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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흐르고싶은 인천

by 형과니 2023. 5. 18.

흐르고싶은 인천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12-30 12:26:32

 

인간이 만든 또다른 자연 '도시'

흐르고싶은 인천- 길에서 묻다 흔적들 25

 

김학균 · 시인

 

인천 건축물 중 보존상태가 양호한 닛센(日鮮) 빌딩. 1924년 건축, 현 선광공사

겨울의 도시는 온 몸을 드러내놓고 있다. 슬픈 모양으로 외롭다. 눈이 녹아 흐르는 낙수는 한 모퉁이 조각달로 흐르며. 늙은 어머니의 빈 젖이다. 마르고 쪼글쪼글한 가슴이다. 웃는 얼굴은 본지 오랜 것처럼 윤기마저 없다. 몸 푼 기억이 아득다.

 

겨울의 도시는 웅숭깊다. 속으로 흐르며 하늘을 이고 있다. 산그늘도 새소리 바람소리도 안으로 담고 잠을 잔다.

 

도시(都市) 아닌 도시(濤詩)를 꿈꾸며 길은 잠을 잔다.

 

도시는 인류가 이룬 가장 훌륭한 업적이다. 유구만 남은 폐허의 도시, 현대의 도시도 그렇다. 인간과 인간이 이룬 사회는 어떤 것인가를 가장 극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해 기억되고 길이 이어갈 정신과 물질의 성취가 많지만 도시는 개인에 의존한 흔적이 아니라 사회성을 근간으로 한 집합의 흔적 그 자체다. 성장과 퇴화를 반복하는 거대한 인간이 만든 유기체, 어찌보면 또 다른 자연임에 틀림이 없다.

 

개항장 일대도 그러하지만 남한팔도 어느 도시를 가 봐도 수백년의 역사적 흔적과 새로운 신생도시의 공학적 방법이 충돌한 예는 참으로 많으며 비관적 이기까지도 하다.

 

도시의 매력이 상실되어가는 엇 비슷한 투정으로 표현되고 오래된 도시와 급조된 신생도시는 분명한 다름을 가지고 있는데도 새 도시 만들기에 치중한 나머지 후유증이 속속 곁에 와 있다.

 

새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손 때묻은 물건을 애지중지 하듯 사고의 전환, 바로 '신도시 만들기''헌도시 고치기'로 전환하여야 할 것이다.

 

도시에서 길이라 하면 다정하고 도로라고 칭하면 썰렁하다. 호칭의 문제보다도 쓰임의 문제로서 길의 주제는 사람이다. 차량의 주제가 된 길은 유령의 길이며 사람이 빠진 건축과 도시는 유령이다.

 

사람이 걷는 길에는 평화가 있다. 하여 사람의,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길을 만드는 것이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데 으뜸이다.

 

도시속 사통오달 할 수 없는 길이 없으면 공공녹지, 박물관과 쉼터가 많아도 액자속의 풍경일뿐 아무 소용이 없다.

 

길가에 면한 건축물은 사유이지만 그 기능은 공적인 것이다. 바로 도시가 열려있고 문()은 도시를 향해 열리고 뒹굴며 머무르고 싶어지는 곳, 그곳이 차마 내 뼈를 묻고 죽고 싶은 도시, 번잡과 혼돈까지도 녹일 수 있는 시()가 넘치는 사람의 힘, 그런 도시를 우리는 원한다.

 

하이데거가 시()짓기를 집짓기로 풀이 한 것처럼 '고유한 것' '본래적인 것'으로 OIKEIOS.

 

한국건축의 계통을 논한다면 3대 건축중 인도계와 회교계를 뺀 중국계로 한민 고유의 창작이라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특징적으로 두드러지는 것은 지붕의 곡선이 중국보단 완만하고 일본 보다도 굴곡이 있어보이는 향토색이 짙은 것이다.

 

한국의 건축과 환경의 관계를 보면 왕조의 영향으로 천연의 경승지를 향하여 지어졌다. 서울은 북한산을 등지고 한강을 앞자락에 띄워 그 분지를 이용 민()이 살았다. 송도, 평양, 경주도 그랬다.

 

과거의 택리법(擇理法)과 근대의 도시계획의 반대되는 현상으로 빈민은 산위에 게딱지 집을 짓고 산상(山上)에서 산하(山下)를 조소하였으나 현재는 부자가 산상에서 산하를 희롱하니 개항장 시대의 인천도 일찍이 응봉산을 뒤에 업고 조계지 산상(山上) 산하의 문제를 빗겨 갈 수 없다.

 

다른 지방에 비하여 눈뜸이 늦었다싶은 인천 건축을 말하자면 건축공학을 일본 유학에서 배운 영종도 출신의 김종식(金鍾植)과 김충국(金忠國)이다.

 

해방직후 해방기념탑을 설계하여 공업한국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걸작으로 시립박물관에 전시되었던 작품, 허나 작가 김종국은 동란년도에 작고하고 말았다.

 

1966년 창립되어 예총경기지부 산하단체 등록을 하게 된 경기건축가협회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창의적인 나름대로의 행사도 진행하지 못한 단체로 아쉬웠다.

 

협회의 주동적인 인물로는 현재 인천을 지키고 있는, 문수일, 채수헌 등으로 건축계에서 은퇴(?)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형편이다. (협회는 93년도에 해산)

 

몇몇 회원들의 경기미전 건축분야에서 입상한 전적을 빼고는 이렇다 할 실적없음이 90년에 와서는 건축공모전을 독자적으로 치를 여력이 없어 명목상의 조직만을 갖는 단체로 모든 것이 중단된 상태였었다.

 

65년 창립하여 81년 인천건축가협회를 거쳐 93년까지 27년의 세월동안 해적이(예총 50년사)를 보면 그 쪽수가 18쪽뿐 참으로 부끄럽다. 근자에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건축의 젊은 영재들이 속속 문헌을 통하여 등장함이 위안이면 위안일까.

 

'선배보다 나은 후배없다'는 말이 무색해지길 원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