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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의 인천이야기

배다리 헌책방 골목

by 형과니 2023. 5. 21.

배다리 헌책방 골목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2-23 22:22:37

 

구시가 연결통로 인천의 청계천

 

(7) 배다리 헌책방 골목

 

사진 속에 보이는 곳은 배다리 철로문다리를 막 벗어나 동구 창영동, 금곡동으로 들어서는 초입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그 옛날 배다리 창영동파출소 부근쯤에 서 있는 것이다. 영어 ‘C’ 자를 거꾸로 놓은 듯한, 완만한 커브길 저 끝에서 왼쪽이 금곡동 방향이고, 우측이 소위 인천의 명물 헌책방 거리로 통한다.

 

옛날의 헌책방 거리는 인천양조장을 지나고, 창영당아이스케키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서 맞은편, 사이클 선수 김호진의 자전거포, 그리고 창영학교 맞은편 철도차단기가 설치된 샛길에 이르러서야 끝났다. 거기서 내처 올라서는 길이 쇠뿔고개. 그 길로 영화학교, 기독교문화회관, 동인천세무서를 지나 황굴고개 구름다리에 다다른다.

 

인천은 전후(戰後)의 복구와 함께 인구가 팽창하면서 시가지가 차츰 도원동, 숭의동, 도화동으로 벋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동인천역에서 물산회사 길(참외전거리)을 거쳐 배다리, 그리고 황굴고개에 이르는 대로는 시의 중심지인 중구, 동구와 이들 외곽 지역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가 된 것이다.

 

창영학교 앞길에서 배다리를 지나 중앙시장으로 연결되는 이 헌책방 길은 이를테면 그 대로(大路)의 이면도로(裏面道路)인데 역시 인천에서 가장 요긴한 교통 루트 구실을 했다. 이 길도 쇠뿔고개를 거쳐 마찬가지로 도원동, 숭의동, 도화동과 구시가를 연결했다. 이 길 중간, 영화학교 바로 못미처쯤에 뚫린, 철도차단기가 있던 샛길은 도원동 대로와 만나는 통로였다. 이 이면도로는 매우 활기찬 길이었다.

 

특히 이 두 길 양쪽과 중앙시장, 사라진 배다리시장은 인천 사람들이 입을 옷가지는 물론 각종 일용잡화, 생필품, 곡식과 과일, 채소, 농사용 종묘(種苗) 따위, 그리고 목제품, 죽세공품, 널판, 유리, 지붕 함석 같은 가구, 건축 자재의 집산지(集散地) 노릇을 했다. 말하자면 이곳은 인천 서민 경제의 한 중심축으로 중구의 신포동이나 경동 못지않은 번화가였다.”

 

이 역시 두어 해 전, 어느 지면에 썼던 글이다. 그랬다. 휴전이 되고 1950년대 후반을 지나 특히 1960년대 이르면서 이곳은 아연 번화가가 되는 것이다. 당시 여기 배다리와 헌 책방거리를 거쳐 가는 하루 통행자 수는, 좀 과장해서 아마 인천 인구의 삼분의 일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배다리, 헌 책방거리! 입속으로 한번 발음해 보라. 설혹 그 지명 연유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마냥 친근하고 태어날 때부터 들어 아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 지명들은 인천 사람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표상(表象)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니, 표상이라는 말보다는 차라리 인천인의 심정(心情) 그 자체, 인천 사람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해서 이런 제안을 해 본다. 이곳은 좀 다른 재개발을 해 보자. 현재의 낮고, 낡고, 어설프고, 모자란 듯한 건물들, 구조물, 전신주 등속을 고스란히, 절대 부수지 말고 그대로 두고, 모조리 형형색색의 채색을 입혀 한번 별천지 환상의 헌책방 거리를 만들어 보는 것! 정말 새로운 인천이 되지 않을까.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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