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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의 인천이야기

연안부두 어시장

by 형과니 2023. 5. 20.

연안부두 어시장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2-19 14:41:38

 

흥정소리·비린내 잔잔한 소란

(6) 연안부두 어시장

 

외관은 그저 무뚝뚝하고 남루해서 얼핏 도시 변두리 어느 차부(車部) 옆의 상가 창고 건물처럼 어두운 인상을 준다.

 

하인천역 뒤에서 이리로 온 때가 1970년대 중반쯤이니 이미 낡기도 낡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아무렇게나 발라 세우기만 하면 된다는 시멘트 문화 속성이다.

 

기왕 건물을 지을 때, 하다못해 눈에 보이는 데라도 좀 건축미를 살려 모양을 냈더라면 이 어시장 건물이 연안부두의 명물이면서, 인천의 명물이면서, 세상에 대해 인천의 고향으로 인식되었을 터인데, 그만 아쉽게도 우중충한 시멘트 창고 개념을 벗어나지 못했다.

 

양풍(洋風)이라도 좋고 동화 속 용궁 모양이라도 좋을 그럴 듯한 어시장 건물 내부에는 온갖 바다 생물들과 걱실걱실한 어부들과 바다 여인들이 집결해 있다! 더불어 거기에 한 두 가지 시민 편익시설까지 갖추었다면! 그랬더라면 아마 인천 최고의 관광 명물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물론 여기가 바람도 인정(人情)도 억세기만 한 부두이니 더 빨리 짜디짠 세월의 때가 옮고, 낡은 손자국이 남아야 하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차라리 더 빨리 색이 바래고 낡아져서 한 편의 시()가 되어야만 한다. 그렇더라도 오늘의 풍경은 너무 을씨년스럽다. 그래도 시장 안만은 고스란히 한 편의 시로 남아 있다. 이른 아침부터 철벅거리는 물소리와 흥정하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가 어우러져 일어나는 잔잔한 소란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소리, 가장 생기 있는 음악, 가장 풋풋한 발성이 웅성웅성하면서도 나지막하게 차 있다.

 

어느 날 삶이 무엇인지 답답하고 막막하게 느껴지거든 여기 와서 보라. 바다와 생선들을 살펴보라. 그래서 벌써 전에 이런 시를 쓴 사람도 있다.

 

궤짝 속에 길게 누운 갈치 떼들 보러/ 어시장에 나간다./ 갈치 떼들은 죽은 것인지 눈 뜨고 잠든 것인지/ 초점 없는 눈으로 명상에 잠긴 것인지/ 도무지 깨어날 기척이 없다./ 벌린 입으로 낄낄낄 웃음을 흘릴 것 같은데// 이승에서 마지막 화사하게 /은분(銀粉)칠 화장을 한 미끈한 몸뚱이의 갈치 떼들./ 쭈그리고 할 일 없이 살아 있는 나보다/ 아주 싱싱한 비린내를 풍긴다./ <후략> ‘할 일 없는 날의 어시장魚市場 기행중에서

 

여기에 이상한 열대열매처럼 울퉁불퉁한 멍게들, 풍선처럼 배를 불룩 내민 복어, 광어, 조기, 우럭, 홍어, 고등어, , 오징어 떼들이 내는 목소리들을 만나보라. 당신의 가슴에 남아 있던 회한도 슬픔도 금세 시원한 물소리를 낼 터이니.

 

우리 연안부두 어시장이 왜 부산 자갈치시장 만큼, 여수 어시장 만큼 유명해지지 않을 수 있으랴. 유명해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 모두가 이곳으로 눈을 돌리면.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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