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부두 어시장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2-19 14:41:38
흥정소리·비린내 ‘잔잔한 소란’
(6) 연안부두 어시장
외관은 그저 무뚝뚝하고 남루해서 얼핏 도시 변두리 어느 차부(車部) 옆의 상가 창고 건물처럼 어두운 인상을 준다.
하인천역 뒤에서 이리로 온 때가 1970년대 중반쯤이니 이미 낡기도 낡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아무렇게나 발라 세우기만 하면 된다는 시멘트 문화 속성이다.
기왕 건물을 지을 때, 하다못해 눈에 보이는 데라도 좀 건축미를 살려 모양을 냈더라면 이 어시장 건물이 연안부두의 명물이면서, 인천의 명물이면서, 세상에 대해 ‘인천의 고향’으로 인식되었을 터인데, 그만 아쉽게도 우중충한 시멘트 창고 개념을 벗어나지 못했다.
양풍(洋風)이라도 좋고 동화 속 용궁 모양이라도 좋을 그럴 듯한 어시장 건물 내부에는 온갖 바다 생물들과 걱실걱실한 어부들과 바다 여인들이 집결해 있다! 더불어 거기에 한 두 가지 시민 편익시설까지 갖추었다면! 그랬더라면 아마 인천 최고의 관광 명물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물론 여기가 바람도 인정(人情)도 억세기만 한 부두이니 더 빨리 짜디짠 세월의 때가 옮고, 낡은 손자국이 남아야 하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차라리 더 빨리 색이 바래고 낡아져서 한 편의 시(詩)가 되어야만 한다. 그렇더라도 오늘의 풍경은 너무 을씨년스럽다. 그래도 시장 안만은 고스란히 한 편의 시로 남아 있다. 이른 아침부터 철벅거리는 물소리와 흥정하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가 어우러져 일어나는 잔잔한 소란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소리, 가장 생기 있는 음악, 가장 풋풋한 발성이 웅성웅성하면서도 나지막하게 차 있다.
어느 날 삶이 무엇인지 답답하고 막막하게 느껴지거든 여기 와서 보라. 바다와 생선들을 살펴보라. 그래서 벌써 전에 이런 시를 쓴 사람도 있다.
궤짝 속에 길게 누운 갈치 떼들 보러/ 어시장에 나간다./ 갈치 떼들은 죽은 것인지 눈 뜨고 잠든 것인지/ 초점 없는 눈으로 명상에 잠긴 것인지/ 도무지 깨어날 기척이 없다./ 벌린 입으로 낄낄낄 웃음을 흘릴 것 같은데/…/ 이승에서 마지막 화사하게 /은분(銀粉)칠 화장을 한 미끈한 몸뚱이의 갈치 떼들./ 쭈그리고 할 일 없이 살아 있는 나보다/ 아주 싱싱한 비린내를 풍긴다./ <후략> ‘할 일 없는 날의 어시장魚市場 기행’ 중에서
여기에 이상한 열대열매처럼 울퉁불퉁한 멍게들, 풍선처럼 배를 불룩 내민 복어, 광어, 조기, 우럭, 홍어, 고등어, 게, 오징어 떼들이 내는 목소리들을 만나보라. 당신의 가슴에 남아 있던 회한도 슬픔도 금세 시원한 물소리를 낼 터이니.
우리 연안부두 어시장이 왜 부산 자갈치시장 만큼, 여수 어시장 만큼 유명해지지 않을 수 있으랴. 유명해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 모두가 이곳으로 눈을 돌리면….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김윤식의 인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다리 헌책방 골목 (0) | 2023.05.21 |
---|---|
수인역 (0) | 2023.05.21 |
화수부두 (0) | 2023.05.20 |
인천대교 (1) | 2023.05.20 |
청관(淸館)언덕길 (1) | 2023.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