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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합창음악’의 도시 인천

by 형과니 2023. 5. 18.

합창음악의 도시 인천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12-19 23:09:44

 

합창음악의 도시 인천 메시아 초연, 오늘까지 이어져

 

눈이 내리면 대도시의 차가운 콘크리트 정글에서는 추억의 소리들이 되살아난다. 아이들의 환호 소리, 먼 동네의 개 짖는 소리, 자동차의 경적 소리, 부둣가 외항선의 뱃고동 소리 그리고 늦은 밤 교회의 은은한 종소리 등 온갖 소리들이 비로소 눈과 함께 축복처럼 머리맡에 다가오는 것이다. 그 절정은 아무래도 크리스마스이브에 듣는 성가대의 합창소리다.

 

·조우성 시인ㆍ인천시 시사편찬위원

 

세상이 아무리 곤고롭다고 해도 인간사 희로애락이 한낱 바람에 날리는 쌀겨와 같음을 느끼게 하는 성가대의 맑고 청아한 노랫소리는 지상 최고의 화음이다.

 

그 평화의 화음이 이 땅에 처음 울려 퍼진 것은 18857월이었다. 그해 부활절 오후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한 아펜젤러 목사 부처는 갑신정변 등 혼란한 분위기 때문에 1주일여를 대불(大佛)호텔에 머물다가 일본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620일 재입항한 아펜젤러 부처는 역시 사정이 좋지 않아 현 내리교회 주변에 세를 내어 머물러야 했다. 장마철이 되자 빗물이 줄줄 새는 등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중 77일 일본에서 부친 풍금(風琴)이 증기선 편으로 도착했다.

 

그날은 인천 현대 음악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아펜젤러 목사의 부인 엘라 여사가 친구 리찌 이글리에게 보낸 편지에 풍금이 방금 도착했는데, 다 괜찮아. 1시간 동안 헤리(아펜젤러의 별칭)만복 근원 주 하나님!’이라는 찬송 등을 연주해 봉헌했단다. 한국 상공에 울려 퍼진 최초의 감리교 찬송이었지.”라는 글을 남겼던 것이다.

 

이는 이 땅 제물포 최초의 풍금 연주를 알리는 대목이었던 것이다. 20여 일 뒤인 729일 아펜젤러는 서울 정동에 거처를 마련해 상경했지만 전후 45일간의 거류 기간은 제물포에 선교의 씨앗을 뿌린 귀중한 시간이었다.

 

상경 후에도 아펜젤러는 올링거와 노병일을 파송하는 등 제물포 선교에 큰 관심을 쏟았고, 마침내는 자신이 담임 목사로 부임해 내리예배당을 짓고 적극적인 선교 활동을 벌였는데, 그것들은 인천의 교육, 문화예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음악 분야는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그 무렵 인천 읍내에 몇몇 서당이 있었다고 전해지고는 있으나 신식 음악을 서당에서 가르친 예가 없던 것으로 보아 영화학당에서 가르친 창가와 예배당에서 불렀던 찬송가는 민요나 판소리, 시조창 등에 익숙해 있던 이들에게는 그 자체가 경이로운 문화 체험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더불어 담방리, 부평, 강화 등지로 교세를 확장해 갈수록 찬송가도 함께 파급됐을 것은 번연한 일이고, 교회마다 성가대가 조직되면서 보다 전문화된 음악 지식이 보급되면서 인천은 그 어느 지역보다도 근대적 음악 지식을 보편적으로 향유할 수 있게 됐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천은 서양음악의 세례를 받은 근대적 음악의 도시였고, 일찍이 인천공회당 등을 통해 음악 예술 행위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한국음악협회 초대 회장을 지낸 성악가 이유선(李宥善),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전공한 박흥성(朴興成), 한국농아악단을 창설했던 김흥산(金興山), 작곡가 김기현(金基鉉), 최순룡(崔順龍), 성악가 원종철(元鐘哲), 바이올리스트 박종성(朴鐘聲), 피아니스트 최성진(崔星鎭), 장보원(張寶媛) 등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인천공회당과 내리예배당은 한동안 음악 공연장으로 유명했다고 전한다. 일본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돌아온 원종철의 첫 무대가 인천공회당이요, 6·25전쟁 직후인 1954년 우리나라 음악사상 최초로 헨델의 메시아 전곡을 연주한 곳 또한 내리예배당인 것이다.

 

내리교회에서 성가 대원 이선환의 전곡 사보(寫譜)와 작곡가 최영섭의 지휘로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국내 초연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인천 음악계의 앞날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52년 인천 최초로 발족한 인천시합창단 단원의 주축이 내리교회 성가대 대원이었고, 합창단 지휘 역시 국민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자로 유명한 최영섭이 맡았던 것이다. 오늘날 인천이 합창 음악의 도시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고, 지휘자 윤학원이 이끄는 인천시립합창단이 국내외서 눈부신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은 내리교회가 뿌린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그 옛날의 아름다운 하모니가 들려올 듯 싶은 인천남성합창단, 샤론합창단, 대한어머니합창단, 호산나합창단, 로고스합창단, 노엘합창단, 그리고 교파를 초월해 합창으로 활동을 해 온 인천장로성가단 등은 인천 합창의 면모를 일신케 한 모태들이었고, 지금도 여성문화회관합창단, 와이즈맨합창단, YWCA합창단과 구립합창단 등의 활기찬 연주 활동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올 첫눈이 내린 지도 벌써 달포가 가까워 온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오면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위시해 각급 합창단들의 아름다운 코러스가 밤하늘에 울려 퍼지고, 눈꽃 축포가 펑펑 터져 내려 지상을 순결과 정화와 평화의 손길로 훈훈하게 장식해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