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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사람들의 생각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by 형과니 2023. 5. 23.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9-04-10 11:38:52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T.S 엘리어트, 황무지에서)

누구나 한 번씩은 접해본 듯 한 시다. 엘리어트는 죽은 땅에서 잠든 뿌리로 겨울을 견디고 이렇게 봄은 온다고 했다. 멀리 갈 일도 아니다. 바로 내 옆에도 봄은 오고 있다. 동네 길가에 있는 노란 개나리에도 봄은 오고 활짝 핀 목련에도 봄은 온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보면 동네 야산의 푸르러 가는 산 빛에도 봄은 오고 있다.

그런데 봄은 왔는데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미 와 있는데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는 이 모순된 말이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가능하다. 사람들은 진정한 민주주의 봄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러한 봄은 지금 이 시간에는 우리에겐 사치이고 냉소일 뿐이다.

돌아보면 우리들의 겨울은 참 혹독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죽음과 맞바꾼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 땅의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도 주지 못한 체 다시 꺾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그 겨울은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주었던 그 힘으로, 봄은 반드시 올 것 이라는 벅찬 희망을 간직할 수 있어서 겨울이 더 따뜻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겨울 내내 우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죄책감이 더 맞는 말이다)것은 용산 참사에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다. '한국식 천민자본주의'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건설 자본과 국가 폭력의 저열함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 상징적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람을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자신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면 철저히 짓밟아도 아무런 거리낌 없는 인식이 참으로 두려울 뿐이다. 이렇게 될 지경까지 파괴된 인성(人性)이 존재하는 사회라면, 그것이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지고 스스로 당당하다고 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아니 죽은 사회이다.

청와대가 희대의 살인사건마저도 활용해 용산 참사를 피해가려는 시도가 당장은 무마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의 충격은 지워지지 않으며 양심을 지닌 국민은 괴롭다. 죽어간 생명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명복을 빌어주는 것조차 할 줄 모르는 권력의 소심함과 오만함은 차마 측은해 보인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용산 참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저 소수의 울부짖음으로 가려져 있다.

우리는 역사나 사건에서 교훈을 배운다. 그것이 바로 국가를 운영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그럴 기미가 없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척결의 대상으로 하는 그들의 행위는 더 절망스럽다.

시절이 어수선하다.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쫓겨나고 실업자는 늘어간다. 빈곤의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진다. 언론인이 잡혀가고 방송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다. 남북의 빗장은 더 벽이 되어 버렸다. 토건 국가의 명제는 온갖 산하를 파헤치는 것이기에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 사방팔방 다 막혀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은 사회를 질식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힘으로 힘들어도 온몸으로 민주주의를 만들어 왔던 그 시절이 차라리 그립기도 하다. 그래서 인지 봄보다 겨울이 더 따뜻했다는 시인의 역설이 더 절절해진다.

우리의 봄은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다. 봄의 햇빛이 가난하고 지치고 쓰러져 가는 모든 이에게도 다 비추듯이 우리가 다시 겨울을 이기는 봄이 되어야 한다. 여전히 민주주의는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것이라는 교훈이 오늘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김일회 신부·인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