기 위한 몸부림이 오늘의 밑거름이었다면 누가 부정할 것인가.
부지런한 60년과 70년을 거쳐 중흥의 전환적 계기로 평가되던 80년대, 그리고 정착의 90년대 까지 국내외적 변환기를 잊은 채 올곧게 달려온 숨가쁜 세월, 이제는 결실의 2000년 대라면 무엇이 우리의 손에 남아있는 걸까.
산고의 진통 뒤 몸조리 없이 창간된 '학산문학'과 17년 터울을 결실의 세월로 가져온 '작가들'이 순수문학지로서 공기와 햇빛 통로이상의 의미를 담고있는 창으로 살고 있음이 남은 것이라면 남아 있고나.
하루의 일상이 시작되는 아침나절, 창을 먼저 여는 사람이라면 여정네다. 그러나 문학의 창을 열고자 했던 그네들이 조금 늦게 창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된다. 예나 지금도 몇몇 여류들이 혼성 동인 모임에는 참여하고 있으나 명실상부한 여류들만의 문학모임 말이다.
1990년 발족한 '인천여류문학'모임은 1년 여를 준비기간으로 둔 뒤 그 이듬해 6월 인천에서 여류들만의 동인들로서 탄생에 이르니 늦은 감은 있으나 속 멋이 우러나는 일이었다.
사회구조에 발 맞추고 생활경제의 여유가 생긴데서 오는 원인도 있겠지만 한 독자층을 이루는데 기여하는 여성들만이 아니라 생산자의 입장에서 문학을 향유코자 하는 열망이 '발표지' 까지를 낳게 된 것이다.
한순홍, 홍명희, 변해명, 신미자, 김의순, 최임순 등 다 장르에서 인천을 대표하는 여류들로 구성된 '인천여류문학동인'은 회장(후로 10년동안)으로 수필가 이숙씨가 맡아 일구었다.
창간호가 나오던 6월 어느날 오림포스호텔(현 파라다이스 호텔)에 모인 여류들과 문단 관계자 그리고 친지들로 만장을 이룬 기념식장은 문학인들로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문인들도 이제 호텔에서 가진들 어떠랴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던 행사로, 지원금 없이 발간된 책자이었지만 후원자들의 십시일반이 참으로 좋은 기억이다.
그렇게 일군 참으로 훈훈하고 안락함으로 받아들여진 일, 그러나 '여성의 문학'으로 바뀐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성한 유리를 깬다는 이론, 사회학자 조지 케링과 제임스윌슨의 주장이다. 제발 깨져 있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마음 나만의 염원이 아닐 것이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남쪽으로 낸 창으로 쏟아져 오는 햇살속, 귀글과 줄글이 웃고 있네요.
/ 김학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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