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 꽃보다 아름다우려면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9-04-14 14:06:08
인천이 꽃보다 아름다우려면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는 계절이다. 아파트의 녹지는 개나리로 물결치고 큰 길가에는 목련이 꽃봉오리를 열었다. 누군가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고 이야기했지만 아무래도 봄은 꽃과 함께 다가오는 모양이다.
봄이라 그런가. 얼마 전 방영이 끝난 <꽃보다 남자>라는 텔레비전 연속극의 열풍이 아직도 불고 있다. 늦은 시간의 지하철은 DMB 전화기로 그 드라마를 보는 젊은이로 넘치기도 했다. 시청한 적 없어 감히 판단할 수 없지만, 어떤 평론가가 그 드라마를 ‘막장’에 비유해 한때 논란이 일었다. 경제 사정을 반영하는지 광고가 전 같지 않아 방송사마다 고전한다던데, 시청률을 높이려는 의도인지 <꽃보다 남자>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일관한다는 혹평이었고, 일부 시청자들이 혹평에 대해 거세게 항의했던 모양이다. 막장이라니, 막장에서 고생하는 이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광부의 항의는 평론가를 머쓱하게 했을지 모르겠다.
<꽃보다 남자>가 높은 인기를 유지하자 시중에 이색적인 유행어가 탄생했다. 주당들은 “꽃보다 소주!”를 선창했고 선술집도 “꽃보다 한잔”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나 “꽃으로도 때리지 말자”라는 말은 있어도 “꽃보다 책”이라는 구절은 어디에도 없는데, 때를 같이해, 공공장소에 ‘꽃보다 인천’이라는 포스터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한데, 어린이를 동원한 그 포스터는 초고층빌딩이 즐비한 신도시를 자랑한다. 그건 자연이 아닌데, 인천이 자랑하는 꽃은 생화가 아니었나. 조화를 아름답다니, 지나친 건 아닐까.
아름다움이라. 그 방면에 문외한이라 설명할 능력은 없지만, 경인전철의 광고판을 다수 점하는 한 성형외과의 광고와 관계없이, 아름다움을 성형으로 제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젊음은 아름답지만 나이든 모습도 아름답다. 생김새와 관계없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찾는다. 성형수술을 한 사실을 감추는 젊은이를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아도 성형수술 여부를 당당하게 밝히는 이의 자세는 아름답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아름다움은 솔직한 모습, 다시 말해 자연스러움에 깃드는 건지 모른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열흘 이상 고운 꽃은 없다는 뜻이지만 시든 꽃은 곧 열매나 씨앗을 맺을 터이므로 여전히 아름답다. 그런데 계속 아름다울 것처럼 꾸민 조화는 시들지 않아도 얼마 안 가 싫증이 나고, 시간이 지나면 먼지가 끼면서 낡아버린다. 물론 열매와 씨앗도 맺지 못한 채. 인공물에 대해 만족하는 기간은 매우 짧은 게 보통이다. 모델하우스에 매료돼 아파트를 계약했어도 정작 입주할 무렵이면 더 근사한 모델하우스가 선보이고, 핸드폰은 할부금을 다 갚기도 전에 디자인과 성능이 향상된 제품이 시장에 쏟아진다. 그래서 그런지, 인공물을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몹시 드물다.
요즘 산천이 아름다운 건 새 생명이 움트기 때문일 것이다. 활짝 핀 진달래에 이어 온갖 봄꽃이 피어오르고 나뭇가지 꼭대기에 앉은 새들이 짝을 찾아 지저귀며 논과 밭에서 파릇파릇한 순이 솟아오를 것이다. 머지않아 가로수에 신록을 선보일 도시도 아름다워질 것이다. 교복을 새로 입은 학생들이 새로 사권 친구와 재재거리고 겨우내 움츠렸던 시민들도 활기차지는 계절이 아닌가. 그런데 인천은 착공조차 하지 않은 초고층빌딩을 꽃보다 아름답다고 우긴다. 더 찬란한 건물이 들어서는 순간 가치가 퇴색될 인공물인데.
자신의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들은 5분 걸어 이웃과 반갑게 만날 수 있는 공원에 나무가 우거져 있다는 점을 아름답게 여긴다. 몸과 마음을 쫓기게 만드는 인공물에 지친 도시인들은 숲에서 여유를 찾는다. 회색도시의 뒷골목에서 이방인과 마주치기 두려워해도 가까운 숲이라면 다르다. 처음 만나는 이와 인사를 편안히 나눌 수 있다. 숲이 많은 도시일수록 범죄율이 낮고 주소를 옮기는 이가 적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학교와 관공서의 담을 헐어 나무를 심던 인천이 꽃보다 아름다우려면 어떻게 가꿔야 할까. 흔히 도시의 완성은 숲에 있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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